"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개인이나 기업이 직면하는 하루하루의 생존경쟁이 실감나는 말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어떠한가? 경쟁상대가 없는 환경에서 살아온 터라 생존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인색했던 것이 사실이다. 고객이 원하는 서비스인지, 최선의 제공방법인지 생각하기 보다는 공급자인 정부시각에서 만들고 집행하는데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이것은 정답이 아니다. 민간기업과 마찬가지로 공공서비스의 중심에는 실제 수요자인 국민과 기업이 있고, 수요자가 원치 않는 서비스는 결국 규제의 형태로, 비정상의 형태로 나타나 외면 받는다. 국민과 동떨어진 정책과 서비스는 정부신뢰를 떨어뜨리는 정부 전체의 짐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노인학자이자 디자이너인 페트리샤 무어는 GE나 존슨앤존슨 등이 만든 많은 제품에 노인의 신체적ㆍ심리적 특성을 반영하는 디자인을 입혀내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녀는 26세의 젊은 나이에 3년 동안 80대 노인으로 변장하고 노숙 노인부터 부잣집 노인 까지 9명의 노인역할을 하며 노인을 고려하지 않고 디자인한 노인용 제품이 얼마나 불편한지 직접 체험하였다고 한다. 패트리샤 무어에게서 배울 수는 없을까? 수요자의 요구에 맞추어 서비스를 만드는 것은 가장 기초적인 아이디어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공공부문 운영에서 적용된 사례는 많지 않은 듯하다. 몇 년 전 서울의 한 아파트단지에서 전력 사용량에 따라 많은 전력을 사용하는 순서대로 빨간색, 노란색, 녹색으로 관리비 고지서를 보냈다고 한다. 이웃집 평균 에너지 사용량, 전년 동월 사용량과 비교한 이번 달의 에너지 사용현황 등을 알기 쉽게 디자인 하여 고지서를 꾸민 결과 전력 사용량이 10%정도 감소되는 효과가 나타났다고 한다. 고지서를 수요자의 잠재적 심리욕구에 맞게 디자인하여 실제 에너지를 절감하는 효과를 낸 것이다.

국민중심으로 정부운영을 바꾸어가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정부3.0도 수요자인 국민입장에서 공공정책과 서비스를 설계하고 디자인하는 과정이 기본이다. 무엇보다 정부3.0이 추구하는 개방과 공유, 소통과 협업의 일하는 방식이 국민이 중심에 서는 서비스 디자인을 가능하게 하는 토대가 되고 있다. 부서간, 부처간 칸막이로 정보공유가 단절되고 협업이 어려운 상황에서는 국민이 원하는 공공서비스는 애초부터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예를 들어 보자. 여권을 신청하면서 국제운전면허증까지 신청하는 사람이 매년 16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기관간 칸막이 없이 국민입장에서 생각하고 함께 협업해서 여권업무를 위탁받은 자치단체와 국제운전면허증을 관리하는 운전면허시험장 간에 정보가 공유되고 시스템이 연계된다면 최소한 16만명의 국민이 혜택을 볼 수 있다. 여러 가지 행정적 장애요인이 있겠지만 함께 모여 머리를 맞대고 해결하면 되는 것이다.비단 이 사례에 국한될 필요는 없다. 정부가 제공하는 많은 서비스가 아직도 국민보다는 공급자적 시각에서 이루어지고, 국민의 만족을 이끌어내지 못한 채 집행되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볼 일이다.

이렇듯 정부3.0은 수요자인 국민의 수요를 정밀하게 분석하고 찾아내서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제공하기 위해 어떤 정보를 공유하고 어떤 기관들이 협업해야 하는지를 찾아내는 작업이다. 페트리샤 무어가 했던 것처럼 직접 노인으로 변장하는 노력까지는 어렵더라도 시민단체, 기업, 교수, 소비자 등 다양한 국민들이 원하는 것을 찾아내기 위해 민관이 함께 하는 거버넌스를 만드는 것이 정부3.0을 잘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다.

안전행정부는 올해 여러 부처와 손잡고 국민이 공공서비스를 직접 디자인하는 시범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를 위하여 정부3.0 브랜드과제를 여러 개 발굴하고 전문가, 이해관계자, 일반국민이 참여하는 국민디자인단을 만들어 활동할 예정이다. 서비스를 국민이 직접 디자인한다는 개념이 다소 생소할 수 있다. 하지만 국민이 직접 서비스를 디자인한다는 발상의 전환이 출발점이다. 국민이 원하는 공공서비스가 무엇인지 국민에게 직접 듣고, 관련기관이 함께 모여 소통하고 공유하면서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정부3.0이 지향하는 맞춤형 서비스정부의 모습이다.

시작은 작고 갈 길은 멀다. 전통적인 일하는 방식과 관행을 벗어 던지고 수요자중심의 공공서비스디자인을 내재화하기까지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전망은 어둡지 않다. 정부3.0을 통해 중앙부처와 자치단체, 공공기관에서 새로운 시각으로 공공서비스를 바라보고 디자인하려는 노력이 시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말까지 국민이 직접 디자인하는 정부 3.0 브랜드과제가 몇 개라도 성공적으로 만들어지고, 그 방식이 공공부문 곳곳에 확산된다면 이보다 창대한 끝이 있을까.

윤종인 안전행정부 창조정부기획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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