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음 추가논란 '영어 사대주의'
한글은 우리말 표현 수단일 뿐
■ 바이오&헬스
영어 발음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한글 자음을 추가로 만들자는 주장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영어의 'f, v, z, r, th'의 정확한 표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주장이 미칠 문화ㆍ경제적 비용을 고려해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도를 넘어선 영어에 대한 집착 탓에 우리말과 글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상식조차 무시되고 있는 우리의 안타까운 모습이다.
한글은 발성의 특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지극히 유연하고 강력한 표음(表音) 문자다. 한글 창제 원리를 이용하면 전 세계 모든 언어의 발음을 체계적이고 합리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의 찌아찌아족에게 한글을 보급하게 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한글의 그런 장점이 우리에게 착각을 일으키게 만들기도 한다. 우리가 다른 언어의 발음을 적을 수 있는 한글을 사용한다고 해서 우리 자신이 외국어의 모든 발음을 소리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화제가 되었던 '어륀지'가 바로 그런 착각에서 비롯된 황당한 주장이었다. 한글은 우리말을 표현하는 수단일 뿐이지 우리말을 지배하는 원칙일 수는 없다.
영어의 'file'과 'pile'을 구별하지 않고 모두 '파일'로 적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은 근원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그렇다면 '눈'(眼)과 '눈'(雪)을 구별하지 않는 것도 역시 심각한 문제가 돼야만 한다. 같은 단어가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는 어떤 언어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우리말과 글에서 영어의 모든 단어를 분명하게 구분해야 할 필요는 없다. 영어 때문에 우리말과 글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은 황당한 영어 사대주의적 발상이다.
영어에 대한 오해도 심각하다. 자음과 모음만 정확하게 적는다고 영어 발음이 제대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다. 영어의 액센트와 장단을 표기하는 방법도 함께 개발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한글이 영어의 '발음기호'가 돼야 할 이유는 없다. 혹시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알파벳을 포기하고 한글을 쓰도록 할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다.
문화ㆍ경제적 비용 때문에 새로운 자음 개발에 반대한다는 국어연구원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이미 역사적으로 증명됐듯이 한글은 '진화'가 가능한 독특한 표음 문자다. 우리 언어의 변화에 따라 한글도 바뀔 수 있다. 일시적 불편과 경제적 부담을 때문에 한글의 그런 장점을 포기할 수는 없다. 우리 국민의 언어 생활에서 새로운 발음이 발견되면 한글도 당연히 그런 변화를 수용하도록 바꿔야 한다. 영어 때문에 바꿔야 한다는 주장과는 다른 것이다.
외국어에서 유래된 '외래어'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필요하다. 외래어를 원어와 똑같이 발음하고 표기해야 한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일본 사람들은 '도라꾸'(トラック, 트럭)와 '비루'(ビル, 빌딩)와 '비-루'(ビ―ル, 맥주)에서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심지어 '단백질'(蛋白質)을 '단바꾸질'(ダンバク質)이라고 쓰기도 한다.
외래어는 외국어가 아니라 '우리말'이다. 그래서 로마 알파벳을 공유하는 유럽의 언어에서는 같은 단어를 서로 다르게 발음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리스와 로마 사람들의 이름을 완전히 바꿔버리기도 한다. 굳이 원어의 발음과 의미를 강조해야 할 경우에는 원어 표기를 그대로 쓰면 된다. 외래어의 본래 발음 때문에 우리말 자체를 바꿔야 할 필요는 없다.
맞춤법과 띄어쓰기조차 통일시키지 못하고 있는 어문 당국이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사실 이번 논란도 외래어 표기법을 두고 갈팡질팡해왔던 어문 당국이 자초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신종 플루'와 같은 해괴한 용어가 우리말을 훼손시키는 것을 방치해서도 안 된다. 비현실적인 원칙에 얽매인 경직된 자세를 버려야 한다. 새로운 언어 환경에서 '음의겸역'(音意兼譯)의 새로운 방법까지 도입하는 중국 어문 당국의 적극적인 노력을 본받을 필요가 있다.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한글은 우리말 표현 수단일 뿐
■ 바이오&헬스
영어 발음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한글 자음을 추가로 만들자는 주장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영어의 'f, v, z, r, th'의 정확한 표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주장이 미칠 문화ㆍ경제적 비용을 고려해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도를 넘어선 영어에 대한 집착 탓에 우리말과 글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상식조차 무시되고 있는 우리의 안타까운 모습이다.
한글은 발성의 특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지극히 유연하고 강력한 표음(表音) 문자다. 한글 창제 원리를 이용하면 전 세계 모든 언어의 발음을 체계적이고 합리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의 찌아찌아족에게 한글을 보급하게 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한글의 그런 장점이 우리에게 착각을 일으키게 만들기도 한다. 우리가 다른 언어의 발음을 적을 수 있는 한글을 사용한다고 해서 우리 자신이 외국어의 모든 발음을 소리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화제가 되었던 '어륀지'가 바로 그런 착각에서 비롯된 황당한 주장이었다. 한글은 우리말을 표현하는 수단일 뿐이지 우리말을 지배하는 원칙일 수는 없다.
영어에 대한 오해도 심각하다. 자음과 모음만 정확하게 적는다고 영어 발음이 제대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다. 영어의 액센트와 장단을 표기하는 방법도 함께 개발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한글이 영어의 '발음기호'가 돼야 할 이유는 없다. 혹시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알파벳을 포기하고 한글을 쓰도록 할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다.
문화ㆍ경제적 비용 때문에 새로운 자음 개발에 반대한다는 국어연구원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이미 역사적으로 증명됐듯이 한글은 '진화'가 가능한 독특한 표음 문자다. 우리 언어의 변화에 따라 한글도 바뀔 수 있다. 일시적 불편과 경제적 부담을 때문에 한글의 그런 장점을 포기할 수는 없다. 우리 국민의 언어 생활에서 새로운 발음이 발견되면 한글도 당연히 그런 변화를 수용하도록 바꿔야 한다. 영어 때문에 바꿔야 한다는 주장과는 다른 것이다.
외국어에서 유래된 '외래어'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필요하다. 외래어를 원어와 똑같이 발음하고 표기해야 한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일본 사람들은 '도라꾸'(トラック, 트럭)와 '비루'(ビル, 빌딩)와 '비-루'(ビ―ル, 맥주)에서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심지어 '단백질'(蛋白質)을 '단바꾸질'(ダンバク質)이라고 쓰기도 한다.
외래어는 외국어가 아니라 '우리말'이다. 그래서 로마 알파벳을 공유하는 유럽의 언어에서는 같은 단어를 서로 다르게 발음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리스와 로마 사람들의 이름을 완전히 바꿔버리기도 한다. 굳이 원어의 발음과 의미를 강조해야 할 경우에는 원어 표기를 그대로 쓰면 된다. 외래어의 본래 발음 때문에 우리말 자체를 바꿔야 할 필요는 없다.
맞춤법과 띄어쓰기조차 통일시키지 못하고 있는 어문 당국이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사실 이번 논란도 외래어 표기법을 두고 갈팡질팡해왔던 어문 당국이 자초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신종 플루'와 같은 해괴한 용어가 우리말을 훼손시키는 것을 방치해서도 안 된다. 비현실적인 원칙에 얽매인 경직된 자세를 버려야 한다. 새로운 언어 환경에서 '음의겸역'(音意兼譯)의 새로운 방법까지 도입하는 중국 어문 당국의 적극적인 노력을 본받을 필요가 있다.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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