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민 논설위원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는 군부독재가 전권을 휘두르던 때 국내에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독재권력의 극대화를 꾀하면서 개인의 사생활을 감시하는 소설적 배경에서 공감대를 형성한 부분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설 1984는 가상의 독재자인 '빅 브라더'를 내세워 '윈스턴 스미스'라는 개인의 사생활을 철저히 감시한다. 특히 소설 속의 주인공 윈스턴은 '텔레스크린'의 감시를 철저히 받으며 생활한다. 텔레스크린은 송수신이 동시에 가능하며 어떠한 소리나 동작도 감지할 수 있는 첨단 시스템이다. 하지만 윈스턴은 텔레스크린을 통해 자신이 감시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다.

1940년대에 쓰여진 이 소설은 미래를 예언한 것으로 유명세를 탔다. 특히 이 소설은 실제 1984년이 도래하면 첨단시스템을 통한 개인의 사생활 침해 현상이 정말로 나타날 것인가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했다. 하지만 기대했던 1984년이 되자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한다는 이슈는 크게 불거지지 않았다. 그 이후로 소설 1984는 사회적 이슈가 되지 못하면서 희미하게 꺼져가는 촛불처럼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듯했다.

그러나 정보화 사회가 급진전 되면서 소설 1984는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첨단 네트워크 시스템으로 무장된 이른바 '유비쿼터스' 사회를 맞이하면서 빅 브라더가 부활하는 느낌이다. 주변 곳곳에 첨단장비 시스템을 통한 감시의 눈이 도사리고 있다.

은행ㆍ백화점 등에는 어김없이 CCTV가 몰래 숨어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은행에서 돈을 찾거나 백화점에서 물건을 사는데 개인의 사사로운 모습들이 첨단장비에 의해 그대로 노출되는 게 현실이다. 심지어 출퇴근시 지하철역에서도 각 개인의 움직임이 자신도 모르게 포착되고 있다. 사방이 온통 감시장치로 둘러쌓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제 어느 때 누구에게 자신의 사생활이 침해 당할지 모른다. 길을 가다 카메라폰이나 디지털카메라에 찍힐 수도 있다. 최근들어 UCC의 출현으로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 가능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전자태그(RFID)의 등장도 우려스럽다. 이미 일부 할인점에서는 판매되는 제품에 바코드 대신 RFID 칩을 장착하고 있다. 유통 물류혁명을 가져 오기 위해 도입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RFID가 휴대전화 등 지불시스템과 연계되면 개인의 정보는 곧바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개인 정보 유출은 이미 심각한 상태다. 개인의 주민등록번호가 인터넷상에서 떠다니는 일이 다반사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가 나의 주민등록번호를 악용하고 있는 지 모른다. 유출된 개인정보는 사이버 범죄의 도구로 쉽게 활용된다. 인터넷 이용자들이 '개인정보 및 프라이버시 침해'를 정보화의 가장 큰 역기능으로 지목하고 있을 정도로 개인정보 유출은 중요한 사회적 이슈가 됐다.

행정자치부가 이번 주부터 시행 중인 '주민등록번호 클린캠페인'은 인터넷상의 주민등록번호 도용이 얼마나 심각한 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네티즌들은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성인사이트에 가입돼 있거나 한 사람 이름이 수십 개 사이트에 올라있다면서 놀라워하고 있다.

첨단 정보화 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이 윈스턴의 처지와 별반 차이가 없는 듯하다.

편안하고 편리한 삶을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첨단 디지털시스템은 원래의 용도에 맞게 사용되어야 한다. 프라이버시가 침해되고 개인정보가 보호되지 않으면 유비쿼터스 사회로 발전할 수 없다.

개인정보 보호 등을 위한 정부의 역할은 중요하다. 정부는 정보사회의 역기능을 최소화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개인도 자신의 정보보호 유출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 정보사회의 역기능을 조장하는 빅 브라더의 부활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다.

y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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