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천 법무법인 한영 기업금융팀 변호사


잡종이라는 말의 영어 표현은 하이브리드(hybrid)다. 기름 값이 가파르게 오르는 요즘 자주 언급되는 도요타나 혼다의 '하이브리드 카'도 기실 우리 표현대로 하면 '잡종 차' 정도가 될 것이다. 순혈이나 주류에 속하는 이의 입장에서 보면 잡종은 뭔가 모자라고 같이 있으면 거북한 그래서 종국에는 자신을 삼켜버리는 위협의 대상이다. 그래서 늘 자신과 다른 유력 집단을 잡종이라 부르며 편을 가르고 소외시키려 안간힘을 쓴다.

그런데 잡종이라는 삶의 방식은 인류가 뭔가를 알기 시작할 때부터 사람의 짝짓기 형태를 지배해 왔다. 근친상간 금지의 전통은 열성인자간의 짝짓기에 따른 생물학적 종족보존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다른 종족으로부터 배우자를 데려오는데서 생긴 것이다. 근친상간의 위험은 사회학적으로도 존재한다. 어떤 조직이든 내부수혈에 의한 순혈주의는 장점보다는 약점을 강화할 확률이 더 높다.

1845년 아일랜드에서는 엄청난 기근이 발생해 100만 명 이상의 농민들이 죽고, 150만 명의 농민들이 고향을 떠나 이민을 갔다. 그 때 신대륙 남미에서 구대륙 유럽으로 감자가 들어왔고 그 왕성한 생장력과 영양가로 감자는 곧바로 주식으로 자리잡았다. 그런데 한 작물에 대한 높은 의존도가 오히려 화를 자초하고 말았다. 아일랜드 농부들은 제한된 토지에 단일 품종의 감자를 심어 생산력을 극대화하려다 감자마름병으로 더 큰 재앙을 맞았다. 반면 감자의 원산지인 안데스산맥의 농부들은 안정적인 생산을 위해 다품종을 유지하는 생산방식을 택했고 영양분을 충분히 공급함으로써 어떤 균류에도 버틸 수 있는 성분을 유지함으로써 재앙을 피해갔다.

어느 보도에 의하면 한ㆍ미 쇠고기 협상이 한창이던 지난 4월 중순, 국무총리실에서 대통령실로 "현재 진행되는 한ㆍ미 쇠고기 협상은 한덕수 전 총리에게 자문을 구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내용의 문서 하나가 긴급히 전달됐다고 한다. 한 전 총리는 자타가 공인하는 개방론자로 참여정부 시절 한ㆍ미 FTA 협상을 진두지휘했다. 특히 난항을 겪다 끝내 무산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협상의 전 과정을 훤히 꿰뚫고 있는 통상전문가이다.문서가 전달될 당시 한 전 총리는 미국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런데 이 문서는 대통령에게 전달되지 않았고, 그런 상태에서 체결된 쇠고기 협상 파문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그때 자문을 구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고위 공무원의 결격이 지적될 때마다 여권은 10년간의 보수세력 집권으로 인재풀이 메말라 쓸만한 사람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새 정부 참여인사는 보수성향이라야만 된다는 전제인 셈이다. 이전 정부에서 일했지만 유능한 인사들은 배제될 수밖에 없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든다. 실용주의를 외치는 이 정부도 결국 잡종에 대한 두려움과 불편을 피하려고 하거나 또는 어렵게 얻은 권력이니 우리끼리 나눠먹자고 하는 순혈주의에 빠진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실용'의 의미가 궁색한 부분이다.

이제 인적쇄신이 불가피한 시점이다. '비 고대, 비 영남, 재산 얼마 이하' 등 이런 기준으로 사람을 찾을 것이라고 한다. 천하의 인재를 끌어 모은다면서 내세운 이런 기준이 과연 실효성이 있을까라는 생각이다. 보수만이 유능하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잡종과 섞여있다는 마음 속의 불편함만 감수한다면 어떤 환경에서도 넘치는 생명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인재를 수용해야 한다.

다른 품종과 조화를 이루려면 마음을 맞추는 시간, 국정 철학을 공유해야 하는 시간, 장점을 의지적으로 발견해야 하는 불편함이 따르겠고 또 극단에 위치한 지지자들로부터 야합한다는 비난을 듣게 되겠지만 대한민국을 잘 되게 하는 일이라면 잡종 내각도 감수해 볼 만하지 않을까. 잡종내각을 요즘 뜨는 말로 하면 '하이브리드 캐비닛'이다. 공자, 주몽, 김유신이 모두 부모의 야합으로 태어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사실을 생각한다면 이 정도의 야합은 한번쯤 받아들일 만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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