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오 정경과학부 기자
위기는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하지만 최악의 리더는 그동안 숨겨왔던 리더십의 끝을 드러내게 마련이다.

최은영 한진해운 회장은 지난 21일 새벽, 한진텐진호가 소말리아 해적의 공격을 받았다는 보고를 접하고 김포공항으로 향하던 차를 곧바로 서울 여의도 본사로 돌려세웠다.

그는 비상상황실을 점검하며 오후 9시쯤 '선원이 모두 무사하다'는 정부의 공식발표가 있을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 최 회장은 임직원들의 동요를 막고 사태 수습을 진두지휘하면서 위기 때 더욱 빛을 발하는 CEO의 면모를 보여줬다. 이날은 경남 거제 삼성중공업에서 1만TEU급 컨테이너선 '한진차이나' 명명식이 예정돼 있었는데 이 선박은 자사 발주한 5척의 동급 선박 중 3번째 배로 매우 중요한 행사였다.

이튿날인 22일 서울 충정로 농협 별관. 사상초유의 전산장애 사태와 관련해 IT 관련 총괄 임원인 이재관 농협 전무가 "(이번 사고의)책임을 지고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이 전무는 (회장의 퇴진을 막기 위한) 농협의 '꼬리자르기' 라는 지적에 "최원병 회장은 비상임이라 이번 사태의 책임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최 회장이)비상근이라 실질적으로 결제하는 부분이 거의 없다. 대외 대표권과 이사회 관련만 결제하고 업무 설계나 투자계획 수립 등에는 관여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최 회장은 여론을 의식한 듯 농협의 대국민사과 이후 공식석상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20일 국회에서 열린 농림수산식품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것이 전부다. 하지만 농협의 100% 원상복구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각종 음모론까지 제기되는 상황에서 수장인 최 회장이 버틸 수 있는 카드가 많지 않다는 것이 지배적인 관측이다.

전문가들은 CEO가 감당하기 힘든 스트레스와 압박 속에서도 해야 할 말, 행동, 결정, 해서는 안 되는 말을 분별하고 실행하지 못하면 위기는 걷잡을 수 없이 가속화된다고 말한다. 최원병 회장은 지금 그 중요한 시험대 위에 서있다.

김진오기자 jo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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