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가 본격적으로 가동되면서 선거기간 중에 내걸었던 정책들이 시동을 걸고 있는 모습이다. 물론 북한의 공격위협 같은 안보위기에 가려진 듯 하지만, 당장 발등에 불이 붙은 경제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움직임도 속도를 내고 있다.

박근혜 정부 경제정책의 핵심은 역시 후보시절부터 내걸었던 '창조경제'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창조경제가 무엇인가를 놓고 정치권은 물론이고 정부부처, 정책기관은 물론이고 기업들도 모두 골머리를 앓고 있는 눈치다. 연일 창조경제라는 이름을 내걸고 각종 세미나나 정책토론들이 이어지고 있지만 새롭다거나 획기적인 내용은 별로 없어 보인다.

도리어 인수위 시절부터 논란이 되었던 창조경제 개념만 놓고 혼란만 더해가는 것 같은 느낌이다. 실제 정부 부서나 연구기관들이 자신들이 관장했던 사업들에 창조라는 상표를 붙여 재포장한 것 같은 느낌이다. 솔직히 창조경제가 특정 산업 혹은 분야를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경제시스템을 창조적으로 개혁하자는 것인지도 여전히 불분명해 보인다.

그런 혼돈의 와중에도 창조경제에 가장 열을 올리는 분야는 ICT, 그 중에서도 콘텐츠산업분야가 아닌가 싶다. 그 이유는 ICT가 창조경제의 축이라고 선언한 것에도 있지만, 아마 2000년대 초반 영국정부가 영국경제를 회복하기 위해 내걸었던 디자인ㆍ문화콘텐츠ㆍ방송영상 같은 '창조산업(creative industry)'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

그렇지만 특정 문화ㆍ콘텐츠 영역을 의미하는 창조산업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은 2008년 국제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영국ㆍ미국 등이 경험했던 '창의장벽(creative block)'이 잘 보여준바 있다. 그러면 특정 산업영역을 규정하는 창조경제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영국이나 미국의 창조산업모델은 디자인, 문화콘텐츠산업 활성화를 통해 전체 경제를 활성화해보겠다는 이른바 '성장모형'을 채택한 것이다. 그렇지만 전체 GDP의 10%도 안되는 창조산업으로 국가경제를 회복하겠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2008년 리먼 브라더스 금융위기를 맞아 창조산업 자체가 붕괴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둘째, 공공재적 특성을 지닌 창조상품들은 1차 제작물보다 2차 유통과정을 통해 부가가치가 극대화된다. 때문에 제작 자체보다는 유통구조의 합리화가 더 중요하다. 창조산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제작 지원보다 시장투명성 같은 시스템개혁이 이루어져야만 한다. 때문에 창의산업은 성장모델이 아닌 창의성을 유인할 수 있는 구조개혁모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셋째, 창조산업은 인간의 창의적 노력을 근간으로 하는 산업이다. 때문에 창의적 인력의 창출과 안정화가 절대 중요하다. 정부에서도 창조산업을 젊은이들의 일자리창출과 연계하고 있다. 그렇지만 ICT 콘텐츠산업 종사자들의 저임금과 불안정한 고용구조는 오래전부터 고질화된 문제이다. 그러므로 양적으로 일자리 늘리기보다 창의적 인력들에 대한 직업안정화 정책이 더욱 절실하다.

결국 지금 창조경제의 목표는 어떤 분야가 창조산업인가 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구조 전반에 걸친 창조적 시스템을 개혁하는 것이다. 유통구조의 합리화, 직업안정성 확보, 거래 투명성 제고 등은 창조경제가 성장이 아닌 공생의 키워드임을 암시한다. 더 확대 해석하면 경제민주화 문제이고 자본주의 4.0의 문제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지금 방송ㆍ통신 할 것 없이 ICT영역의 창조경제화는 거대 유통사업자 혹은 플랫폼사업자들과 상대적으로 열위에 있는 콘텐츠 제작사들간 불평등 관계를 개선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물론 이제까지 그런 정책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처럼 일회적이고 산발적인 단발성 정책으로는 결코 개선될 수 없는 문제인 것이다. 이처럼 가장 창의적 산업이라고 할 수 있는 ICT 콘텐츠산업 활성화의 핵심은 시스템 문제이지 특정 산업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비단 ICT 콘텐츠 분야 뿐 만 아니라 모든 경제의 창조경제화는 실종된 '공생의 미학'을 회복하는 것이다.

지금의 ICT콘텐츠산업처럼 제한된 시장에서 서로 먹고 먹히는 경쟁구조에서는 창의적 상품이나 인력이 나올 가능성은 별로 없다. 결국 가치사슬상에 여러 행위자들이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공생의식이 바로 창조경제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황근 선문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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