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DP 대비 연구개발비 세계 최고
정부 일관성있는 정책 추진 '귀감'

기업문화ㆍ기술중시 풍토 본받아야
대일무역적조ㆍ국내기업 체질 개선



■ 부품소재 강국, 일본에게 배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금융위기가 전 세계 실물경기 침체로 이어지면서 '제조업 기반 없는 금융은 신기루'라는 의견이 강력히 대두되고 있다.

일본은 두 차례의 석유위기, 플라자 합의 후 급격한 엔화강세, 1990년대 장기불황 등 심각한 경제상황에 직면해서도 '모노즈쿠리'(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중소기업)로 대변되는 제조업이 위기탈출의 촉매역할을 하고 있다. 이는 일본의 독자적인 기술력보유, 정부의 일관적인 정책 추진, 장인과 기술을 중시하는 사회분위기가 융합된 데서 기인한다.

이에 부품소재를 중심으로한 제조업 분야에서 높은 시장 지배력을 갖고 있는 일본의 경쟁력과 현재 금융위기로 촉발된 금융위기를 또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는 일본의 전략에 대해 살펴본다.

◇압도적인 세계시장점유율의 비결은=일본기업들은 고유의 기반기술을 살리면서 에너지, 환경, 고기능화에 대응하며 끊임없는 연구개발을 지속하고 있다. 그 결과 신소재, 자동차 등 여러 분야에서 세계 최강의 기술을 보유하고 세계시장을 압도하고 있다.

주요 산업 분야별 일본 기업들의 세계시장 점유율을 보면, 탄소섬유 77%, 액정용 주요소재 62%, 정보통신기기 54%, 로봇 40%, 자동차 31%, 공작기계 29%, 금형 20% 등으로 매우 높은 시장 지배력을 갖추고 있다. 디지털 가전산업의 경우 제조공정별로 소재ㆍ원재료 66%, 부품32%, 제조장비 49%, 완제품 25%라는 세계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성과는 과학기술 및 기초연구분야에 꾸준한 투자를 한 것에 기인한다.

일본은 GDP대비 연구개발비 지출, 총인구 대비 연구원 수 등 과학기술분야에서 세계 최고수준으로 평가받는다. 인구 1명당 연구원수도 일본 55.6명, 미국 46.7명, 독일 34.2명, 프랑스 32.6명 등으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전자부품연구원 한종훈 박사는 "일본의 기초과학분야는 이제 생활상품들과 접목돼 다양한 응용제품을 양산하고 있다"며 "이미 생활속에 존재하는 제품에 최첨단 부품소재 기술을 접목해 혁신 제품을 생산해 내는 강점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는 기초과학분야에 대한 R&D투자를 늘린 결과로, 먼 미래를 내다보고 규칙적이고 변함없는 투자를 하는 기업마인드를 배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품소재기업의 높은 경영성과ㆍ생산성=일본 부품소재기업은 세계 10대 글로벌 완성품 기업보다 경영성과가 좋다. 또한 종업원 1인당 매출액은 미국의 2.7배, 유럽의 2.5~3.6배이며, 매출액 대비 이익도 6.6%로 미국(4.5%), 유럽(3.1%)을 크게 앞지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부품소재기업을 필두로한 제조업 기반 산업의 우위 경쟁력은 크게 세가지 원천요인을 꼽을 수 있다.

첫째가 바로 암묵지와 형식지의 선순환을 통한 기술향상이다.

일본 기업들은 현장에서 근로자간 끊임없는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암묵지를 형식지로 체계화하고 이를 실습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암묵지가 형성되는 선순환 과정을 통해 기술이 향상되거나 신기술 개발로 연계한다. 암묵지란 표현하기 힘든 주관적, 직관적 지식으로 고도의 기술자 밑에서 주로 도제 형식으로 기술을 습득하는 것을 의미한다. 형식지는 표현할 수 있는 체계적, 논리적 지식을 의미한다.

일본 부품소재기업들의 이러한 선순환 과정은 장기적 고용과 신뢰를 전제로 한 인재육성 시스템, 종업원 중심의 기업문화풍토에 기인한다는 분석이다.

일본기업의 인재육성시스템은 '도제제도'와 '뎃치제도'(24시간에 걸쳐 OJT를 반복하는 기업내 교육제도)에서 비롯됐다. 최근에는 마이스터 제도, 맨투맨 제도, 제조현장 자체를 기능전수의 장으로 활용하는 제도로 형태가 다소 변화되고 있다.

조현남 잉크테크 연구소장은 "인재육성 시스템은 일본 소재사업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양산하고 있다"며 "최근 기존 공정방식을 대체할 인쇄전자기술, 이른바 프린팅 일렉트로닉스 기술을 탄생시키는 등 기존 것을 모두 바꾸는 혁신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두 번째로는 세계 최고의 '스리아와세'(서로 부딪치며 세밀하게 맞춰나간다는 의미로 현장통합과 업체간 협력기술)을 꼽을 수 있다. 일본기업들은 정량화 할 수 없는 요소들의 조화를 통해 시너지효과를 발휘하는 스리아와세 기술이 탁월하다.

이러한 기술을 이용해 자동차, 정밀기기, 디지털가전, 반도체 제조장치, 액정 등 부품소재 분야에서 고품질, 고기능의 첨단 제품을 개발해 세계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셋째로 기업간 상생협력을 꼽을 수 있다. 일본 부품소재 기업들은 파괴적인 경쟁보다는 상생의 경쟁을 추구한다. 이와 관련 이영곤 주성엔지니어링 부사장은 회사의 모든 중심이 연구소 기능에서 시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시장개척을 R&D위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 기업들이 해외 선진기업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기술향상이 필수적인데, 국내 기업들도 이제 요소기술과 특화기술을 가진 기업들과 공조한 R&D 활동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즉 상호 협업을 통한 약점 보완과 기술향상을 위해 경쟁기업간 또는 대ㆍ중소기업간 협력관계를 구축해 상생의 길을 모색함으로써 기업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체계적이고 일관성 있는 정부의 정책 추진=부품소재를 필두로 한 일본 제조업의 경쟁력은 정부의 일관성 있는 정책추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일본 정부는 정부 주도의 장기적인 제조업 성장전략을 제시하고 체계적이고 일관된 산업정책을 추진해오고 있다. 제조업의 지원을 위해 2000년 모노즈쿠리 기반기술진흥 기본법을 제정해 제조기반산업에 일본 경제의 기간산업으로서의 위치를 부여했다.

2004년에는 신산업 창조전략, 2005년에는 모노즈쿠리 국가전략 비전을 채택한데 이어 일본 21세기 비전 등을 제시했다.

2006년에는 중소기업 모노즈쿠리 기반기술 고도화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2008년까지 20개의 특정 기반기술을 선정, 자금을 지원했으며, 2007년에는 기술전략 지도 2007을 입안해 기술발전방향을 설정했다.

일본 정부는 관련 부처간 정책연계를 통해 기술개발을 지원하는 한편 신기술과 신산업 창출 등에 대한 효율적인 정책지원이 될 수 있도록 도모하고 있다.

이와 관련 정준석 한국부품소재산업진흥원장은 "일본을 비롯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의 경우 운영 주체들이 민간이면서 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 효율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정착시켜 성공을 거둔 것도, 혁신 주체간 소통이 잘 됐기 때문"이라며 "정부 및 부품소재 관련 기관들은 민관 협력의 이음새 역할을 강화하고, 글로벌 인재를 적극 육성하는데 초점을 맞추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금융기관들은 부품소재 중소기업의 대출 심사시 현재의 재무상황보다는 미래의 발전가능성인 기술력 등을 중요 심사요소로 활용한다.

일본 현지의 한 컨설팀 업체 조사결과 기술력(70.4%), 재무서류 등의 신뢰성(44.1%), 판매처 등과의 거래관계(27.5%), 종업원 사기(21.8%), 업계 평판(21.8%), 시장점유율(8.5%)의 순으로 대출 심사요소 순위가 발표된 바 있다. 신흥국의 부상에 이어 최근 세계적인 자원확보 경쟁과 경기침체, 보호무역주의 대두 등으로 우리나라의 무역환경은 더욱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위기를 기회로 삼는 일본의 기업문화와 기술력 중시 풍토가 한국에 조성돼야만, 대일무역적조 개선과 국내 부품소재기업의 체질개선을 이룰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길재식기자 osolg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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