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전 어촌에서 인구 1천400만의 현대식 도시로 성장
금융위기로 시련…왕룽 새시장 맞아 `제2의 도약` 모색
"1980년 특구 지정 당시 3만명에 불과했던 인구가 2007년말에는 1천400만명으로 467배 증가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도 1980년 762위안에 머물렀으나 2007년 말에는 무려 47배인 3만5천712위안으로 늘어났다."중국 `개혁개방 1번지`인 광둥(廣東)성 선전(深천<土+川> )시의 변화상을 단적으로 표현해 주는 수치다. 30년 전 인구 3만의 보잘것없는 어촌이었던 선전은 이제 상주인구만 1천만명이 넘는 초현대식 도시이자 중국의 고속성장을 이끄는 기관차 역할을 하고 있다.
광둥성 정부 초청 산업현장 취재를 위해 26일 찾은 선전시는 뉴욕이나 런던, 도 쿄, 홍콩 등 세계 유명 도시에 못지않은 마천루를 자랑하고 있었다.
이날 밤 숙소인 푸티엔 샹그릴라 호텔에서 내려다 본 신시가지의 고층빌딩들은 선전의 발전상을 한 눈에 말해 주고 있었다. 광둥성 정부가 27일부터 31일까지 선전, 후이저우(惠州), 둥관(東莞), 광저우(廣州) 등 4개 주요 도시로 홍콩 주재 외신기자들을 초청, 주요 산업시설을 시찰하는 기회를 제공하기로 함에 따라 외신기자들은 첫 번째 일정으로 선전을 찾은 것이다.
선전시 당국은 이날 외신기자들에게 선전시청, 선전 증권거래소, 중국의 대표적인 전기자동차 생산업체인 BYD(比亞迪) 등을 둘러볼 기회를 제공했다.
어촌에 불과했던 선전시가 30년만에 중국을 대표하는 도시로 발전한 것은 `개혁.개방의 총설계사`인 덩샤오핑(鄧小平) 때문이었다.
덩샤오핑은 1980년 8월 제5기 전국인민대표자회의 상임위 15차회의에서 `광둥성경제특별구역 조례`를 통해 선전과 주하이(珠海)를 중국 최초의 경제특구로 지정했다.
선전시내 중심부를 관통하는 왕복 14차선의 선난다다오(深南大道)변에는 대형 입간판이 서 있다.
이 입간판에는 `당의 기본노선(개혁개방 노선)은 100년동안 흔들림없이 지켜야 한다`는 그 유명한 덩샤오핑의 1992년 `남순강화`(南巡講話) 어록도 함께 새겨져 있다.
선전시내 곳곳에서 덩샤오핑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선난다다오와 덩샤오핑의 동산이 세워진 렌화산(蓮花山) 공원, 그리고 덩샤오핑이 `남순강화` 발언을 한 국제무역센터 리볼빙 레스토랑의 덩궁팅(鄧公廳) 등이 바로 그곳이다.
1980년 선전을 경제특구 1호로 지정한 덩샤오핑은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여파로 개혁개방 노선이 흔들리자 1992년 1월20일 선전을 찾았다.
여든여덟의 노구를 이끌고 선전을 시찰한 덩샤오핑은 세계무역센터 49층의 리볼빙 레스토랑에 들렀다. 그는 동남쪽에 방향의 홍콩땅을 바라보며 "동쪽에서 바람이 불어오니 눈에 봄이 가득하다(東方風來滿眼春)"라는 당나라 시인 잠삼(岑參)의 시구를 읊었다.
그런 다음 덩샤오핑은 "개혁개방을 하지 않고, 경제를 발전시키지 않고, 인민들의 생활을 개선하지 않으면 오직 죽음으로 가는 길뿐이다. 이런 기본노선은 100년동안 흔들림없이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쪽에서 바람이 불고 봄이 올 것`이라는 덩샤오핑의 예언은 적중했다. 선전시의 인구는 1980년 특구지정 당시 3만명에 불과했으나 2007년말에는 인구가 1천400만명으로 467배 증가했다.
1인당 GDP는 1980년 762위안에 머물렀으나 2007년 말에는 무려 47배인 3만5천712위안으로 늘어났다.
특히 선전시의 전체 GDP도 특구지정 당시에는 1억760만위안에 불과했으나 2007년말에는 6천765억위안으로, 무려 3천848배나 급증했다. 선전은 지난 2007년에는 중국도시 가운데 처음으로 1인당 GDP가 1만628달러로 1만달러를 넘었다.
선전이 이처럼 짧은 시간 내에 발전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홍콩이라는 거대한 배후도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전은 국제금융과 자본, 무역 및 물류 중심지인 홍콩을 활용해 짧은 시간내에 엄청난 속도로 경제발전을 이룩하게 된다. 선전을 중심으로 한 주장(珠江) 삼각주 지역은 이미 세계 최대의 공업지역으로 성장했다. 선전에만 세계 500대 기업 가운데 100여개가 투자하고 있다. 선전항의 컨테이너물동량은 싱가포르, 상하이, 홍콩에 이어 세계 4위를 기록하고 있다.
선전시는 경제특구로 지정된 이후 2006년말까지 28년간 연평균 27%가 넘는 `기적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2007년에도 14.6%의 성장률을 기록한 바 있다.
이 같은 중국 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선전시도 지난해 글로벌 금융위기이후 진통을 겪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아 지난해에는 성장률이 12.1%로 떨어진 것이다.
게다가 지난 6월에는 쉬쭝헝(許宗衡.54) 전 시장이 비리혐의에 연루돼 낙마하는 시련도 겪었다.
이후 선전시의 새 시장에는 쑤저우(蘇州)시 당서기 출신인 왕룽(王榮.51)이 발탁됐다. 장쑤(江蘇)성 출신으로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을 맡고 있는 등 중앙 정계에도 폭넓은 인맥을 구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로운 사령탑을 맞이한 선전시는 `개혁.개방 1번지`로서의 자존심을 바탕으로 재도약을 위해 기지개를 펴고 있는 듯했다. 土+川>
금융위기로 시련…왕룽 새시장 맞아 `제2의 도약` 모색
"1980년 특구 지정 당시 3만명에 불과했던 인구가 2007년말에는 1천400만명으로 467배 증가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도 1980년 762위안에 머물렀으나 2007년 말에는 무려 47배인 3만5천712위안으로 늘어났다."중국 `개혁개방 1번지`인 광둥(廣東)성 선전(深천<土+川> )시의 변화상을 단적으로 표현해 주는 수치다. 30년 전 인구 3만의 보잘것없는 어촌이었던 선전은 이제 상주인구만 1천만명이 넘는 초현대식 도시이자 중국의 고속성장을 이끄는 기관차 역할을 하고 있다.
광둥성 정부 초청 산업현장 취재를 위해 26일 찾은 선전시는 뉴욕이나 런던, 도 쿄, 홍콩 등 세계 유명 도시에 못지않은 마천루를 자랑하고 있었다.
이날 밤 숙소인 푸티엔 샹그릴라 호텔에서 내려다 본 신시가지의 고층빌딩들은 선전의 발전상을 한 눈에 말해 주고 있었다. 광둥성 정부가 27일부터 31일까지 선전, 후이저우(惠州), 둥관(東莞), 광저우(廣州) 등 4개 주요 도시로 홍콩 주재 외신기자들을 초청, 주요 산업시설을 시찰하는 기회를 제공하기로 함에 따라 외신기자들은 첫 번째 일정으로 선전을 찾은 것이다.
선전시 당국은 이날 외신기자들에게 선전시청, 선전 증권거래소, 중국의 대표적인 전기자동차 생산업체인 BYD(比亞迪) 등을 둘러볼 기회를 제공했다.
덩샤오핑은 1980년 8월 제5기 전국인민대표자회의 상임위 15차회의에서 `광둥성경제특별구역 조례`를 통해 선전과 주하이(珠海)를 중국 최초의 경제특구로 지정했다.
선전시내 중심부를 관통하는 왕복 14차선의 선난다다오(深南大道)변에는 대형 입간판이 서 있다.
이 입간판에는 `당의 기본노선(개혁개방 노선)은 100년동안 흔들림없이 지켜야 한다`는 그 유명한 덩샤오핑의 1992년 `남순강화`(南巡講話) 어록도 함께 새겨져 있다.
선전시내 곳곳에서 덩샤오핑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선난다다오와 덩샤오핑의 동산이 세워진 렌화산(蓮花山) 공원, 그리고 덩샤오핑이 `남순강화` 발언을 한 국제무역센터 리볼빙 레스토랑의 덩궁팅(鄧公廳) 등이 바로 그곳이다.
1980년 선전을 경제특구 1호로 지정한 덩샤오핑은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여파로 개혁개방 노선이 흔들리자 1992년 1월20일 선전을 찾았다.
여든여덟의 노구를 이끌고 선전을 시찰한 덩샤오핑은 세계무역센터 49층의 리볼빙 레스토랑에 들렀다. 그는 동남쪽에 방향의 홍콩땅을 바라보며 "동쪽에서 바람이 불어오니 눈에 봄이 가득하다(東方風來滿眼春)"라는 당나라 시인 잠삼(岑參)의 시구를 읊었다.
그런 다음 덩샤오핑은 "개혁개방을 하지 않고, 경제를 발전시키지 않고, 인민들의 생활을 개선하지 않으면 오직 죽음으로 가는 길뿐이다. 이런 기본노선은 100년동안 흔들림없이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쪽에서 바람이 불고 봄이 올 것`이라는 덩샤오핑의 예언은 적중했다. 선전시의 인구는 1980년 특구지정 당시 3만명에 불과했으나 2007년말에는 인구가 1천400만명으로 467배 증가했다.
1인당 GDP는 1980년 762위안에 머물렀으나 2007년 말에는 무려 47배인 3만5천712위안으로 늘어났다.
특히 선전시의 전체 GDP도 특구지정 당시에는 1억760만위안에 불과했으나 2007년말에는 6천765억위안으로, 무려 3천848배나 급증했다. 선전은 지난 2007년에는 중국도시 가운데 처음으로 1인당 GDP가 1만628달러로 1만달러를 넘었다.
선전이 이처럼 짧은 시간 내에 발전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홍콩이라는 거대한 배후도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전은 국제금융과 자본, 무역 및 물류 중심지인 홍콩을 활용해 짧은 시간내에 엄청난 속도로 경제발전을 이룩하게 된다. 선전을 중심으로 한 주장(珠江) 삼각주 지역은 이미 세계 최대의 공업지역으로 성장했다. 선전에만 세계 500대 기업 가운데 100여개가 투자하고 있다. 선전항의 컨테이너물동량은 싱가포르, 상하이, 홍콩에 이어 세계 4위를 기록하고 있다.
선전시는 경제특구로 지정된 이후 2006년말까지 28년간 연평균 27%가 넘는 `기적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2007년에도 14.6%의 성장률을 기록한 바 있다.
이 같은 중국 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선전시도 지난해 글로벌 금융위기이후 진통을 겪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아 지난해에는 성장률이 12.1%로 떨어진 것이다.
게다가 지난 6월에는 쉬쭝헝(許宗衡.54) 전 시장이 비리혐의에 연루돼 낙마하는 시련도 겪었다.
이후 선전시의 새 시장에는 쑤저우(蘇州)시 당서기 출신인 왕룽(王榮.51)이 발탁됐다. 장쑤(江蘇)성 출신으로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을 맡고 있는 등 중앙 정계에도 폭넓은 인맥을 구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로운 사령탑을 맞이한 선전시는 `개혁.개방 1번지`로서의 자존심을 바탕으로 재도약을 위해 기지개를 펴고 있는 듯했다. 土+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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