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화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
여러 장의 종이를 하나로 잡아주는 클립은 아주 간단하게 생겼다. 3센티 정도의 가는 철사를 두 번 돌린 것이라 철사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다. 그럼에도 클립이 인간이 만든 20세기 최고의 발명품으로 평가되는 것은 이 두 겹의 철사 속에 과학과 기술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클립은 아주 단순한 모양 안에서 비틀림과 마찰의 힘을 함께 이용한 도구다. 1947년 쇼클리 박사는 이 클립을 펴서 반도체와 금속을 연결해 반도체의 시초가 된 새로운 진공관을 발명해냈다. 20세기 인간이 만든 최고의 첨단기술 반도체를 만드는 데 가장 단순한 클립이 쓰인 것이다.

클립처럼 단순하지만 많은 기술이 담겨져 있는 것이 우리 생활 속에 또 있다. 바로 자전거다. 15세기 다빈치의 제자인 카프로티라는 사람이 처음 설계한 자전거는 18세기 후반 들어 굴러가도록 만들어졌고, 19세기 초부터 달리는 기계로 상품화되어 팔리기 시작했다. 몸체를 나무로 만들고 핸들이 고정되어서 몸을 기울여서야 조금 방향을 틀 수 있었다. 그럼에도 당시로서는 가장 빠르게 달리는 기계인 탓에 종종 교통사고를 내서, 사람을 다치게 하는 위험한 것으로 인식되기도 했다고 한다.

몸체가 나무인 초기 자전거는 그 무게가 무려 22킬로그램에 달해 힘센 사람만 쉽게 쓸 수 있었다. 그러나 몸체를 나무보다 강한 쇠로, 바퀴살은 가는 철사로, 브레이크는 구리 부싱으로 만들면서, 더 단단하고 중심이 쉽게 잡히는 자전거로 발달해갔다. 요즘 우리가 쓰는 자전거의 모습은 20세기 초에 만들어진 것인데, 앞바퀴에 힘을 주는 것보다 안장에 앉아서 체인으로 뒷바퀴를 굴려서 편안하게 달리도록 발전한 것이다. 뒷바퀴에 변속기를 달아서 더 빠르게 달리거나 경사진 언덕길도 올라갈 수 있도록 한 단계 더 진보하였다.

남녀노소 누구나 자전거를 안전하게 탈 수 있게 되면서 자전거 타기는 스포츠로 발달했다. 자전거 클럽이 우후죽순처럼 나타났고 여성들은 자전거 탈 때 입는 옷으로 패션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긴 치마가 체인에 걸려 넘어지는 바람에 다치기도 했지만 자전거 타는 멋을 뽐내려는 욕구를 막지는 못했고, 남자들은 말 탈 때 신는 구두로 멋을 내기도 했다. 이동수단이던 자전거가 패션 상품을 발전한 것이다.

20세기 후반 들어 자전거는 또 다른 탈바꿈을 한다. 차체를 가벼운 알루미늄을 바꾸면서 그 무게를 반 정도로 가벼워졌다. 특히 알루미늄을 첨단 비행기에 쓰는 티타늄으로 바꾼 자전거는 웬만한 오토바이보다 비싼 값에 팔린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자전거가 디자인과 결합해서 새로운 붐을 탄다는 기사를 실었다. 부속품을 비싼 재료로 손으로 깎고 휘고 다듬어서 만든 수제품은 1500만 원을 호가한다고 한다. 첨단 재료를 쓴 것보다 새로운 디자인으로 나만 갖는 자전거를 비싸게 파는 것이다. 단순한 운송 수단이었던 자전거가 미적 감각과 융합되어 또 하나의 패션 상품으로 새로운 시장을 열고 있는 것이다. 자전거는 그 모양이 단순하지만, 기구학과 동역학 등 기초역학과 재료선택과 인체공학이 결합된 과학과 기술의 집합체이다. 이런 이유로 공과대학에서는 물리학과 기구학을 가르치는 과목으로 '내 자전거 고안하기'가 수업과정에 있다.

요즘 현대인에게 자전거가 각광받는 가장 큰 이유는 뭐니뭐니 해도 건강과 환경 때문이다. 자동차와 달리 석유나 석탄을 쓰지 않는 친환경 운송수단인데다, 사람의 발로 굴리는 좋은 운동기구라 체중을 빼는 것은 물론 근육도 강화시키는 건강의 도구가 바로 자전거다.

과학과 기술은 종이 클립과 자전거처럼 항상 우리 주변에 있다. 시대에 따라 꾸준히 발전하기도 하고 쓰임새 또한 다양하게 돈다. 또 어떤 기술은 디자인과 결합해서 예술품으로 발달하기도 한다. 21세기는 융합의 시대, 새로운 분야를 창조해내기 위해서 인문사회 분야는 물론 예술과 스포츠에 일하는 사람들도 과학과 기술을 다양하게 익혀야 한다. 더 큰 부가가치를 만드는 비법과 사물과 현상을 새롭게 바꾸는 힘이 그 안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타고 산으로 들로 나가기 좋은 계절이다. 시원한 바람을 헤치고 자전거 타며 부드럽게 굴러가는 두 바퀴 속에 숨어 있는 기술의 신비로움과 고마움을 생각해보자.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