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 항생제로 치료 안되는 병균
내성 강해져 질병 정복 어렵게 해



영국의 병원에서 지금까지 개발된 어떤 항생제로도 치료할 수 없는 '수퍼박테리아'가 출현해서 간호사와 환자가 숨지는 일이 벌어졌다. 지금까지 모두 11명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이번에 문제가 된 '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상구균'(MRSA)이 그런 수퍼박테리아의 대표인 셈이다. 수퍼박테리아의 출현은 질병의 정복이 얼마나 어려운 꿈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포도송이처럼 생긴 황색포도상구균은 상처의 염증이나 피부 종기를 일으키는 대표적인 병원성 세균이다. '화농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화농균은 다양한 감염성 질병과 식중독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자연에 존재하는 수없이 다양한 박테리아 중에서 우리와 상극인 화농균은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켜왔다. 우리 몸이 가지고 있는 고도의 면역체계도 황색포도상구균 앞에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가 고약한 화농균에 저항할 능력을 갖게 된 것은 불과 반세기 전이었다. 알렉산더 플레밍이 우연히 페니실리움 노타툼이라는 푸른곰팡이가 화농균을 물리치는 기막힌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푸른곰팡이로부터 '페니실린'이라는 신비의 항생제를 성공적으로 분리해 냈다. 그리고 에른스트 체인과 하워드 플로리는 1940년에 순수한 페니실린을 치료용 주사제로 개발했다. 그 공로로 세 사람은 1945년 노벨상을 수상했다.

세균의 세포벽을 합성하는 효소의 작용을 방해하는 페니실린의 효과는 대단했다. 이제 우리는 염증이나 종기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것처럼 보였다. 세균에 의한 모든 감염성 질병을 완전히 정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생겼다. 정말 꿈과 같은 소식이었다.

물론 사정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세균이 반격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애써 투여한 페니실린의 분자 구조를 파괴해서 무력화시켜 버리는 '페니실리네이스'라는 효소를 만들어내는 신종 세균이 등장했다. 페니실린을 사용하고 10년만의 일이었다. 역사상 처음으로 개발한 페니실린이 미물(微物)의 반격으로 쓸모가 없어져 버린 것이다.

세균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황색포도상구균은 멸종 위기에 몰렸었다. 페니실린이 등장하면서 화농균에 의한 감염이 크게 줄었던 것이 그 증거다. 물론 세균에게도 살아남는 길을 찾아내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 세대 교체기간이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짧은 세균에게 10년은 놀라울 정도로 긴 세월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인간과 화농균과의 치열한 경쟁은 그렇게 시작됐다. 전 세계의 과학자들이 내성을 가진 새로운 화농균을 물리칠 수 있는 항생제를 찾아 나섰다. 설파계, 퀴놀론계, 세팔로스포린계, 테트라사이클린계, 베타락캄계 등의 다양한 항생제들을 속속 개발했다. 메티실린은 1960년에 개발된 세균의 무기인 페니실리네이스에도 견디는 베타락탐계 항생제였다. 새로운 항생제를 개발하려는 우리의 끈질긴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인간이 지금까지 정말 애써 개발한 모든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황색포도상구균이 바로 수퍼박테리아다. 지금의 현대 의학은 수퍼박테리아에 대해 속수무책이다. 현대의 과학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항생제의 출현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인간이 무모하게 항생제를 개발했기 때문에 수퍼박테리아가 등장했다는 주장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억지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켰던 화농균의 위력을 잊은 지극히 비인간적인 주장이다. 물론 우리가 화농균을 이기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패배를 인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과학과 우리 스스로의 능력을 믿을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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