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의 적 '테란'

홍진호는 테란에 의해서 유명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데뷔 초창기인 2001년 홍진호의 공식전 테란 상대 성적은 13승8패로 62%의 승률을 기록했다. 당해 년도 홍진호의 총 승률인 57%보다 높다. 2002년에도 테란전 26승13패로 67%라는 좋은 성적을 냈다.

2001년과 2002년 홍진호의 테란전은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드론을 충분히 확보해야만 생산력에 차질이 생기지 않는다는 저그의 이론을 뒤집는 파격적인 플레이를 자주 선보였기 때문이다. 홍진호의 특징은 일꾼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최적화된 라바 활용을 통해 타이밍을 앞당기는 것.

특히 테란을 상대로 스피드 업그레이드 저글링을 모은 뒤 럴커와 함께 정면돌파하는 플레이는 일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 결과 홍진호에게는 '폭풍'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한꺼번에 휩쓸고 지나가는 힘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홍진호가 만들어낸 병력 중심적인 플레이 스타일은 테란에게 큰 위협으로 다가왔다. 테란이 병력을 생산하기 시작하면 홍진호는 적당한 숫자의 방어 타워를 건설하며 드론을 보충하고, 테란이 확장을 선택하면 날카롭게 파고드는 스타일을 도저히 당해 낼 수 없었던 것.

홍진호와 쌍벽을 이루고 있던 임요환은 공격 지향적인 저그의 스타일을 깨뜨리기 위해 벙커링이라는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전략을 만들어 낸다. 2004년 11월12일 에버 스타리그 2004 4강전은 임요환과 홍진호의 대결로 이슈를 모았다. 몇 차례 고배를 마신 두 선수가 와신상담한 끝에 결승전 티켓 한 장을 두고 맞붙었기 때문.

그러나 승부는 쉽게 끝나 버렸다. 임요환이 경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일꾼고 머린을 대동해 홍진호의 앞마당 확장 기지에 벙커를 짓고 공격하는 초반 전략을 세 차례나 성공시켰다. 스타리그 사상 최단 시간 5전3선승제 승부로 기록된 이 경기는 홍진호에게 크나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후 홍진호는 1년이 지나 또 한 번 쇼크를 맞는다. WCG 2005 한국 대표 선발전 예선전에서 여성 프로게이머인 서지수에게 0대2로 완패한 것. KTF는 부랴부랴 홍진호가 음식을 잘못 먹어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고 인터뷰를 하기도 했지만 이 패배는 영원히 홍진호에게 따라붙는 좋지 않은 꼬리표가 됐다.

공식 대회에서 5번의 준우승을 기록한 홍진호는 모두 테란에게 패했다. 2001년 코카콜라 스타리그에서 임요환에게 패했고 2년 뒤 올림푸스 스타리그에서는 서지훈에게 졌다. MSL에서는 2002년 임요환과 이윤열에게 결승에서 두 번 고배를 마셨고 2003년에는 '임요환의 제자'로 명성을 얻은 최연성에게 패하면서 5번 모두 테란에게 우승컵을 내줬다.

이쯤되면 '테란은 평생의 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일만 하다.

◆팀을 위한 희생

KTF 매직엔스에 남아 있기로 마음 먹은 홍진호는 팀을 위해 희생하는 길을 택했다. 당시 사령탑을 맡은 정수영 전 감독에 따르면 2004년부터 2005년까지 KTF에서 활동한 선수 가운데 프로리그 개인전에 나서고자 했던 인원은 거의 없었다. 강민, 박정석, 김정민, 조용호 등 당대 최고의 선수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았지만 홀로 출전해 승패를 결정짓는 개인전은 다들 꺼려했다. 강민이 주로 '총대'를 들고 선봉장에 나섰고 그를 제외한 개인전 고정 멤버는 없었다.

김정민과 박정석을 주축으로 팀플레이 멤버를 구성했고 파트너는 주로 조용호가 선택됐다. 홍진호는 팀에서 유일한 멀티 플레이어 역할을 맡았다. 강민이 홀로 버틴 개인전 부문에도 자주 출전했고 팀플레이가 5전3선승제 가운데 두 세트에 배정되었을 때에는 팀플레이에 주력했다.

정수영 전 감독은 "홍진호만큼 팀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선수가 없었다. 김정민은 개인전을 포기하면서 팀플레이만 맡겠다고 KTF로 이적했고 조용호나 박정석은 다소 위축된 듯했다. 둘 다 개인전 수행 능력이 뛰어났지만 팀플레이를 맡겼을 때 좋은 성적이 나왔고 홍진호가 KTF의 멀티 플레이어로 활동했다"고 털어놓았다.


팀을 위해 홍진호가 보여준 역할은 KTF에게도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스카이 프로리그 2004 2라운드부터 2005 시즌 후기리그 중반까지 KTF는 프로리그 23연승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했다. 강민이 개인전과 에이스 결정전을 도맡아 승수를 올리며 주역으로 부각됐지만 23연승을 달리는 동안 홍진호는 개인전 2승2패, 팀플레이 18승6패로 백업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공군, 새로운 도전

홍진호는 2006년 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즌2를 끝으로 하락세를 걷기 시작했다. 이후 메이저 개인리그에는 한 번도 올라가지 못했고 기껏해야 프로리그에서 팀플레이 담당 선수로 뛰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 과정에서 홍진호는 개인사가 꼬였다는 소문도 많이 돌았고 실제로도 경기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홍진호는 2008년 공군에 갈 결심을 했다. 2006년 강도경, 조형근, 최인규 등이 입대했고 곧바로 임요환이 뒤를 이으면서 공군 에이스가 안정적으로 운영되면서 홍진호도 입대를 결심한 것.

그렇지만 홍진호의 입대는 순탄치 않았다. 박정석, 오영종, 한동욱이 입대하던 2008년 9월 함께 군에 가려 했지만 행정적인 오류가 발생해 입대 시점이 뒤로 밀렸다. 결국 11월에 군에 간 홍진호는 같은 팀에서 후배로 활동하던 박정석에게 존댓말을 써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홍진호는 공군 소속으로 활동을 시작한 신한은행 프로리그 08-09 시즌 의미 있는 승리를 거둔다. 2009년 6월20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룩스 히어로 센터에서 열린 SK텔레콤 T1과의 경기에서 최고의 프로토스이자 저그 킬러로 불리던 김택용을 상대로 '폭풍 스타일'을 선보이며 승리한 것.

이 경기의 여파는 상당히 컸다. 홍진호가 공군에 입대해서 거둔 첫 승이기도 하고 당연히 질 것이라 예상됐던 김택용과을 꺾었기 때문. 스타크래프트 커뮤니티는 난리법석이 일었고 프로리그 시청률도 2%가 넘어가는 등 대박이 터졌다.

1승 그 이상의 의미가 존재했다. 홍진호가 김택용의 경기에서 보여준 드롭 전략은 이후 저그가 프로토스를 상대할 때 자주 사용됐다. 김택용이 2007년 곰TV MSL 시즌1 결승전에서 마재윤을 상대로 커세어를 절묘하게 활용한 전술을 구사하면서 저그는 한동안 프로토스를 상대할 때 애를 먹었다. 프로토스가 커세어를 여러 기 운용하면서 오버로드를 사냥하면서 경기를 풀어갔기에 저그는 드롭이라는 변수를 배제하고 힘싸움을 펼쳐 제압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그렇지만 홍진호가 보여준 드롭 전략은 프로토스의 방심을 찌른 케이스였고 저그 플레이들이 한동안 잊고 있었던 드롭이라는 전략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테란을 상대로 자원 최적화와 유닛 확보를 통한 공격 전술을 유행시킨 홍진호가 프로토스에게 애를 먹고 있던 저그에게 새로운 해법을 제시한 개척자 역할을 해낸 것이다.


홍진호에게 남은 과제는 09-10 시즌 어떤 활약을 펼치느냐다. 08-09 시즌 중에 합류하면서 군 생활에도 적응해야 하고 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야 하는 이중고를 겪었지만 1년이 지난 지금은 커리어만 신경쓰면 된다. '최하위=공군 몫'이라는 등식도 떨쳐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좋은 선배도 있고 기량이 탄탄한 후배들도 입대했기 때문에 한 자리 수 순위를 차지하기에 이만한 해는 없다.

공군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있는 홍진호가 저그의 개척자를 넘어 e스포츠의 개척자가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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