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필더진의 짧고 세밀한 패스를 앞세운 일본은 국립경기장을 메운 5만여 홈팬들의 응원 속에 한국을 첫 우승의 제물로 삼겠다는 듯 초반부터 강한 공세로 밀고 나왔다.
하지만 한국이 안정적인 수비를 구축하고 나서 역습으로 한 방을 노리겠다는 허정무 감독의 전술대로 중국과 경기 때 불안함을 노출했던 포백 수비진이 일본 공격수들의 예봉을 효과적으로 막아냈다.
경기 시작 2분 만에 문전으로 달려들던 이나모토 주니치를 수비하던 조용형이 위험지역에서 공을 제대로 걷어내지 못하면서 아찔한 순간을 맞았으나 다행히 협력 수비로 위기를 넘겼다.
한국은 신형민의 강한 압박으로 팽팽한 중원 기 싸움에서 주도권을 놓치지 않았고 강한 투지로 공격의 수위를 높여갔다. 이동국은 상대 진영에서 과감한 태클로 공을 빼앗는 적극성을 보였고 이승렬은 전반 10분 오른쪽 수비 뒷공간으로 돌아들어 가는 김보경에게 절묘한 스루패스를 찔러줬다. 김보경의 왼발 크로스가 상대 수비수에게 걸린 게 아쉬웠다.
한국은 중국과 경기와는 사뭇 다른 강한 투지로 일본과 대등한 플레이를 이어갔지만 의욕이 지나쳤던 탓일까.
한국은 전반 22분 수비 상황에서 페널티지역에서 공세적인 수비수 다나카 툴리오를 집중적으로 마크하던 강민수가 뒤쪽에서 왼족 팔로 목을 감는 듯한 행동으로 경고를 받으면서 페널티킥을 허용했다.
키커로 나선 엔도 야스히토는 오른쪽으로 먼저 움직인 골키퍼 이운재를 속이고 가운데로 강하게 차 골망을 흔들었다. 공격의 흐름에 찬물을 끼얹는 아쉬운 선제골이었다.
하지만 일격에 자극을 받은 태극전사들이 불굴의 의지로 일본을 상대로 거센 반격을 펼쳐 극적인 역전승을 엮어냈다.
한국은 10분 후 이승렬의 절묘한 패스를 받은 김보경이 상대 페널티지역에서 수비수 벽을 돌파하다 우치다 아쓰토의 발에 걸려 넘어지면서 천금 같은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키커로 나선 이동국은 침착하게 강한 오른발 슈팅으로 왼쪽 골망을 꿰뚫어 동점골을 만들어냈다. 지난 7일 홍콩과 1차전 때 4년 동안 이어졌던 A매치 무득점 행진을 마감했던 이 동국의 A매치 24호골.
기세가 오른 한국은 강한 공세로 일본을 밀어붙였고 새내기 공격수 이승렬이 통렬한 중거리포로 역전골을 뽑아냈다.
이승렬은 전반 38분 아크 정면에서 일본 골키퍼 나라자키 세이고가 전진한 것을 보고 왼발로 강하게 감아찼다. 빨랫줄 같은 궤적을 그린 공은 나카자와 유지의 등을 스치면서 굴절되고 나서 골키퍼 키를 살짝 넘겨 골네트를 출렁였다.
이승렬은 즉석에서 세리머니를 제안했고 태극전사들은 코치진이 있는 벤치로 달려가 일렬로 늘어서 설날 합동 세배를 올렸다. 이승렬의 상황 판단과 대담함이 돋보였다.
특히 지난 1997년 9월28일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이민성의 통쾌한 중거리슛으로 일본을 침몰시켰던'도쿄 대첩'을 연상시키는 기분 좋은 역전골이었다.
일본은 설상가상으로 전반 41분 프리킥 상황에서 몸싸움을 벌이고 엉켜 넘어졌던 툴리오가 수비수 강민수를 걷어차면서 퇴장을 당했다. 툴리오에게 선제골의 빌미가 된 파울을 했던 강민수가 어퍼커트 세리머니로 마음고생을 털어냈다.
수적 우위를 점한 한국은 2분 뒤 오른쪽 프리킥 기회에서 김재성이 위협적인 슈팅을 때렸으나 위쪽 골망에 얹혔다.
한국은 후반에도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강민수의 절묘한 스루패스를 받은 이동국은 페널티지역 정면에서 강한 왼발 슈팅을 했다. 그러나 공은 크로스바를 맞고 튕겨 나왔다. 득점에 가까운 슈팅이었기에 이동국은 '골대 불운'에 가슴을 쳤다.
거세게 몰아붙이던 한국은 후반 6분 주장 김정우가 오카자키 신지에게 거친 태클을 하는 바람에 두 번째 옐로카드를 받으면서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했다. 한국은 일본과 나란히 10명이 싸워야 하는 동등한 상황이 됐다.
허정무 감독은 이승렬을 빼고 구자철을 기용해 미드필더진을 보강하는 한편 후반 17분 체력이 떨어진 이동국 대신 이근호를 투입해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불안한 1점차 리드를 이어가던 한국의 해결사는 김재성이었다. 김재성은 후반 25분 왼쪽 측면을 돌파한 김보경과 2대 1 패스를 주고받고 나서 페널티지역 정면에서 강한 오른발 슈팅을 날렸다. 대포알 같은 슈팅은 오른쪽 골대 모서리에 꽂혔다. 골키퍼 나라자키가 몸을 날려 봤으나 소용이 없었다.
한국은 이후에도 공격 주도권을 놓치지 않고 시종 리드한 끝에 기분 좋은 2점차역전 드라마를 완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