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장옥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
진보주의자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 큰 편견을 심을 만큼, 지난 반세기의 대부분 우경화된 언론 그리고 정책과 사회분위기가 지배하였다. 진보주의자는 많은 경우 북한과 어떤 경로로든 관련이 있고 나라의 체제를 위협하는 위험한 존재로 묘사되었다. 북한이 주장하는 것들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일 것으로 생각되나 그들의 생각이 여과 없이 대중 앞에 드러난 적은 없기 때문에 어떤 인사가 그러한지를 특정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리고 지금 정치의 현장에서 지목되고 있는 대분분의 진보주의자들은 서구에서 말하는 자유주의자(liberal)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우리는 소위 진보주의 또는 좌파 정권을 10년 겪은 바 있으나 그 10년을 좌파의 시대라고 부르는 것은 지나쳐 보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공산주의자 혹은 그 아류라고 선전한 보수언론의 색깔 칠하기는 전혀 사실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의 치세 5년을 보면 분명하다. 개괄적으로 말해 다른 대통령과 그가 달랐던 것은 대북정책 하나였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그의 대북정책이 특별히 진보적인가? 김대중 이전에는 대북정책이 없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그의 대북정책은 새로운 것이었을 망정 특별히 진보적이라고 보지 않는다. 대북정책 이외에 김대중 정부에서 대부분의 정책은 누구의 눈에도 매우 보수적이었다. 1990년대 초반 어느 날 "김대중을 미국 정치에 갖다 놓으면 극우에 속한다"고 평한 캐나다 어떤 지식인의 말이 생각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어떠한가? 그 또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이념과 정책이 지그재그였기 때문에 재임 말년에는 극도로 피곤했다는 기억 이외에 특별히 좌파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그는 많은 부분에서 보수적이었다. 한ㆍ미자유무역협정이나 제주도 해군기지와 같은 결정은 국익에 기초한 것이지 이념에 따른 것은 전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지방분권정책을 좌파적이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겠으나, 이 또한 작금에 회자되는 경제민주화의 한 축이라고 생각되며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언제까지 지방은 서울에 종속하는 변방이어야만 한다는 말인가? 교통과 통신의 발달이 눈부신 현시대에 지방과 서울에서 삶의 격차가 더욱 벌어지는 것을 용납해도 된다는 주장은 효율성의 원칙에 있어서도 맞지 않다는 생각이다.
이와 같이 우리가 진보 혹은 좌파 정권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근본적으로 좌파하고는 거리가 멀다. 다만 그들은 사회적 약자에 대하여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베풀고 북한과 친교하려고 노력했다는 의미에서 진보라고 부르는 것 같다. 그러나 약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 그리고 친북정책이 진보주의자들만의 전유물은 전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이념보다는 성장배경과 인간적 품성 그리고 민족의 미래에 관한 견해의 문제일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진보주의자들은 인권과 약자를 위한 배려, 이념과 표현의 자유 그리고 보다 평등한 소득분배를 더 요구하고 그와 같은 방향으로 사회와 정치, 교육 그리고 인식을 변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부류의 사람들이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이 땅의 진보주의자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그러한가? 스스로를 진보주의자라고 칭하는 대부분의 인사들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진보가 아니다. 진보의 탈을 쓴 보수주의자들이 대부분이다. 다만 정치적으로 그늘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약자의 고뇌와 슬픔을 잘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일 뿐이다. 민주통합당에 특히 그런 인사들이 많다. 크게 진보주의자가 아닌 인사들도 정치의 계절이 오고 표가 될 것으로 생각되면 물불을 안 가리고 크게 좌회전을 한다. 어떤 인사들의 정치적 수사는 지금까지 그들이 걸어온 길과는 전혀 다르고 김용민 씨의 공천에서 보는 바와 같이 표와 권력이 된다고 하면 무슨 일이든 한다.통합진보당의 혼란은 그보다 더 심각하다고 생각된다. 지금 대다수의 국민은 통합진보당이 야당의 하나라고 볼 뿐 무엇을 지향하는 정당인지 알지 못한다. 지난 총선에서 나타난 정치적 행위로 볼 때 그들은 통합민주당과 다르지도 않고 보다 더 선명하거나 가치 지향적이지도 않다. 대다수의 국민에게는 권력에 눈이 먼 또 다른 정치집단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타락한 진보를 바라보는 것은 타락한 보수를 바라보는 것보다 훨씬 더 가슴 아프다. 그것은 그들이 이상과 가치를 앞세우는 집단이여야 하기 때문이다. 보수는 크게 보아 현실을 먼저 생각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보는 선명한 이상과 가치를 먼저 생각하여야 한다고 볼 수 있다. 시인 김수영의 말을 차용하면 그런 의미에서 진보는 불온하다. 진보는 선명한 이상과 가치 곧 꿈을 실현하고자 하기 때문에 불온한 것이다. 그러나 진보의 고뇌는 추구하는 이상과 가치의 불온성에 있지 않다. 이상과 가치를 실현할 방도에 있다. 진보가 추구하는 이상과 가치는 많은 경우 보통의 수단과 방법으로는 실현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이 고민하여야 하고 보수적인 방법론을 포함한 모든 것을 궁구하여야만 한다.
설령 실현불가능하다고 하여도 진보의 이상과 가치는 사회를 썩지 않게 하는 소금과 같은 것이다. 선명한 이상과 가치, 이의 실현을 위해 진정으로 고뇌하는 진보를 보고 싶다.
진보주의자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 큰 편견을 심을 만큼, 지난 반세기의 대부분 우경화된 언론 그리고 정책과 사회분위기가 지배하였다. 진보주의자는 많은 경우 북한과 어떤 경로로든 관련이 있고 나라의 체제를 위협하는 위험한 존재로 묘사되었다. 북한이 주장하는 것들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일 것으로 생각되나 그들의 생각이 여과 없이 대중 앞에 드러난 적은 없기 때문에 어떤 인사가 그러한지를 특정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리고 지금 정치의 현장에서 지목되고 있는 대분분의 진보주의자들은 서구에서 말하는 자유주의자(liberal)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우리는 소위 진보주의 또는 좌파 정권을 10년 겪은 바 있으나 그 10년을 좌파의 시대라고 부르는 것은 지나쳐 보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공산주의자 혹은 그 아류라고 선전한 보수언론의 색깔 칠하기는 전혀 사실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의 치세 5년을 보면 분명하다. 개괄적으로 말해 다른 대통령과 그가 달랐던 것은 대북정책 하나였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그의 대북정책이 특별히 진보적인가? 김대중 이전에는 대북정책이 없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그의 대북정책은 새로운 것이었을 망정 특별히 진보적이라고 보지 않는다. 대북정책 이외에 김대중 정부에서 대부분의 정책은 누구의 눈에도 매우 보수적이었다. 1990년대 초반 어느 날 "김대중을 미국 정치에 갖다 놓으면 극우에 속한다"고 평한 캐나다 어떤 지식인의 말이 생각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어떠한가? 그 또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이념과 정책이 지그재그였기 때문에 재임 말년에는 극도로 피곤했다는 기억 이외에 특별히 좌파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그는 많은 부분에서 보수적이었다. 한ㆍ미자유무역협정이나 제주도 해군기지와 같은 결정은 국익에 기초한 것이지 이념에 따른 것은 전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지방분권정책을 좌파적이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겠으나, 이 또한 작금에 회자되는 경제민주화의 한 축이라고 생각되며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언제까지 지방은 서울에 종속하는 변방이어야만 한다는 말인가? 교통과 통신의 발달이 눈부신 현시대에 지방과 서울에서 삶의 격차가 더욱 벌어지는 것을 용납해도 된다는 주장은 효율성의 원칙에 있어서도 맞지 않다는 생각이다.
이와 같이 우리가 진보 혹은 좌파 정권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근본적으로 좌파하고는 거리가 멀다. 다만 그들은 사회적 약자에 대하여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베풀고 북한과 친교하려고 노력했다는 의미에서 진보라고 부르는 것 같다. 그러나 약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 그리고 친북정책이 진보주의자들만의 전유물은 전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이념보다는 성장배경과 인간적 품성 그리고 민족의 미래에 관한 견해의 문제일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진보주의자들은 인권과 약자를 위한 배려, 이념과 표현의 자유 그리고 보다 평등한 소득분배를 더 요구하고 그와 같은 방향으로 사회와 정치, 교육 그리고 인식을 변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부류의 사람들이라고 생각된다.
타락한 진보를 바라보는 것은 타락한 보수를 바라보는 것보다 훨씬 더 가슴 아프다. 그것은 그들이 이상과 가치를 앞세우는 집단이여야 하기 때문이다. 보수는 크게 보아 현실을 먼저 생각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보는 선명한 이상과 가치를 먼저 생각하여야 한다고 볼 수 있다. 시인 김수영의 말을 차용하면 그런 의미에서 진보는 불온하다. 진보는 선명한 이상과 가치 곧 꿈을 실현하고자 하기 때문에 불온한 것이다. 그러나 진보의 고뇌는 추구하는 이상과 가치의 불온성에 있지 않다. 이상과 가치를 실현할 방도에 있다. 진보가 추구하는 이상과 가치는 많은 경우 보통의 수단과 방법으로는 실현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이 고민하여야 하고 보수적인 방법론을 포함한 모든 것을 궁구하여야만 한다.
설령 실현불가능하다고 하여도 진보의 이상과 가치는 사회를 썩지 않게 하는 소금과 같은 것이다. 선명한 이상과 가치, 이의 실현을 위해 진정으로 고뇌하는 진보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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