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수지가 흑자이면 수출상품 경쟁력도 우수 무역규모는 작아도 경쟁력 강한 국가 많아 공약에만 얽매이지 말고 해외로 눈을 돌려야
각 국가의 수출과 수입을 합한 무역규모 순위에서, 한국은 2000년 13위에서 2011년 9위로 무역 1조 달러 시대를 열었고, 2012년 8위로 상승했다.

한국경제의 근대화를 촉진하기 위해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된 이후, 반세기만에 이루어낸 대단한 성과이다.

하지만 무역규모를 개방경제 성과의 지표로 삼는 것은 문제가 많다.

무역규모란 경제성과를 측정하는 근원적인 목표가 아니고, 국가간 무역 개방도를 측정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은 국토, 인구 등 규모로 측정되는 지표의 국가간 비교에서 좋은 성과를 내기가 구조적으로 어렵다.

신흥 국가 중 국토 및 인구가 많은 인도, 브라질, 러시아 등의 무역 개방화가 가속화 되면, 한국은 언제든지 무역규모에서 10위권 밖으로 나갈 수 밖에 없다.

무역규모보다 훨씬 정확하게 한 나라의 경제성과를 가늠케 해주는 것이 상품수지 흑자규모다.

수출이 수입보다 많아 상품수지가 흑자인 국가는 수출 상품의 경쟁력이 높다는 얘기이고, 상품수지가 적자인 국가는 그 반대이다.

한국은 군사력 및 경제력이 통합된 국력으로 세계 강대국이 될 수 없는 비기축 통화국이므로,상품수지 흑자유지가 특히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자국의 존립에 필요한 자원을 외국에서 수입하는데 필요한 결제통화를 지속적으로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 우리는 언제고 강대국들에 의해 강제로 구조조정을 당하는 외환위기를 맞을 수 있다.

실제로 한국이 1997년 외환위기를 겪기 이전 기간을 보면, 무역 규모가 아니라 상품수지 또는 경상수지의 대규모 적자가 문제였다.

1990-97년까지 무역 규모는 1301억달러에서 2803억달러로 2.15배 증가하는 동안, 경상수지는 93년 단 한해 29억7천만달러 흑자를 냈을 뿐, 8년 동안 508억 달러 적자였다.

이처럼 한국의 상품 경쟁력이 취약하여 발생된 적자를 외국에서 단기 및 중장기 자본을 차입하여 메꾸었지만, 당시 정부는 대통령의 '세계화' 공약에 얽매여 외형적 무역규모만 내세웠을 뿐 만기 도래하는 외자 차입규모가 얼마인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결국 빚 갚을 돈이 부족하여 1997년 외환위기를 맞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환위기 실체에 대한 연구, 비판과 토론에는 관심이 부족하고, 외환위기 극복을 잘 했다는 업적만을 내세우는 정치인, 관료, 학자들이 적지 않다는 것은 정말 아쉽다.

외환위기의 교훈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한국은 무역규모는 작아도 강하고 탄탄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1억 미만 인구를 가진 대표적인 국가들을 보고 배워야 한다.

2012년 기준으로 보면, 한국은 인구 5천만에, 무역규모 10,767억달러, 경상수지 흑자 431억달러로, 인구 1인당 경상수지 흑자가 8.6억달러이다.

싱가포르는 인구 5백 3십만에 한반도의 1/330의 면적으로, 무역규모 8,163억달러, 경상수지 흑자 586억불로, 인구 1인당 경상수지 흑자는 110.6억 달러이다.

즉, 싱가포르는 한국 인구의 1/9 정도이지만 국민 1인당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한국의 12.6배에 이른다.

대만은 인구 2천 3백만에 한반도의 1/6 면적으로, 무역규모 5,935억 달러, 경상수지 흑자 325억달러로, 인구 1인당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14.1억으로, 한국 보다 1.6배 더 높다.

유럽의 작은 나라 스위스는 인구 7백 6십만, 한반도의 1/5 면적, 무역규모 6,164억불, 경상수지 흑자 633억 달러, 인구 1인당 경상수지 흑자규모는 83.3억 달러로 한국 보다 약 10배 더 높다.

위에서 소개한 국가들은 무역규모는 한국보다 작지만 국민 1인당 경상수지 흑자 규모로 측정된 대외 경제성과는 한국 보다 훨씬 더 우수하다.

한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이러한 국가들의 대외적 경제성과가 한국 보다 왜 더 나은지 진지하게 배우려고 하지 않는가?잘못된 지표를 설정해 놓고 자기도취에 빠진다면 국가간 경쟁에서 한국은 오히려 상대적으로 퇴보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우를 범하지 않으려면, 한국의 정치권 및 정부는 대통령의 공약에 얽매여 국내만 볼 것이 아니고 밖을 보자. 그처럼 경쟁력이 강한 작은 국가들을 따라가기 위한 과제가 무엇인가는 등한시 하고 5년 임기의 대통령 공약만 붙들고 있는 정부와 여당, 그리고 의사당 밖으로 나와 천막 농성을 하는 야당은 과연 국민에게 희망과 도전을 주고 있는가.기업 혁신이 기업을 바꾼다면, 정부와 정치인의 안목혁신은 국가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

이종욱 서울여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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