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착취재] '디지털교과서' 수업 오산대원초교를 가다


경기도 오산시 갈곶동에 위치한 오산대원초등학교 5학년 1반은 여느 교실 풍경과 다른 점이 많다. 초록색 칠판은 70인치 대형 전자화면이 대신하고 있고 교탁이 있어야 할 자리엔 최신 PC 모니터와 각종 제어 소프트웨어가 설치된 전자교탁이 있다. 가장 큰 특징은 종이 교과서가 없다는 것. 학생들 책상에는 태블릿PC, 즉 '디지털교과서'가 놓여 있다.

전국 확대 예산ㆍ콘텐츠 보완 등 '과제로'

기자가 방문한 지난 14일 수업은 '말듣쓰'(말하기ㆍ듣기ㆍ쓰기) 과목으로 한 남자가 신으로부터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약속을 받지만 어리석은 소원을 빌어 기회를 날려버린다는 이야기다. 동화 자체는 이미 널리 알려진 것이지만 수업방식은 사뭇 달랐다.

성우의 구현 동화 MP3 파일을 듣고 어려운 단어나 내용은 링크 클릭 한번으로 참고자료를 볼 수 있다. 빈 말풍선이 있는 삽화에 학생이 직접 대사를 적어 넣고 이것은 다시 대형 전자칠판에 표시돼 교사와 친구들의 평가를 받는다. 학생 개인 목소리로 녹음도 가능한데 전체 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친구의 어설픈 구현동화에 교실은 이내 웃음바다가 된다.

홍슬찬(12) 학생은 "(디지털교과서를 쓰면서) 어려운 과목도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게 됐고 무엇보다 책가방이 가벼워져서 좋다"고 말했다. 김현정 교사도 "아이들의 발표력과 표현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며 "올해 중간고사 등 3번의 시험에서 같은 학년 반에서 한번도 1등을 놓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디지털교과서 시범사업이 본격화되고 있다. 디지털교과서란 기존의 서책용 교과서 대신 참고서, 문제집, 학습사전 등 방대한 학습자료를 동영상, 애니메이션, 가상현실, 하이퍼링크 등 다양한 형태로 제공하는 멀티미디어 교재다. 태블릿PC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서책용 교과서의 필기, 밑줄, 노트 기능을 지원하고 학생 능력에 따라 수준별 적성별 진도 관리와 평가가 가능하다. 교육과학기술부는 2011년까지 600억원 이상을 투입해 전국 초중고 100여개 학교를 연구학교로 확대 지정할 방침이다.

오산대원초등학교의 사례는 디지털교과서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현재 시스템의 한계와 교육현장을 중심으로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예산문제는 2011년 이후 디지털교과서 본사업 추진 여부를 결정하는 핵심 이슈가 될 전망이다. 대원초등학교의 경우 태블릿PC가 대당 140만원대, 전자칠판 1000만원대 등 디지털교과서 1학급을 만드는데 5000만원 정도가 소요됐다. 현 시점에서 이를 전국 초중고 24만4000여 학급에 보급할 경우 12조원, 즉 우리나라 1년 교육예산의 3분의 1 이상이 필요하다.

정부 관계자는 하드웨어의 가격하락 추세와 일부 기능 조정을 통해 가장 비용이 많이 드는 태블릿PC 가격을 절반 이하로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디지털교과서의 핵심인 태블릿 기능이 포함되는 이상 가격 인하 한계가 명확하고 특히 어린 학생들의 활용 패턴을 고려했을 때 수명은 길어야 3~4년 정도여서 구축 후 유지보수 비용도 상당할 전망이다.

이 때문에 정부 일각에서는 디지털교과서 비용의 일부를 학부모가 부담하는 방안을 조심스럽게 검토하고 있다. 차상위 계층까지 무상보급하는 등 차별화하는 방법도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비교적 학부모의 반응이 좋은 학교들도 이런 안에 대해 "무상교육 취지에 맞지 않는다"며 회의적인 의견을 내놓고 있다.

학교현장에 실제 적용하는 데도 다양한 변수가 존재한다. 참고할 수 있는 사례 모델이 없는 데다 콘텐츠 이외에 모든 것을 개별 학교에서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현정 교사의 경우도 디지털교과서 기능을 익히는 데만 2달 정도가 걸릴 만큼 준비과정이 만만치 않았다. 이 때문에 일부 학교의 경우 젊은 선생님들을 중심으로 '자의반 타의반' 디지털교과서 반을 맡기고 있다. 학부모들도 초등학교 고학년이라는 중요한 시기에 새 교육 시스템의 첫 적용자라는 데 부담을 느꼈다는 후문이다.

오산대원초등학교의 경우 디지털교과서 담당 교사에게 공문작업, 방과후학과 업무 등을 줄여주고 관할 교육청을 통해 별도 예산을 확보하는 등 학교차원의 전략적 지원이 큰 도움이 됐다. 또한 수차례 공개수업을 통해 학부모들에게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작성한 파일이나 과제물 등을 가정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설득한 것이 도움이 됐다. 김지선 대원초등학교 교장은 "학부모와 교사, 학생 등 교육현장의 주요 당사자간에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제도적 지원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교과서 콘텐츠에 대한 보완도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그동안 디지털교과서는 수학과 국어의 학습효과가 가장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현장 학생들은 가장 재미있는 과목으로 사회를 꼽았다. 각 주제별로 다양한 동영상과 사진 등을 바로 볼 수 있어 암기과목이 아닌 생생한 지식으로 받아들인 것. 실제로 1반 학생들의 사회 성적은 서책형 교과서 학급 대비 10점 이상 높다. 일선 교사들은 수학의 경우 숫자 채우기 등 단순한 형태에 머물러 있어 사회과목처럼 효과적인 학습체계로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학생들은 디지털교과서를 이용할 때 가장 불편한 점으로 소위 '랙(lag)'이라고 불리는 멈춤 현상을 꼽았다. 이번 달부터 본격 적용한 리눅스 플랫폼은 물론 6개월 이상 운영해 온 윈도 플랫폼도 오류현상이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향후 중고등학교 과목까지 수용할 수 있도록 유연하고 안정적인 플랫폼 개발에 집중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한다.

이밖에도 태블릿PC 사용시간이 늘어남에 따른 컴퓨터단말기증후군(VDT) 등 아이들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나 디지털교과서 도입 이후 교실 내 역학관계의 변화 등 다양한 분야의 추가 연구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현재 국내에서 시도하는 디지털교과서 사업은 세계적으로도 전례를 찾기 힘든 교육환경의 일대 변화라고 평가한다. 싱가포르와 미국 등이 비슷한 사업을 추진한 바 있으나 단말기 성능과 콘텐츠 기술의 한계로 사실상 실패했거나 종이책을 단순한 수준의 전자책(e북)으로 바꾸는 것에 그쳤다. 정성무 KERIS 교육정보화센터 소장은 "이전의 교육 정보화는 학교 수업이나 방과후 활동을 위한 보조 수단의 의미가 강했지만 디지털교과서는 교육의 본질을 건드리는 첫 시도"라며 "단순히 디지털교과서 보급을 위한 사업이 아니라 학교 교실 환경 개선이라는 시각에서 총체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상훈기자 nanugi@

◆사진설명:기존의 학습자료를 동영상, 애니메이션, 가상현실 등 다양한 형태로 제공하는 멀티미디어 교재인 디지털교과서 시범사업이 본격화 되고 있다. 경기도 오산시 갈곶동에 위치한 대원초등학교 5학년1반 학생들이 태블릿PC를 이용해 '말하기ㆍ듣기ㆍ쓰기' 과목을 공부하고 있다.

사진=오산 =김동욱기자 g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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