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주성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요즘 IT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들을 보면 마치 10여 년 전의 장면을 다시 보는 것 같다.

외환위기 직후 정부의 초고속정보통신망 정책은 1999년 두루넷의 초고속인터넷 서비스를 시작으로 KT와 데이콤의 경쟁에 불을 집혔다. 3년도 안된 2002년 말 1000만 가구에 인터넷이 보급되었고, 같은 해에 붉은 악마의 거리응원, 노사모, 효순ㆍ미순 등 전대미문의 사건들이 벌어졌다. 인터넷이 우리 사회의 핵심적인 의사소통과 표현의 플랫폼으로 등장한 서막이었다. 하지만, 막상 그러한 변화가 임계점을 지나치던 2000년대 초만 해도 인터넷이 우리의 일상생활과 산업 및 정치와 사회 전반에 이렇듯 중요한 인프라가 될 것으로 예측했던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은 어떠한가? 2008년 2월 통합된 방송통신위원회가 출범하였다. 같은 해 9월에 IPTV사업자가 선정되고 11월 실시간 지상파를 포함한 IPTV상용서비스가 제공되기 시작하였다. 그 이후 한 동안은 미디어법과 종편 문제 등 정치적 이슈로 정체되더니, 드디어 아이폰이 잠자던 스마트폰과 모바일 인터넷 시장을 일깨우기 시작한 것이다.

스마트폰은 단순한 기기가 아니라 인터넷과 모바일의 본격적 융합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가정과 직장의 책상 위에 묶여 있던 인터넷이 거리로, 버스와 지하철로, 식당과 쇼핑센터로, 그리고 광장과 공원으로 쏟아져 나오게 된 것이다. 모바일 인터넷은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아직 섣불리 속단하긴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기존에 인터넷을 통해 할 수 있었던 거의 모든 활동들이 이동 중에도 가능해 질 것이다. 스마트폰은 인터넷 검색, 소셜네트워크 서비스, 이메일은 물론 아직은 구현되지 않은 뱅킹, 쇼핑, 결재 등 모든 영역으로 그 범위를 확대해 갈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다. 궁극적으로는 인터넷과 모바일 그리고 TV가 하나의 플랫폼으로 통합되는 융합의 극상이 올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되짚어 볼 것이 있다. 컨버전스 즉, 융합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흔히 융합은 기술적이고 기능적으로 정의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컨버전스는 전화를 컴퓨터나 TV를 통해 걸거나, TV라는 플랫폼이 드라마나 영화뿐만 아니라 인터넷이나 영상전화까지 제공하는 등의 변화에 그치지 않는다. 컨버전스는 사람들이 의사소통하고 정보와 콘텐츠를 주고받는 방식의 변화를 의미하며, 이것을 기점으로 사회 제 부문 간 이질적 요소들이 모이고, 섞이고, 바뀌고, 나뉘는 등의 현상을 포괄한다. 컨버전스는 기술적, 기능적 현상을 넘어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현상이라는 말이다. 컨버전스 환경은 공급자들이 일방적으로 끌어나가는 시장이 아니라 공급자와 수요자가 긴밀한 상호작용을 통해 접점을 찾아나가는 협력적 과정이다. 수직적 결합의 폐쇄성을 깨고 동일한 출발점에서 오로지 서비스와 콘텐츠의 경쟁력으로 승부하는 세계이다.

이러한 세계에서는 '나홀로 산다'는 생각으로는 생존하기가 어렵다. 우리의 IT생태계는 성장을 최고로 삼는 경쟁논리가 지배해왔다. 적자생존의 사회에서 다른 경쟁자나 하청업체를 배려하는 것은 강자의 시혜였다. 하지만, 네트워크 기반의 경쟁환경에서는 '나홀로'라는 오만으로는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어차피 그게 누구이건 어떤 제품에 대해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내가 갖고 있는 지식이 설사 70%에 이른다 하더라도 나머지 30%를 수용해야 온전한 지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은 지난 2000년대 초 인터넷 시대에서는 세계 IT강국이었다. 하지만 지난 5년 여 간 우리의 IT경쟁력은 급속히 뒤쳐지고 있다. 왜일까? 아이폰의 등장에 한국의 IT계가 들썩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컨버전스 시대에 한국이 IT강국으로 재도약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이고 그에 적절한 생태계와 각자의 역할을 설계해야 한다. 5년, 혹은 10년 후 컨버전스의 미래가 오늘을 어떻게 기록할지는 여기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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