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승 희 KTB투자증권 리테일본부부사장
살면서 머리로만 이해하고 있던 말들이 새삼 가슴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격세지감(隔世之感)! 요즘 내가 몸소 느끼는 고사성어다.

세상 참 빨리 변한다. 변화의 흐름이 특히 빠른 자본시장에 몸담고 있어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지, 아니면 오바마 대통령도 놀라는 한국 사람들의 바지런함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렇다.

지금은 박물관에나 가야 만날 수 있을 자가용 속 카폰은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다. 불과 30년이 지난 지금 손바닥 안에서 KTB투자증권 주식거래시스템으로 주가 차트를 바라보다 사고 싶은 주식을 손가락 두어 번 콕콕 움직이면 매매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80년대 중반 증권업에 입문했다. 당시 증권사 점포 객장엔 큰 칠판이 걸려있었다. 증권거래소에서 시세체결 방송이 흘러나왔고 젊은 직원들이 가격이 오르는 종목은 빨간색으로, 가격이 하락하는 종목은 파란색으로 써 내려갔다. 나도 틈틈이 그 일에 동참했었다. 온라인에 리얼타임으로 시세가 반영되는 지금에야 원시적으로 보이지만 당시엔 칠판의 색깔만 보면 그 날의 시장흐름을 파악할 수 있었으니 유용한 시스템이었다. 객장 의자엔 사람들로 붐볐고, 전문투자자들은 한쪽 방을 차지하고 앉아서 바둑도 두면서 시간을 보내는 그런 풍경이었다.

돌이켜보면 증권회사 직원들에겐 봄날이었다. 투자정보를 거의 독점하는 소위 정보의 비대칭성은 투자자들로 하여금 직원들의 투자상담에 의존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요즘처럼 자산관리를 하는 지점 영업맨들에게는 그 의미가 퇴색했지만 매년 12월말이 되면 증권거래소에선 한 해의 마무리를 축하하기 위해 납회식을 거행했다. 당시엔 수작업으로 매매체결을 시키던 시절이라 거래소 시장 안에 POST라는 체결공간이 여럿 있었고, 각 증권사 직원들이 주문지를 들고 각 POST로 뛰어다녔다. 요즘도 일부 증권사들이 사용하는 뱃지 모양 중에 그를 본딴 형태를 간혹 보곤 한다. 아무튼 연말 뉴스엔 사용하던 주문지 들을 찢어 뿌리며 한 해의 마무리를 축하하는 장면들이 단골 메뉴였다. 25년이 지난 지금, 간혹 신규 상장식이 있을 때 거래소 홍보관을 찾아가면 칠판, 객장, 거래소 시장 등등의 모습들이 "그 때를 아십니까?" 라고 물으며 사진으로 남아 견학생들을 맞이한다.

몇 년 전 시카고에 있는 선물거래소(CME)를 방문했었다. 최초의 선물거래소였던 이곳에선 놀랍게도 우리나라 어시장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경매가 펼쳐지고 있었다. 이렇게 첨단시대에 손짓, 몸짓으로 상품거래를 시키고 있다니… 옛 방식을 남겨 홍보도 하고, 직원들의 일자리도 창출할 겸 일부 상품에 대해서 과거방식으로 체결을 시키고 있다는 안내직원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이해가 됐다.

세상의 변화가 시시각각 반영되는 우리 시장은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진정한 '효율적 시장' 이다. 내가 아는 정보가 나만 아는 정보라는 생각은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착각일 확률이 매우 높다. 오죽하면 "소문에 사서 뉴스에 팔아라" 라고 할까! 국내도 모자라 요즘엔 해외시장에도 투자하는 다양한 길이 열렸고 주식에서 파생된 다양한 파생상품도 일반에 친숙하다. 일부 투자자는 국가간 환율의 변화 차이를 통해 이익을 내고자 야간에 뜬눈으로 지새기도 한다.

이러한 변화의 한가운데 30여년의 투자역사를 가진 KTB투자증권이 리테일 영업을 펼치기 위해 이제 막 항구를 떠나며 진수식을 마쳤다. 새로운 배에 승선한 선원들의 두 눈에는 말 그대로 푸르른 기상이 넘친다. 각 지점에는 영업맨마다 고객을 응대하기 위한 깔끔한 방과 국내 유명 작가들의 그림이 곳곳에 배치돼 있다. 첨단의 IT 장비와 화려한 인테리어로 고객을 맞이하지만 리테일 영업을 총괄하는 사람으로서 증권계 후배들이 고객을 향한 마음만은 25년 전 선배들이 칠판을 채우며 가졌던 그 마음과 같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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