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 순천향대 신경외과 교수
미국 하바드 대학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과 강의가 열풍이다. 하루를 살면서 아무 생각 없이 지내는 것과 순간순간 고민할 수 있는 의제를 제시하는 샌델 교수의 강의는 참으로 뇌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는 것 같다.
의학분야에서도 항상 '무엇이 정의인가'라는 것에 고민하는 문제들이 많다. 우선 생명윤리적 관점에서 보면 딸 부잣집에 아들을 원해 임신한 여성이 태아의 성감별을 원하는 경우에 과연 초음파로 진단하여 알려주는 것이 옳은 것인가 하는 문제는 낙태와 연결되므로 매우 심각한 도덕적 문제를 제기한다. 태아를 생명체로 보느냐 아니면 생명이 없는 전단계로 보느냐 하는 문제이다.
얼마전 응급실로 내원한 고혈압성 뇌출혈 환자가 있었다. 출혈 양이 너무 많아 이미 뇌는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동공은 양쪽이 열려있어 뇌간의 기능이 마비된 상태이므로 수술을 해도 생명을 구하기 힘들고, 운이 좋게 생명을 구한다 하더라도 식물인간 이상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물론 가족들은 기적을 바라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달라고 수술을 원하지만 의학적으로 기적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설명하였다. 과연 이때 수술을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아니면 수술을 하지 않는 것이 옳은지 고민하게 된다.
또 다른 경우를 들어보면 40대 여자가 2층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다가 발을 헛디뎌 떨어졌다. 경추 골절 뿐 아니라 척수 손상도 함께 발생되어 평생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어야 하고 사지마비로 손가락 까닥 하지 못하는 상태로 2년을 보냈다. 환자는 의사표현을 입 모양으로 할 수 있었다. 남편과 두 아들이 있었고, 오랫동안의 병원비로 가세는 기울어 가족들의 생활은 말이 아니었고, 다행이 보험은 있었지만 생명보험이기 때문에 혜택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환자는 견디다 못해 사는게 너무 고통스러우니 편히 가고 싶다고 매일 애원하고 있었다. 인간답게 죽을 수 있는 권리 주장과 생명의 존엄성 사이에서 당신이 의사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안락사를 시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아니면 자신은 자살도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비참한 생활을 지속시키는 것이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는 행위인가? 이런 여러가지 철학적 문제에 대한 옳은 판단을 하기 위해 수 천년 전부터 철학자들은 고민하고 아직까지도 정답을 찾고 있는 듯 하다.
말기 암환자에게 당신의 생명은 3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마지막까지 희망을 주는 것이 옳은가? 난치병환자들을 위해 인간배아복제는 정당한가? 종교적 이유로 수혈을 거부한 환자를 수술 할 때 수혈을 하지 않으면 생명을 잃게 되는 경우 수혈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수만 명을 죽인 전범을 수술 할 때 과열 최선을 다해 수술 할 것인가? 자궁결함으로 불임의 환자가 대리모의 자궁에 수정란을 이식하는 행위는 정당한가? 이처럼 수많은 의학분야에서의 윤리적 판단의 갈림길에서 철학적 정의를 찾기란 쉽지 않다.
"만약 어떤 과학이 철학이라는 뿌리로부터 벗어나면, 그 과학은 고사되고 만다"는 프레드리히 펄센의 말은 의학에서도 철학적 사고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경고해 주고 있다.
인간의 몸에 칼을 댄다는 것은 불법이지만 의사가 수술을 위해 메스를 사용하는 것은 합법적 행위이다. 그러므로 합법적으로 칼을 휘두르는 의사는 확실한 윤리관을 가지고 최선의 치료를 할 수 있도록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철학적으로 교육을 받은 의사는 신을 닮는다'는 히포크라테스의 교단에서 나온 이 말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을 치료하는 것이지 병만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며 의사의 무지로 인해 환자가 고통 받지 않도록 평생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의미로 생각된다. 철학적으로 생각할 줄 아는 의사들에게서 최고로 완성된 것으로 인정받았던 고대의 '히포크라테스의 선서'의 되새김이 필요하다.
얼마 전 한 드라마의 유행어인 '이게 최선입니까?'라는 말은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의제와 함께 모든 사회에서 요구되는 두 가지 결정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듯하다. 의사에 있어 정의란 생명존엄의 원칙에서 출발해 옳은 길을 택하고, 그것에 최선을 다하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미국 하바드 대학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과 강의가 열풍이다. 하루를 살면서 아무 생각 없이 지내는 것과 순간순간 고민할 수 있는 의제를 제시하는 샌델 교수의 강의는 참으로 뇌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는 것 같다.
의학분야에서도 항상 '무엇이 정의인가'라는 것에 고민하는 문제들이 많다. 우선 생명윤리적 관점에서 보면 딸 부잣집에 아들을 원해 임신한 여성이 태아의 성감별을 원하는 경우에 과연 초음파로 진단하여 알려주는 것이 옳은 것인가 하는 문제는 낙태와 연결되므로 매우 심각한 도덕적 문제를 제기한다. 태아를 생명체로 보느냐 아니면 생명이 없는 전단계로 보느냐 하는 문제이다.
얼마전 응급실로 내원한 고혈압성 뇌출혈 환자가 있었다. 출혈 양이 너무 많아 이미 뇌는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동공은 양쪽이 열려있어 뇌간의 기능이 마비된 상태이므로 수술을 해도 생명을 구하기 힘들고, 운이 좋게 생명을 구한다 하더라도 식물인간 이상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물론 가족들은 기적을 바라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달라고 수술을 원하지만 의학적으로 기적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설명하였다. 과연 이때 수술을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아니면 수술을 하지 않는 것이 옳은지 고민하게 된다.
또 다른 경우를 들어보면 40대 여자가 2층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다가 발을 헛디뎌 떨어졌다. 경추 골절 뿐 아니라 척수 손상도 함께 발생되어 평생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어야 하고 사지마비로 손가락 까닥 하지 못하는 상태로 2년을 보냈다. 환자는 의사표현을 입 모양으로 할 수 있었다. 남편과 두 아들이 있었고, 오랫동안의 병원비로 가세는 기울어 가족들의 생활은 말이 아니었고, 다행이 보험은 있었지만 생명보험이기 때문에 혜택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환자는 견디다 못해 사는게 너무 고통스러우니 편히 가고 싶다고 매일 애원하고 있었다. 인간답게 죽을 수 있는 권리 주장과 생명의 존엄성 사이에서 당신이 의사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안락사를 시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아니면 자신은 자살도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비참한 생활을 지속시키는 것이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는 행위인가? 이런 여러가지 철학적 문제에 대한 옳은 판단을 하기 위해 수 천년 전부터 철학자들은 고민하고 아직까지도 정답을 찾고 있는 듯 하다.
"만약 어떤 과학이 철학이라는 뿌리로부터 벗어나면, 그 과학은 고사되고 만다"는 프레드리히 펄센의 말은 의학에서도 철학적 사고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경고해 주고 있다.
인간의 몸에 칼을 댄다는 것은 불법이지만 의사가 수술을 위해 메스를 사용하는 것은 합법적 행위이다. 그러므로 합법적으로 칼을 휘두르는 의사는 확실한 윤리관을 가지고 최선의 치료를 할 수 있도록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철학적으로 교육을 받은 의사는 신을 닮는다'는 히포크라테스의 교단에서 나온 이 말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을 치료하는 것이지 병만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며 의사의 무지로 인해 환자가 고통 받지 않도록 평생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의미로 생각된다. 철학적으로 생각할 줄 아는 의사들에게서 최고로 완성된 것으로 인정받았던 고대의 '히포크라테스의 선서'의 되새김이 필요하다.
얼마 전 한 드라마의 유행어인 '이게 최선입니까?'라는 말은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의제와 함께 모든 사회에서 요구되는 두 가지 결정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듯하다. 의사에 있어 정의란 생명존엄의 원칙에서 출발해 옳은 길을 택하고, 그것에 최선을 다하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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