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 서강대 화학ㆍ과학커뮤니케이션 주임교수 대한화학회 차기회장
정부가 기름값을 잡겠다고 내놓은 알뜰주유소가 출범도 하기 전에 좌초 위기에 놓여 버렸다. 사실 알뜰 주유소는 퇴임이 확정된 지경부 장관의 오기(傲氣)와 객기(客氣)의 산물일 뿐이다. 처음부터 성공은 기대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동안 정부의 부당한 압력에도 협조를 했던 정유사들조차 돌아서버린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설사 이번 입찰에 성공을 했더라도 지난 여름의 강압적 유가 인하처럼 소비자는 헛물만 켜고, 정유사는 손해만 보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아까운 세금도 축내고, 신뢰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알뜰주유소가 성공할 수 없는 이유는 명백하다. 부당한 재정 지원으로 명맥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알뜰주유소가 유류시장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나서서 불공정 거래를 부추기는 셈이다. 억지춘향으로 끌려 들어가는 석유공사와 농협도 문제가 된다. 석유공사가 해외 석유자원 확보와 유류시장 감시라는 본연의 소임을 제쳐두고 민간 영역에 개입하고, 농민을 위해 설립된 농협이 주유소업까지 진출하는 것은 절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공급 가격이 다른 기름을 팔면서 정부로부터 공개적으로 차별 대우를 받는 일반주유소가 정상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없다. 생존을 위협받는 일반주유소는 어쩔 수 없이 유사 석유에 눈을 돌리게 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삼척동자도 짐작할 수 있는 결과다. 정유사의 수익률이 3%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알뜰주유소의 낮은 가격이 일반주유소로 확산될 가능성도 없다. 자칫 국가 경제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정유사가 경쟁력을 잃어버리고 휘청거리게 될 수도 있다. 알뜰주유소는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모두 태우는 위험한 발상이라는 뜻이다.

외국산 기름의 수입도 절대 대안이 될 수 없다. 이미 우리는 휘발유와 경유의 수출대국이다. 일본과 중국이 우리의 주요 고객이다. 그런 상황에서 일본이나 중국의 기름을 더 싸게 수입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순진한 것이다. 싱가포르 석유시장에서 '덤핑' 제품을 대량으로 수입을 고려한다는 보도는 믿고 싶지 않다. 정부가 공개적으로 내놓을 수 있는 정책도 아니고,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는 우리의 국격에 어울리는 일도 아니다. 외국에서의 수입이 불가능한 이유는 또 있다. 우리의 품질기준이 일본이나 중국보다 훨씬 더 엄격하기 때문이다. 서울의 공기가 깨끗해진 진짜 이유도 정유사의 탈황(脫黃) 시설 덕분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제 와서 알뜰 주유소를 위해 품질기준을 완화시킬 수는 없다. 외국 정유사에게 우리 품질기준에 맞도록 특별 생산을 요구하겠다는 발상도 허무맹랑한 것이다.

이제 정유사와 주유소만 부당하게 압박하는 알뜰 주유소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길이 없는 것도 아니다. 고유가의 고통을 줄이는 가장 현실적이고 확실한 길은 유류세 개편이다. 절반이 넘는 세금을 그냥 두고 고유가의 고통을 줄이는 묘책은 없다. 세수 확보를 핑계로 고집을 부릴 일이 아니다. 과도하고 불합리한 유류세의 폐해는 상상을 넘어선다. 주유소 폭발 사고까지 일으킨 유사 석유나 9ㆍ15 전력대란도 잘못된 유류세와 무관하지 않다. 유류세 환급이나 면세에 따른 도덕적 해이와 재정 낭비도 심각하다. 간접세인 유류세가 국세의 20%를 훌쩍 넘는 것도 국가의 재정 건전성을 해치는 일이다. 사실 국민들이 고유가로 신음하는 동안 정부는 유류세의 달콤한 맛을 즐기고 있다. 올해 기름값이 오른 덕분에 정부가 추가로 거둬들인 부가가치세만 해도 무려 6000억을 넘는다고 한다. 유류세 추가 징수분의 규모는 훨씬 더 크다는 뜻이다.

유류세 체제를 그냥두고 할 수 있는 일도 있다. 탄력세율을 적용하는 것이다. 사실 지금처럼 기름값이 급격히 상승해서 사회적으로 심각한 어려움이 발생하면 유류세 세율을 탄력적으로 적용하라는 것이 당초 입법 취지였다. 탄력 세율의 적용은 정부가 외면해서는 안 될 책임이고 의무인 셈이다. 적어도 기름값 인상에 따라 추가 세수만큼이라도 소비자에게 돌려줘야 한다.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은 제쳐두고 공연히 정유사와 주유소를 탓하는 정부는 더 이상 믿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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