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 국무장관 자금책 등 유명인사 표적"
"요즘 같은 시대에 도대체 뭘 빼내려고 한 거죠? 노력한 만큼 얻지도 못했어요."

미국 중앙정보국(CIA)에서 간첩활동을 지휘했던 리처드 스톨츠는 이번에 미국에서 불법 정보수집 혐의로 체포된 러시아 정보요원들의 행태를 이해할 수 없다며 이 같이 말했다.

이들은 첩보 활동을 위해 특수 훈련을 받고 최첨단 기구로 무장했으며 미국 문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뭇시선을 따돌리는 등 `완벽한 간첩`의 면모를 갖췄지만정작 기밀정보 수집에는 실패했다는 지적이다. 실제 이들은 간첩행위로 기소되는 대신 외국 정보기관을 위해 불법적으로 활동한 혐의와 돈세탁 혐의를 받았을 뿐이다.

뉴욕타임스(NYT)는 29일 11명의 정보요원이 오랫동안 활동하면서 기밀정보를 모국 러시아에 보내지 못하고, 인터넷으로 더 잘 수집할 수 있는 정가의 소문이나 정책 논쟁을 수집하는 임무를 수행했을 뿐이라고 전했다.

미국과 러시아 양측이 이번 사건으로 양국 관계가 훼손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대목도 이들의 활약상이 그다지 엄중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러시아 외교부는 11명 중 일부가 자국 국적자임을 인정하면서 "그들이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은 일절 저지르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모스크바 본부에서는 이들의 신분이 미국 정부의 조사로 노출되는 것을 꺼려 정부 내 직책을 맡지 않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신문 내용이나 외교.안보 분야의 주요 인물을 브리핑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정도가 이들의 `당면 과제`였다는 얘기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이 정도의 임무라면 본국이나 재외공관의 관련 전문가, 또는 워싱턴 소재 연구소에 의뢰하면 되지 않을까?과거 공산권의 CIA 지부에서 비밀리에 활동했던 밀튼 비어든은 이를 "해일 메리패스(Hail Mary pass)"라고 표현했다.

미식축구에서 경기가 끝날 즈음 무작정 전방을 향해 던지는 패스처럼 여기저기 정보원을 심어놓고 행여 낚일지 모를 `대어`를 기다리는 행태라는 것이다.

미국 언론은 이에 대해 러시아 정보 당국이 재무, 첨단기술 등 자국의 이해와 밀접한 분야에서 주요 정보를 빼낼 수 있는 요원을 양성하기 위해 "느리고 끈질긴 수법"을 썼다고 평했다. 일단 대어는 낚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지만 연장은 다채로웠다.

그림 속에 메시지를 숨기는 스테가노그래피 암호기술부터 가방 바꿔치기까지 첨단과 고전을 오가며정보를 주고받았으며, 그만큼 개인 역량도 뛰어났다. 정보요원들은 직접 공직을 맡지는 않았지만 유명인사와 친분 쌓는 일은 게을리하지 않았다. 20대 여성 사업가로 활동한 안나 채프먼은 저명한 미국 경제학자 누리엘 루비니뉴욕대 교수의 페이스북 친구였다.

특히 금융설계사로 일하며 금융업체 부사장까지 지낸 신시아 머피는 뉴욕의 유명 벤처투자자이자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 민주당의 주요 정치자금 조성책인 앨런 패트리코프의 계좌를 관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언론은 머피가 사무와 관련해 개인적으로 만났다는 인물이 패트리코프일 가능성이 크다면서 그가 스파이의 `표적`이었다고 보도했다. 한편, 일부에서는 러시아 요원들이 이번에 체포되지 않았더라도 결국엔 비교적 풍족한 미국 생활에 만족하며 조용히 지냈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요원 상당수가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라는 점은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검찰의 기소 내용에 따르면 이 가운데 페루 국적의 뉴욕 칼럼니스트 비키 펠리즈는 5만달러, 금융설계사 머피는 13만5천달러의 연봉을 받았으며 채프먼의 자산은 200만달러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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