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민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전자현미경연구부 연구원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본다는 건 분명 좋은 의미는 아니다. 진지한 성찰 없이 무턱대고 주관과 편견에 의지한 채 자의적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이를 보편적 진리로 주장하는 사람을 우리는 색안경을 낀 사람이라고 놀리기도 한다.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범주 안에 속하지 않는 것이면 무조건적으로 차단하고 배제하는 사람을 우리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과학의 세계에 있어선 예외가 있다. 사물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성질들을 이해하기 위한 바탕에는 이러한 색안경을 낀 관찰자의 시각이 존재한다. 이것은 정신과 마음에 달린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사용하는 과학적 관찰 장비에 색안경과 같은 기능을 부여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필터링(걸러냄)'이라는 일반적인 말로 표현한다. 이러한 기능을 사용함으로써 관찰장비는 다른 것을 보지 않고 색안경으로 걸러진 신호만을 보게 되며 이를 통해 기존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들을 알아낼 수 있다.

많은 과학 장비들이 있지만 직접적으로 아주 작은 나노세계를 관찰할 수 있게 하는 대표적인 장비가 바로 전자현미경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전자현미경을 과학의 눈이라고 한다. 물질을 구성하는 분자나 원자들의 배열상태를 직접 관찰함으로써 물질의 본질을 연구하는데 쓰이는 강력한 분석 도구이기 때문이다.

전자현미경에 색안경을 처음으로 달아 주어야겠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제임스 힐리어(James Hillier)로 그는 1944년에 이러한 장치를 고안하여 처음으로 전자현미경에 부착함으로서 기존 전자현미경의 물질 구조를 탐색하는 기능뿐만 아니라 물질의 화학성질까지도 동시에 관찰할 수 있게 하였다. 현대 과학자들은 이 장치의 이름을 '에너지 필터'라고 부른다.

전자현미경은 물질을 통과시켜 온 전자빔을 확대하여 형광판에 비춰봄으로 물질의 형상을 관찰하게 한다. 이렇게 물질을 통과한 전자빔은 물질의 구성 성분에 따라 빔의 에너지가 달라져서 속도 차이가 나게 된다. 에너지 필터는 이렇게 물질을 통과하고 나온 전자의 에너지에 따라서 특정한 에너지를 선택적으로 분류해 낼 수 있게 한다.

원리적으로는 전자빔에 자장을 걸어 주고 경로를 휘게 하면 물질을 통과하고 나온 전자빔은 그 에너지 크기 순서대로 길게 늘어서게 된다. 여기에 관찰하고 싶은 빔만을 슬릿을 두고 걸러내서 관찰하는 것이 에너지 필터의 기능이다. 따라서 이 장치를 이용하면 관찰 물질의 구성 성분과 관련된 신호만을 추출하여 볼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작은 물질 세계의 화학적 현상을 관찰 할 수 있다.

힐리어의 공헌으로 개발된 이 에너지 필터라는 색안경을 전자현미경에 끼워줌으로써 물질의 형태뿐만 아니라 내부가 어떤 원소들로 이루어졌는지를 구분해 낼 수 있게 되었으며 많은 전자현미경 학자들의 노력으로 지금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여 원자나 분자세계에서 일어나는 화학적 현상도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색안경을 끼고 보는 일은 대상의 한 부분만을 강조하여 보게 함으로써 인간 생활에선 편협함을 야기하지만 분석과학의 영역에서는 진실을 제대로 보기 위한 매우 중요한 방편이 된다. 이런 분석 기술들이 개발되지 않았다면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나노와 생명공학의 유익한 기술들이 탄생하는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어떻게든 가긴 가겠지만 눈 먼 사람이 코끼리 다리 더듬는 속도로는 현재의 과학기술 개발 속도를 뒷받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개발과 정밀한 분석은 밀어주고 끌어주는 관계로 과학기술의 진정한 이해를 구축하는 토대이다. 마치 학교 선후배처럼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어야 그 가치가 서로 빛나는 관계인 것이다. 현재는 나노시대이고 생명공학의 시대이다. 이들 기술의 융합에 의해 신기술들이 계속해서 탄생되고 있으며 인간 생활의 유익함을 위한 과학자들의 노력은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다. 그 저번에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게 하고 이해하게 하는 전자현미경 연구자들의 숨은 기여는 실로 위대하다. 하지만 그들의 꿈은 소박하다. 진정한 과학의 눈이 되는 것. 그것이 그들의 목표다.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