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정전에 대한 우려가 연일 이어지는 폭염으로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원전까지 말썽을 부리는 상황에서 이제는 가정과 상점도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우리의 에너지 수급에 심각한 빨간 불이 켜졌다는 뜻이다. 그런데 문제는 전기만이 아니다. 자동차ㆍ취사ㆍ난방용 연료의 문제도 심각하다. 기름값이 묘하다는 논란이 이제는 엉뚱한 방향으로 확산되고 있다. 우리의 생존이 걸린 에너지의 생산과 공급 체계 전체가 무너져버릴 수도 있는 진짜 위기 상황이다.

기름값이 비싼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기름값이 비싼 이유가 극도로 왜곡돼버렸다. 정부가 애써 정유사와 주유소에 책임을 떠넘긴 탓이다. 그런데 배럴(159리터) 단위로 표시하는 국제 원유 가격을 리터 단위로 표시하면 문제가 분명하게 나타난다. 두바이유의 배럴당 국제 가격은 100달러 수준이다. 현재의 환율을 적용하면 원유 가격은 리터당 710원이다. 여기에 원유의 운송비, 정제비, 주유소까지의 배달비를 포함시켜야 한다. 수급 안정을 위해 정부가 요구하는 원유와 휘발유 비축 의무도 기름값을 비싸게 만드는 원인이다. 주유소도 적정한 이윤이 필요하다. 결국 900원이 넘는 유류세가 기름값과 높은 환율이 비싸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원인인 셈이다. 정유사가 아니라 정부의 책임이 더 크다는 뜻이다.

자발적으로 휘발유와 경유를 수입하는 사업자가 없다는 사실도 무시할 수 없다. 정말 우리 기름값이 비싸다면 정부가 굳이 세제 혜택이나 비축 의무를 면제해줘야 할 필요가 없다. 정부가 억지로 밀어붙이고 있는 혼합 판매와 전자상거래도 결국 비싼 유류세 문제를 감춰보려는 시도일 뿐이다. 문제는 유류세의 단맛에 취한 정부가 가장 중요한 국가 기간산업은 정유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정유사를 국유화해버리겠다는 대선 경선후보의 주장은 반세기 정도에 불과한 우리 정유산업의 역사도 기억하지 못하는 황당한 것이다. 국영의 비효율을 극복하기 위해 정유사를 민영화했던 정유사를 다시 국영화할 수는 없는 일이다. 더욱이 오늘날 우리 정유사는 더 이상 우리만 것도 아니다. 외국 기업이 지분의 절반을 가지고 있는 정유사도 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인 우리가 아르헨티나와 같은 경제 후진국의 정책을 흉내낼 수는 없다.

국민주를 모아서 국민정유사를 세우겠다는 운동권 출신의 전직 보사부 장관의 제안은 더욱 황당하다. 새로운 원유 도입선을 확보하고, 국산 촉매를 사용해서 기름값을 20%나 낮추겠다는 주장은 실현이 절대 불가능한 농담 수준이다. 배럴당 50달러짜리 원유를 구해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루 294만 배럴의 원유를 정제하는 우리나라에서 10만 배럴 규모의 국민정유사가 영향력을 발휘하기는커녕 살아남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구체적인 내용은 모두 감춰두고 누가 봐도 명백하게 비현실적이고 무리한 제안을 내놓고 무작정 자신의 능력을 믿어달라는 요구는 전직 장관의 책임 있는 언행이 아니다. 시정잡배들의 정말 어설픈 속임수에 훨씬 더 가까운 것이다. 결국 서민을 도와주겠다는 명분을 앞세운 국민정유사는 서민의 주머니를 털어가는 것으로 막을 내리게 될 가능성이 더 크다.

이제 소모적이고 낭비적인 기름값 논쟁을 끝내야 한다. 과도하고 불합리한 유류세를 개편하지 않으면 기름값 인하는 불가능하다. 갈비와 등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휘발유와 경유도 합리적인 원가 산정이 불가능한 특성을 가진 결합 상품이고, 독과점에 따른 규모의 경제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도 있다는 사실도 받아들여야 한다. 싱가포르 석유시장의 가격을 기준으로 삼게 된 이유도 다시 살펴봐야 한다.

정부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 소비 절약과 효율화를 핵심으로 하는 진짜 에너지 정책을 만들어야 하고, 정유산업의 중요성도 인정해야 한다. 우리 정유사들이 작년에 석유제품의 수출로 원유 수입비용의 절반을 훌쩍 넘는 544억 달러의 외화를 벌어들였고, 올 상반기에도 석유제품의 수출 규모가 선박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정부가 달콤한 유류세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올 겨울에는 정말 심각한 전력 재앙이 닥쳐올 수도 있다. 에너지는 우리의 생명이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주임교수 대한화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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