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 은행들이 연초부터 중소기업 대출을 활성화하고 금리를 낮추는 등 서민ㆍ중소기업 지원을 강조하고 있다. 올 상반기 유럽발 금융위기가 최대 고비를 맞으면서 세계 경제 상황이 심각한 위기국면에 접어들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경기가 침체되면 대기업이나 부유층과 달리 자금사정이 여의치 않은 중소기업이나 서민의 돈줄이 먼저 막힐 수 있어 은행들이 이같은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신한은행은 5일 지난해 그룹이 선언한 `따뜻한 금융'을 실천하겠다며 중소기업 대출금리를 낮추고, 서민 수수료를 추가로 인하하겠다고 밝혔다. 조만간 중소기업 지원 전용상품을 내놔 중소기업의 이자비용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계획이다. 또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65세 이상 노인, 미성년자 등을 위한 수수료 면제ㆍ인하 방안도 준비하고 있다.

조준희 IBK기업은행장은 지난해 연말 위기 상황에서 중소기업의 돈줄이 막히지 않도록 중기 대출을 활성화하고, 대출금리를 업계 최저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다른 은행들도 다소 차이는 있지만 중기 대출금리 인하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

금융당국도 경기 상황이 예사롭지 않다는 판단에 따라 은행들이 앞장서 중기지원에 나서 줄 것을 당부했다. 김석동 금융위원장과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4일 열린 범금융기관 신년 인사회에서 경제양극화 해소와 상생의 관점에서 서민과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게 금융인의 소명이라며 금융권을 독려했다.

그런데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과 실제는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금융권 수장들의 중기 지원 외침과 달리 중기와 가계 대출이 더 힘들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은행들이 겉으로는 중기 대출 확대를 강조하고 있지만 중기와 가계의 대출 문을 더 틀어막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행의 `금융기관 대출행태 서베이 결과'에 따르면 올 1분기 국내은행의 대출 태도는 기준선 밑인 -1로 전분기 보다 6포인트 떨어졌다. 특히 대기업보다 중소기업과 가계에 더 소극적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 대출태도는 전분기 9에서 0으로, 가계대출 일반은 0에서 -3으로 떨어진 반면, 대기업은 3에서 6으로 오히려 3포인트 증가했다. 가계주택 대출태도는 -9다.

은행들은 지난해에도 일제히 중기 대출 확대 등을 외쳤지만 실제로 행동은 달랐다. 지난해 말 농협, 국민, 우리, 신한, 하나 등 대형 시중은행 5곳의 대기업 대출이 78조원으로 전년보다 22.7%나 급증했다. 반면 중소기업 대출은 245조원으로 3.1% 증가하는데 그쳤고, 자영업자 대출이 10조원이나 늘어난 점을 감안하면 중소기업 대출은 오히려 3조원 가량 줄어들었다.

연초 은행들의 상생계획안이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동안 금융권은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질 때 가장 먼저 중기의 대출을 줄여왔다. 경기가 좋지 않을수록 신용등급이 낮은 중소기업들은 은행에서 돈 빌리기가 어려워진다. 은행들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대기업이나 담보가 확실한 주택대출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설 등이 겹치는 올 1월에 중기의 자금난이 최고조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권이 연초 주요 과제로 내세운 중기 대출금리 인하 등이 말에만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중기와 가계가 쓰러지면 대기업이나 금융권도 존립할 수 없게 된다. 금융권이 위기상황에서 가져야 할 사회적 책임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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