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접촬영으로 신제품 디자인ㆍ기능 분석… 10년새 양국상황 역전
"10년 전만 해도 CES에 오면 일본 경쟁사 분석하기에 바빴는데, 이젠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일본 전자업체에서 삼성전자 부스에 신제품을 분석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근접촬영까지 하며 우리 신제품 디자인과 기능을 철저히 분석해가는 통에 신기술과 제품을 개발해놓고도 정작 CES에 전시하지 못하는 상황이 다반사에요."

삼성전자 최지성 부회장은 CES에서 기자들과 만나 세계 TV시장에서 일본업체와 우리나라 업체간 뒤바뀐 입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 11일(현지시간) 미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2' LG전자 부스에는 2012년형 TV 신제품을 취재하기 위해 일본에서 온 NHK 방송국 직원들이 장사진을 쳤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국기업들이 승승장구하는 상황과 일본 가전업체 성장이 정체된 것을 다큐멘터리로 찍기 위해서 온 취재진들이었다.

과거 일본 따라잡기에 비지땀을 흘렸던 국내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세계 TV 산업 패권을 차지한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단면이다.

이번 CES에 삼성전자와 LG전자는 55인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TV', 풀HD보다 4배 해상도를 제공하는 '4K TV' 등 차세대TV 뿐 아니라 디자인과 성능을 개선한 2012년형 스마트TV를 대거 출품했다.

삼성전자는 이번 전시회에 출품한 고급형 TV제품에 '에볼루션 키트'라는 비밀병기를 공개했지만, 정작 이것의 핵심부분은 봉인한 채 공개했다.

회사 윤부근 사장은 "에볼루션 키트는 카드만한 크기에 핵심칩과 소프트웨어를 담아 TV성능을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혁신적인 아이디어 제품"이라며 "경쟁사 벤치마킹을 막고, 기술유출을 우려해 공개하지 않았지만, 2012년형 7000, 8000 스마트TV 시리즈에 이미 이 기능이 적용돼있다"고 말했다.

LG전자는 부스 맨 앞에 배치한 55인치 OLED TV에 아예 보안요원을 배치시켰다. TV 뒷면은 아예 사진 촬영을 하지 못하게 막아놨다. LG전자 관계자는 "디자인과 기술유출 우려가 있어, 사진 촬영은 되도록 못하게 한다"며 "아직 시제품이기 때문에 파손 우려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이번 CES서 공개한 OLED TV, 2012년형 스마트TV는 일본 전자업체들의 집중 연구 대상이었다. CES 부스에 설치된 전략제품 주위에는 일본 전자업체 상품기획팀과 컨설팅 업체 직원들이 제품 정보를 확인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들은 성능과 디자인, 특히 테두리 두께와 조작버튼, 리모컨 인터페이스는 어떻게 했는지 꼼꼼하게 사진을 찍고, 수첩에 기록했다. 예전에 국내 TV제조사들이 했던 걸 이젠 일본 업체들이 그대로 하고 있는 것이다.

소니, 도시바, 샤프, 파나소닉 등 일본업체들은 차세대 제품보다 기존 제품 성능을 개선한 제품과 연동 서비스 강화 등을 들고 이번 전시회에 참가했다. 소니는 크리스탈디스플레이라는 LCD와 LED백라이트간 간격을 줄여 화질을 개선한 미래기술을 선보였지만, 상용화에 대한 얘기는 언급하지 않았다. 도시바는 무안경 3D TV, 파나소닉은 전력소모를 개선한 TV 등을 출품했고, 샤프는 배터리를 탑재해 휴대가 가능한 TV를 공개했다. 매년 참관객을 놀라게 했던 혁신적인 제품이라기보다는 일부 기능을 강화한 안정적 제품 라인업 전략을 취한 것이다.

한편 세계 TV시장에서 우리나라 업체와 일본 업체간 역사가 뒤바뀌는 상황에서 중국업체 추격이 빨라지고 있다. 이번 CES서 창홍, TCL 등 중국 TV제조사들은 누가 봐도 삼성전자와 LG전자 스마트TV 디자인을 그대로 베낀 제품을 내놨다. TCL은 스마트TV 외관 디자인과 사용자 인터페이스, 로고까지 삼성전자 제품을 베낀 제품을 출품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CES서 신제품을 공개한 뒤, 몇 달 뒤 중국에서 신제품을 출시하려고 하면 이미 중국TV업체에서 똑같은 제품을 내놓는 경우도 있다"며 "앞으로는 중국업체들이 따라오지 못하도록 기술적 부분과 서비스를 보다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라스베이거스(미국)=이형근기자 bass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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