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 서강대 화학ㆍ과학커뮤니케이션 주임교수
■ 2011 코리아 어젠다 - 과학기술

신묘년 토끼의 해가 밝았다. 경인년의 백호(白虎)는 과학기술계의 편은 아니었던 것 같다. 2010년은 세종시 논란, 나로호 실패, 출연연 개편에 대한 여러 소문으로 힘겨웠던 한 해였다. 우리 손으로 만든 쇄빙선 아라온 호와 KSTAR의 핵융합 성공 소식은 묻혀 버렸고, 애타게 기다리던 노벨상도 우리를 비켜가 버렸다. 어렵사리 과학비즈니스벨트와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 고작이었다. 이제 힘겨웠던 기억은 뒤로하고 토끼의 지혜를 빌어서라도 진정한 과학기술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변화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그 시작이다. 아직도 40년 전의 기억에 매달려서 '과학 대통령'을 고집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설사 대통령이 그런 역할을 원한다고 해도 대통령이 과학기술에만 매달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우리 사회의 발전과 민주화에 따라 법과 제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제 대통령의 보호 속에서 편하게 안주하겠다는 생각은 버리고, 과학기술계 스스로 살 길을 찾아내야 한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물론 연구개발(R&D)이 가장 중요하다. 연구개발을 소홀히 하는 과학기술은 존재 이유가 없다. 우리 사회가 절박하게 요구하는 첨단 기술을 끊임없이 쏟아내야 하고, 다른 선진국의 과학자들과 함께 진정한 의미의 과학 지식의 확대와 진흥에 적극적으로 기여해야 한다. 나무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달콤한 열매만 따먹겠다는 낡은 인식은 버려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도 당당한 선진국으로 도약을 할 수 있다. 열린 마음의 민주적 합의 정신을 외면하고 투서와 진정을 매달리는 잘못된 관행도 버려야 한다.

과학기술계의 목소리를 키우는 노력도 물론 중요하다. 그렇다고 과학기술인들이 무작정 길거리로 나설 수는 없다. 길거리로 나서는 의지와 용기는 높이 살 수 있겠지만 우리 사회를 앞장서서 이끌어 가야 할 과학기술계의 입장에서는 최소한의 품위를 지켜야 한다. 어떠한 극한 상황에서도 격을 갖춘 성실한 대화와 논리적인 설득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과학기술계가 자신들의 목표를 위해 물불을 안 가리는 이익집단처럼 행동할 수는 없다.

과학기술을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던져 넣는 일도 철저하게 경계해야 한다. 과학비즈니스벨트가 정치적인 세종시 논란의 '주변적' 이슈로 전락하는 모습은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었다. 과학기술계의 입장에서 정치인들을 앞세우는 것이 편한 선택일 수는 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박아둔 '대못'은 역시 정치적으로 무력화되기 마련이다. 부총리 부서로 승격시켰다고 환호했던 과학기술부가 한 순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경험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과학기술은 초당적 협력의 대상으로 남아야 한다.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정치적 중립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결국 과학기술계의 목소리는 '국민'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 민주화된 사회에서 진정한 힘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이 경제 성장이나 노벨상에 한정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해줘야 한다. 선정적 수식어로 소중한 연구개발 성과의 의미와 가치를 떨어뜨리는 얄팍한 홍보 노력도 포기해야 한다. 과학을 '쉽고 재미있는' 오락으로 변질시키는 엉터리 과학 교육과 과학문화 확산 노력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 과학기술과 관련된 사회적 논란에도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야 한다.

무엇보다도 현대 사회에서 과학이 우리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과학적 세계관'의 가장 핵심적인 기반임을 더욱 강조해야 한다. 현대 과학의 인문학적 가치를 강조해야 한다는 뜻이다. 지난 한 세기 동안 현대 과학이 밝혀낸 우주, 자연, 생명에 대한 새로운 과학적 사실이 얼마나 획기적이고 대단한 것이고, 첨단 기술이 우리 인류를 얼마나 건강하고, 안전하고, 평등하게 살 수 있도록 해주었는지도 확인시켜야 한다. 올해부터 고등학교에서 소개되는 '융합형 과학'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조금 어렵고 먼 길을 돌아가더라도 과학적 합리성을 기반으로 하는 '과학정신'이 우리 사회에 확고하게 뿌리를 내리도록 하는 노력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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