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이 일어났다. 여인들의 천박한 행동이 역겨워 홀로 살던 사내에게 사랑하는 여인이 '생긴' 것이다. 그 남자의 이름은 피그말리온, 키프로스 섬에 살던 조각가다. 세상 여자들에게 실망한 그는 눈처럼 하얀 상아를 깎아내어 여인상을 만들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조각상은 그가 소망하던 고결한 모습 그대로였다. 그것에 반하여 사랑에 빠졌다. 사랑이란, 상대에 대한 열렬한 그리움이다. 간절한 고픔을 채우려는 갈망이며 추구다. 그는 조각상을 어루만지고 말을 건네고 입을 맞춘다. 갖가지 꽃들로 장식하고 값진 보석으로 꾸미며, 침상에 누여 폭신한 베개를 받쳐주기까지 한다. 자기 작품에 대한 예술가의 애착은 지독하게 병적이다. 매혹의 여신 베누스(Venus)는 그의 갈망을 외면하지 않았다. 조각상을 인간이 되게 했다. 사랑하는 여인이 '생겨난' 것이다. 그건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그 순간에 피크말리온은 어떠했을까?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는 그 모습을 <변신이야기>에서 이렇게 묘사했다. "놀라움에 넋을 잃고, 긴가민가하면서 기뻐하며, 착각일지 몰라 두려워하면서, 사랑하는 그는 자기가 소망하던 것을 손으로 어루만지고 또 어루만진다."

어떻게 이런 기적이 일어날 수 있을까? 물론 이 질문은 수천 년 전 키프로스 섬 어딘가에서 상아조각이 인간으로 변한 일이 진짜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인지 아닌지, 그 진위 여부를 묻는 것은 아니다. 신화가 담고 있는 의미를 두고 묻는 것이다. 1968년 하버드 대학의 심리학 교수였던 로버트 로젠탈은 그런 기적이 일어날 수 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른바 '피그말리온 효과', 그의 이름을 딴 '로젠탈 효과'가 가능함을 보여준 것이다. 그는 초등학교 하나를 선택하여 20%의 학생을 선발한 다음, 담당 교사에게 그들이 IQ가 높고 학습 성취도도 높을 것으로 기대되는 학생들이니 각별히 지도해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일정 기간이 지난 후에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과 섞여 있을 때보다 더 높은 성적을 거두었다. 아마도 교사는 정성을 다해 학생들을 가르쳤고, 학생들은 자존감과 자긍심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를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원래 그들은 잠재력을 갖춘 학생이었으니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실험에는 깜짝 놀랄만한 반전이 있었다. 로젠탈 교수가 교사들에게 전달해준 정보는 사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상 학생들은 애초부터 지적 능력을 기준으로 특별히 선발된 우수한 학생들이 아니었고, 무작위로 선발된 20%였다. 그러니까 그들이 좋은 성적을 거둔 이유는 원래 뛰어난 학생들이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더니, 애정과 관심을 쏟고 격려하고 믿어주었더니, 그저 그런 아이들도 우등생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세상일은 맘먹기에 달린 것. 그래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끝까지 믿어주며 사랑으로 지켜봐주면 언젠가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된다는 '피그말리온 효과'. 상아 덩어리에 불과한 조각상이 피그말리온의 애정을 먹고 사람이 되었다는 기적은 그런 식으로 현실이 된 것이다.

피그말리온에게 '당신이 바라보고 있는 것은 그저 상아덩어리에 불과해'라고 말하면서 그의 열망과 간절한 꿈에 찬물을 끼얹는 것은 과연 지혜로운 일일까? 그에게 중요한 것은 사실을 사실로서 일깨워주는 것이 아니라, 사실에 깃들어 있는 가능성과 잠재력을 찾아주는 것이다. 인문학이 그런 일을 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이렇게 말했다. "시인이 할 일은 일어난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말하는 것이다." 사실 세계에 머무르지 않고 풍요로운 상상력으로 가능세계를 그려내고, 인간은 어떤 존재일 수 있으며 어디까지 가며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는지를 타진하고 전망하는 일. 그것은 비단 시인의 몫만은 아니다. 인문학은 인간과 관련된 사실을 드러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나아가 가능한 사실을 새롭게 구상하고 실천적으로 만들어내는 '구성적인 힘'을 통해 그 고유한 값을 갖는다. 인간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되는 인문학의 '피그말리온 효과'에 우리의 희망이 활짝 봄꽃으로 피어날 수 있는 것이다.

김헌 서울대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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