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선 방안이 모두 실현되면 최악의 상황에서 중대 원전사고가 발생하는 것을 사전에 막는 `예방` 조치는 물론, 중대 사고 후 피해를 줄이는 `관리` 부문 모두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것입니다."

원자력안전위원인 장순흥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는 6일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날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전국 21개 원전에 대한 점검 결과로 제시한 50가 지 개선 대책의 의미를 이같이 평가했다.

일본의 사례처럼 상상을 초월한 지진ㆍ쓰나미(지진해일) 등이 발생했을 경우 원전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방파제ㆍ방수시설ㆍ자동정지 시스템 등을 갖추는 동시에, 불가피하게 원전이 타격을 입더라도 수소제거기 등을 통해 폭발 등 추가 피해를 최대한 막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해안방벽 높이고, 내진성능 키우고, 원자로 자동정지까지 = 현재 가동 중인 국내 원전은 리히터 규모 6.5, 지반가속도(지진으로 실제 건물이 받는 힘) 0.2g에도 견딜 수 있게 지어졌다. 완공을 앞둔 신고리 3ㆍ4호기의 경우 기준이 각각 6.9, 0.3g에 이른다.

그러나 원자력안전위와 원자력 안전 규제 당국은 이번 일본 후쿠시마 대지진과 쓰나미를 교훈 삼아, 설계기준을 웃도는 강진 가능성을 전제로 개선 사항을 추가했다. 우선 2012년까지 일정 규모(지반가속도 0.18g) 이상의 지진이 감지되면 원자로 가 자동으로 멈추는 시스템을 갖춘다. 현재는 0.01g 정도가 감지되면 경보가 울리고, 운영자 측에서 수동으로 원자로 정지 여부를 판단하는 방식이다.

아울러 원자로 정지나 잔열 제거 등과 관련된 설비들에 대한 성능 재평가를 진행, 신형 원전 설계지진 강도(0.3g) 수준까지 보강하고 국내에서 나타날 수 있는 최대 지진 강도를 2013년까지 재검토할 예정이다.

국내 또는 일본 서해안의 지진에서 비롯된 초대형 쓰나미에 대한 준비도 시작된 다. 현재 고리ㆍ월성ㆍ영광ㆍ울진 원전들은 지역별로 최고 5.7~8.4m 정도의 해수위를 예상하고 7.5~12m의 부지 높이(해안방벽 포함)를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고리 1ㆍ2호기의 경우 예상 최고 해수위에 비해 부지 높이의 여유가 0.3m에 불과한 만큼, 해안방벽을 1.7m에서 4.2m로 증축하기로 했다. 또 일본 후쿠시마 원전의 비극이 비상디젤발전기의 침수로부터 시작된 것에 주목, 2014년까지 모든 원전의 비상전력계통 및 주요 안전설비 구조물에 방수문과 방수형 배수펌프를 설치한다.

침수 때문에 비상전력 공급까지 여의치 않은 상황을 가정하고, 차량에 장착하는 이동형 비상발전기와 축전지도 2014년까지 원전 부지별로 1대씩 확보하기로 했다. 전국 무인환경방사선 감시기도 현재 71개에서 120개로 늘리고, 14곳에 있는 지방 방사능 측정소도 서울 남부와 인천ㆍ울산ㆍ진주에 추가로 설치한다.

◇전원 필요없는 수소제거기, 격납용기 감압 설비 설치 = 이 같은 예방책에도 불구, 전원이 끊기거나 원전이 비정상적으로 멈춘 뒤 우려되는 각종 중대사고 위험에 대한 `관리` 대책도 마련됐다.

장 교수는 "이번에 발표된 중대사고 대응 방안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2013년까지 모든 원전에 `피동형 수소촉매 재결합기(PAR)`를 설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 확인했듯이, 원자로 냉각에 실패해 노심 온도가 올라가 기 시작하면, 핵연료를 싸고 있는 지르코늄 피복재에서 수소가 발생한다. 이 수소 농도가 90% 이상에 이르면 `수소 폭발`이 일어나 원전 사고의 피해가 커지는 것이다. 현재 국내에서 가동 중인 21기 원전 가운데 전원이 필요없는 이른바 `피동형` 수소제거기를 갖춘 곳은 수명연장이 이뤄진 고리 1호기와 신고리 1호기 정도다.

나머지 19기의 경우 수소제거기가 없거나(월성 1호기), 열 재결합기(고리 2~4호기, 영광 1~4호기, 울진 1~2호기), 점화기(월성 2~4호기), 열재결합기 및 점화기(영광 5~6호기, 울진 3~6호기)를 사용하고 있다.

열 재결합기는 수소와 산소를 결합해 물을 만드는 방식으로, 점화기는 수소를 태우는 방식으로 수소를 없애긴 하지만, 피동형 수소제거기와 달리 모두 전원이 끊어지면 무용지물이 된다. 아울러 격납건물 내 압력 상승을 막기 위해 배기 또는 감압설비도 2015년까지 모든 원전에 설치된다.

또 후쿠시마에서 내부 압력 등 때문에 냉각수를 원자로 내부에 주입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던 사실을 거울삼아, 모든 국내 원전의 1차측(원자로) 및 2차측(터빈)계통에 따로 비상시 냉각수를 외부에서 넣을 수 있는 길(유로)을 내기로 했다. 방사성 물질 유출시 원전 인근 주민을 최대한 보호하기 위해 현재 12만명분, 6만대 정도 확보하고 있는 요오드화 칼륨과 방독면 수량도 각각 50만명분, 48만개까지 늘린다.

◇고리 1호기는 `검사 강화` = 지난 12일 전력 차단기 고장으로 멈춰선 뒤 `수명 연장` 논란에 다시 휩싸인 고리 1호기의 경우, 원자력위와 당국은 일단 현재 상태로 안전에 이상이 없는 만큼 가동을 승인하되 장ㆍ단기 개선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앞으로 고리 1호기에 대해서는 다른 원전과는 달리 해마다 실시하는 안전검사 항목에 `계속운전` 관련 점검 요소(주요기기 수명감시 등)가 추가된다. 원자로 용기용접부위 검사주기는 기존 10년에서 5년으로 줄이는 반면 주요 안전 배관의 검사 범위는 전체의 25%에서 50%를 늘린다.

원자로 용접부 안전성 논란과 관련, 윤철호 원자력안전기술원장은 "이번 정밀검사 과정에서 성균관대 연구팀에 별도의 용역을 의뢰한 결과, (계속 운전에 문제가 없다는) 기술원의 결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또 이번 차단기 고장과 같은 고장이 재발해도 다른 외부 전력선로를 통해 주요 기기에 대한 전력공급은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전력공급계통 설계 개선 작업에 착수하는 한편, 부품 제조사가 설계 변경 사항을 반드시 통보하도록 기기공급계약서 등에 명시하도록 했다.

다만 이번 고리 1호기 정밀검사 과정에 시민단체 등이 직접 참여하지 않아 `수명 연장`에 대한 타당성 논란이 완전히 가라앉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에 대해 김창경 교과부 2차관은 "원전 부근 주민, 지자체, 민간 환경감시기구등으로부터 24가지 기술적 건의사항 등을 받았고, 이를 반영해 50가지 개선책이 결정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당국은 원전 안전 관련 대국민 `소통`의 일환으로 향후 지역 민간 환경감시기구 등이 요청하는 경우 각 원전 정기검사에 대한 참관을 허용하기로 했다. 원전 사업자에 대해서도 분기마다 원전 부지별 지역주민과의 정례회의를 열도록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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