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서비스와 제품개발로 사회문제 해결하기 보다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과학정신을 확산시키기 위한 정책 개발에 더 집중해야…

미래부가 과학기술을 통해 국민생활과 밀착된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사업을 추진한다. 올해는 시범 사업으로 화학물질 유출, 청소년 비만, 항암치료 부작용, 치매, 층간소음 등 5개 분야와 관련된 과제에 90억을 투자하고, 내년부터는 범부처 주력과제로 확대할 예정이다. 기획 단계부터 시민, 정책 담당 부처, 연구개발 부처가 함께 참여하여 협업으로 해결책을 마련하는 솔루션 제공형 연구개발(R&SD) 사업이다. 3~5년 내에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새로운 공공 서비스나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과학기술이 사회문제 해결의 중요하고 효율적인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과학기술이 없으면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고 했던 영국 사상가 버틀란트 러셀의 명언도 그런 사실과 관련이 있다. 과학기술을 통한 생산성 향상이 핵심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옛말처럼 가난과 굶주림에서 비롯되는 사회문제 해결에는 경제부흥만큼 현실적인 대안은 없다. 경기가 좋아지면 그런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되기 마련이다. 특히 사회ㆍ문화ㆍ정보 격차에 의한 사회문제가 그렇다.

과학기술이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지켜주고, 사회적 갈등의 원인을 제거하는 직접적인 수단을 제공해줄 수도 있다. 극한 기상에 의한 피해를 줄이기 위한 일기와 재난 예보, 범죄와 사고 예방을 위한 보안ㆍ안전 시설, 질병의 치료와 예방을 위한 보건ㆍ의료 서비스 등이 모두 그런 예가 된다. 성폭력 범죄자의 재범 방지를 위한 전자 발찌도 과학기술이 사회문제 해결의 열쇠가 될 수 있다는 증거다.

미래부가 추진하는 사회문제 해결형 연구개발 사업도 과학기술의 그런 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시도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문제 해결의 가장 중요한 열쇠는 문제의 핵심과 그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문제의 핵심을 잘못 진단하면 해결은 영원히 불가능해진다.

사회문제에 대한 미래부의 해결 방안이 걱정스러운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유해물질 유출과 층간소음이 뜨거운 감자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작업자 부착용 초소형 유해물질 감지 장치가 해결책일 수는 없다. 모든 유해물질에 적용되는 만능 감지 장치를 개발할 수도 없다. 유해물질의 안전관리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제도를 강화하는 것이 훨씬 더 시급하다.

층간소음을 줄여주는 바닥재가 없는 것도 아니다. 공동주택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이웃과의 갈등을 원만하게 해결하는 사회적 환경을 만드는 일도 중요하다. 청소년 비만과 치매의 조기 진단과 항암제의 부작용 해소가 시급한 과제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사회문제를 과학기술만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인식도 잘못된 것이다.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라고 할 수 있는 성폭력의 경우가 그렇다. 재범 우려가 높은 범죄자에게 전자 발찌만 채워놓으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전자 발찌 착용자들에 대한 추적과 교육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자 발찌를 착용한 잠재적 범죄자들이 치안시설이 전혀 없는 인구 밀집 지역을 자유롭게 활보하도록 방치한 어설픈 교정 정책과 도시계획 정책을 바로잡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교정 시설의 구내에서 백주대낮에 성폭력 범죄가 일어나는 휘경2동의 서울보호관찰소가 그런 경우다. 7개 초ㆍ중ㆍ고등학교의 6000여 청소년과 3500세대 아파트의 2만 6000여 주민이 상시적으로 성폭력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현실에서는 어떠한 첨단 과학기술도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다. 청소년과 주민 보호를 위한 치안 시설을 서둘러 확보해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전자 발찌 착용자들의 면담과 교육 시설을 이전해야만 한다.

과학기술의 역할이 요구되는 사회문제의 정체와 해결에 필요한 대안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한 사전 노력에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새로운 공공 서비스와 제품만 개발하면 사회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인식도 버려야 한다. 오히려 현대 과학을 놀라운 수준으로 발전시킨 원동력인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과학정신을 우리 사회에 확산시키기 위한 효율적인 정책을 개발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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