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는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한해였습니다. 그러나 올해도 지난해 못지 않게 어려운 한 해가 될 것입니다." 이것은 올 초 기업이나 기관 시무식에서 직원들이 가장 많이 들은 기관장 말씀의 내용이라고 한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지난 2008년 이후 위기 아닌 해가 거의 없었다. 우리 경제는 2010년 기술적 반등 때문에 상대적으로 높은 성장률을 시현한 것 외에는 모두 4%에 미치지 못하는 낮은 성장률을 보였다. 그나마 우리 정부가 위안으로 삼는 것은 가장 먼저 위기를 탈출한 그룹에 우리나라가 속한다는 것이다.

한국이 경제위기에 대하여 빠른 복원력을 보이는 것은 위기극복을 프로젝트처럼 수행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위기극복이라는 정해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대통령의 지휘아래 정부 전체가 힘을 모은다. 지금의 비상경제대책회의는 이러한 프로젝트형 정책에서 나타나는 전형적 지휘방식이다. 위기극복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경제발전도 사실상 유사한 형태로 추진되었다. 경제발전기 한국정부는 5개년마다 주요목표를 설정하고 온 부처가 목표달성을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대통령이 직접 진전여부를 점검하고 관리하였다. 이처럼 집중력 있는 한국의 정책수행 방식은 개발도상국들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아프리카나 아시아지역 여러 나라에 대통령이 지휘하는 경제개발 회의체가 생겨나기도 했다.

프로젝트형으로 정책목표를 설정하고 추진해나가는 것은 단일정책을 수행해 나가는 과정에서 매우 효율적인 방식이다. 적은 자원을 집중적으로 사용하고 목표지향적으로 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책목표가 단일화하기 어렵고 다양화된 사회에서는 프로젝트형 정책을 수행하기가 어렵다. 구성원들의 선호가 달라서 정책목표를 단일화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가난으로 굶주리는 사회에서는 파이를 키우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에 목표의 단일화가 가능하다. 그러나 소득수준이 증가하고 가치관이 다양화되면 우선 목표의 단일화가 어려워져서 프로젝트형 정책의 추진이 힘들어 진다. 위기시에도 구성원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비교적 용이하다. 모든 사회구성원이 동일한 문제로 고통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기가 극복되고 나면 사회전체의 협력을 받아내기가 어려워 진다.

협력이 어려워지는 배경에는 경제발전 단계의 고도화로 인한 분배 메카니즘의 변화가 존재한다. 모든 것이 부족한 결핍경제에서는 성장으로 인한 파급효과가 비교적 빠르고, 넓게 사회에 확산되는 경향이 있다. 생산의 연계고리가 단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업구조가 고도화될수록 생산의 연계고리가 길어져서 성장의 효과가 중간단계에서 소멸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따라서 성장하는 부문의 주변부나 직접 관련된 경제주체들 중심으로 성장의 과실이 배분된다. 그 결과 성장이 확대될수록 양극화가 심화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따라서 단순한 성장지향적 정책이 더 이상 사회적 지지를 얻지 못하게 된다. 현재 우리사회 일부에서 나타나고 있는 성장주의에 대한 반감은 이러한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프로젝트형 정책이 야기하는 또 다른 문제는 불균형성장에 의한 경제적, 사회적 왜곡이다. 우선순위에 따라 자원을 집중하는 정책적 특징으로 인해 특정 산업이나 특정기업 혹은 특정지역이 특혜를 받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경제발전 초기에는 이러한 불균형성장을 통해 특혜를 받은 대상이 국가의 경제발전을 견인하는 주체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경제규모의 확대 및 발전 단계의 변화로 개별 분야나 개인의 역할이 감소하였다. 따라서 이전과 같은 프로젝트형 정책방식은 더 이상 유효한 정책방식이 아니다. 오히려 지속할수록 사회적 갈등을 확대할 위험이 있다.

이제는 시스템 중심의 정책이 필요하다. 시스템 중심의 정책이란 특정 목적을 위하여 국가질서를 체계적으로 조직화하되 사회를 하나의 유기체로 간주하는 방식이다. 즉, 특정분야에 대한 집중적 육성보다는 사회전체가 균형적으로 발전하는 것을 지향하는 정책을 의미한다. 그동안 필요에 따라서 지나치게 성장했거나 위축된 분야가 있는 지 점검하고 균형을 회복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사람의 신체도 성장기에 때로 발이나 손이 먼저 자라거나 키만 먼저 자라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부위들도 발달하여 균형이 잡혀야 정상적인 사람이 된다.

우리 경제도 고도성장기가 지나고 성숙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이제부터는 그동안 못자란 부분에 관심을 두어 사회전체가 균형을 회복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경제가 더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할 수 있다. 우리 사회내의 경제민주화 요구는 지금까지 상대적으로 성장이 억압되어온 분야를 리밸런싱시키라는 국민들의 여망이 표출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사회가 기형화되는 것을 방지하려면 이제는 지난 시기의 프로젝트형 정책의 그늘을 걷어내고 시스템형 정책으로 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새로 출범하는 박근혜정부가 새로운 정책적 패러다임을 요구하는 시대적 변화를 읽어낼 수 있는 지혜로운 정부가 되기를 기대한다.

윤덕룡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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