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는 우리나라 인터넷 산업을 대표한다. 많은 사람들이 매일 아침 컴퓨터를 켜면서 제일 먼저 네이버를 대한다. 무엇이든지 궁금한 것이 있으면 네이버는 친절하게 가르쳐주고 사람들끼리 서로 이어주며 언제, 어디서라도 우리에게 편리한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한다. 더불어 일상생활 전반에 있어서 이전보다 엄청난 경제적 효율성을 가져다주었다. 그야말로 친절한 우리들의 이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앞동네의 친절함과는 달리 뒷동네에서는 약육강식의 이웃으로 군림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네이버 포털에서 제공되는 수많은 정보와 콘텐츠들은 많은 다른 중소업체들이 제공하는 콘텐츠들로 구성된다. 네이버라는 창을 통해 거두어들인 수익의 일부를 서로 나누어 가짐으로써 중소업체들의 사업이 유지되고 또 다른 콘텐츠나 비즈니스 모델을 찾아 재투자를 함으로써 선순환의 생태계가 형성된다.

그러나 거대 플랫폼 사업자인 네이버는 어느 순간 중소업체들의 콘텐츠보다 더 훌륭한 콘텐츠를 개발하여 기존 서비스를 대체하고자 하는 강한 유혹을 느끼게 되고, 실제 그 유혹은 하나 둘씩 실현되어 나갔다. 동시에 기존 업체는 소리 없이 사라져버렸다. 검색시장 시장점유율 75%라는 거대 네트워크에 기반한 플랫폼 지배력이 거침없이 확대되어 부동산 정보, 지식쇼핑, 웹툰, 보안 서비스 등으로 영역을 넓혀 나갔고, 급기야 중소업체들의 볼멘소리가 나오면서 모두가 주시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이렇게 된 데에는 온라인 산업이 가지는 현저하게 낮은 거래비용, 용이한 쏠림현상 등의 특성이 한 몫 했다는 사실을 여기서 새삼 지적하고 싶지는 않다. 문제는 한 산업의 생태계를 주도하는 거대 사업자들이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생태계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책임 있는 행동에 관한 것이다. 사실 소비자들은 모래알과 같고 또 그 시야는 좁고 단기적이라 넓고 장기적인 산업의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다.

되도록 적은 비용으로 편리한 서비스를 받으면 그만이지 산업구조가 독과점인지 경쟁적인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야를 조금만 확장하면 소비자들의 편리함에 가려져 인터넷 생태계가 일그러져 간다는 사실이고, 그로 인한 폐해와 비용은 결국 소비자들이 지불하게 된다는 것이다. 삼성이 하면 잘 하듯, 네이버가 하면 잘 할 것이다. 네이버라고 왜 구글과 같은 세계적인 포털로서의 야망이 없겠는가? IT 개도국에 진출하여 서비스도 제공하고 로컬화하여 친근한 세계의 이웃으로 자리잡기를 희망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이웃으로부터 싫은 소리를 들어서는 결코 희망적이지 않다.

논어 술이(述而)편에 이런 구절이 있다. "공자께서 낚시질은 하였으나 그물질을 하지 않았다. 주살로 새를 잡기는 했으나 모여 잠자는 새들을 쏘지는 않으셨다." 싸움에도 정도(正道)가 있다. 경쟁을 하지만 그래도 그 정도가 유지됨으로써 생성의 계가 유지되는 것이 생태계이다. 아무리 정글의 법칙이 살벌해도 파괴의 계가 존립하지 않는다. 긍정의 힘이 내재되어 전체의 순환을 유지시켜나가는 것이 생태계인 것이다.

그러므로 무엇이든 과하게 하지 않는다. 나에게 적당한, 필요한 만큼 취한다. 그 경계가 있어, 그것을 넘으면 욕심으로 화한다. 욕심이 되면 전체 계에 해를 미치게 되어 결국 내생성의 씨앗을 키울 수 없다.

서로 다른 내력들이 부딪힐 때 생성이 일어난다. 각자 조그만 영역들이 보존되어 깊이를 가질 때, 그리고 이러한 내공들의 상호작용이 허용될 때 생태계가 작동된다. 공자가 낚시질은 하되 그물질을 하지 않은 것은 내가 아무리 힘이 있다한들 여러 다른 내력들을 스스로 존립할 수 있도록 상대의 유입을 허락함으로써 전체를 건전하게 보존하려는 인(仁)한 마음의 발로라 할 수 있다. 거대 존재의 탐욕은 처음부터 그런 것이 아니다.

하다보면 부지불식간에 그렇게 되어 버린다.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도 그렇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항상 주위를 살피고 옷깃을 여미는 겸손과 절제가 요청되는 것이다.

이덕희 KAIST 경영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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