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홈런은 어머니를 향한 것이었다.

팬들이 기쁨에 흐느끼고 막내의 이름을 구장이 떠나가도록 외쳐도 정작 그 주인공이 낳은 아들임을 알지 못하는 어머니를 위한, 사모곡이었다. 그래서 그의 대포에는 짜릿함과 애달픔이 함께 묻어 있다.

`라이언킹'에서 `국민타자'로 거듭난 이승엽(31.요미우리 자이언츠)은 소한 추위가 기승을 부린 6일 어머니 김미자씨를 하늘나라로 떠나 보냈다. 결혼 5주년이 되는 날 `엄마'와 작별했다는 사실이 더욱 기가 찰 뿐이었다.

아버지 이춘광(64)씨와 고인 사이 2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난 이승엽은 어머니에게 지극한 효심을 보였다. 막내를 유별나게 챙겼던 어머니의 사랑 속에 이승엽은 경북고 시절부터 장차 한국 야구를 이끌어갈 재목으로 성장했고 1995년 당당히 고향팀 삼성라이온즈 유니폼을 입고 어머니 앞에 섰다.

그러나 좋은 일에는 마가 끼는 게 인생일까. 2002년 1월 결혼을 올린 이승엽이 신혼 여행을 간 사이 고인이 뇌종양 판정을 받고 쓰러졌다. 부랴부랴 귀국한 이승엽이 수술한 어머니 곁을 지켰지만 호전될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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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은 이후 두 번의 수술을 더 했으나 의식 불명이 지속했다. 가까운 가족도 알아보지 못하는 안타까운 세월이 무려 4년 이상 흘렀다. 어머니의 병시중을 든 아버지 이춘광씨는 "컨디션이 좋을 때는 가끔 사람을 알아보는 것 같다"고 말했지만 상태는 그 사이 회복할 수 없는 쪽으로 악화하고 있었다.

그라운드에서만큼은 씩씩했던 이승엽은 북받치는 슬픔을 대포로 승화시켰다. 어머니가 병상에 누웠지만 이승엽의 기념비적인 홈런 행진은 그 때부터 시작됐다. 이 승엽의 성공과 어머니의 병환은 비극적인 희비 쌍곡선 그 자체였다.

2002년 대구구장에서 열린 LG와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이승엽은 `야생마' 이상훈으로부터 극적인 동점 3점 홈런을 빼앗으며 삼성의 한국시리즈 우승 한을 푸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이듬해에는 세계 최연소 300호 홈런을 때렸다.

그 해 가을에는 전국의 야구장을 온통 잠자리채 물결로 뒤덮게 만들며 아시아 한 시즌 최다 홈런인 56호 아치를 대구구장에서 그렸다. 그 때마다 이승엽의 옆에는 아내 이송정씨, 아버지가 항상 자리했지만 병상의 어머니는 집에서 텔레비젼을 통해 물끄러미 막둥이를 바라볼 뿐이었다.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005년 일본시리즈에서 홈런을 3방이나 쏘아 올리며 지바 롯데의 우승 영웅이 됐을 때도, 지난해 한일 통산 400호 대포를 터뜨렸을 때도, 아버지의 고독한 응원만이 아들의 귓가에 맴돌았다.

타국 생활에 부모의 사랑이 간절했던 이승엽은 2005년에는 부모 이름에서 한 자씩을 따 미광(美光)이라는 글자를 언더셔츠와 모자에 새기고 뛰었다. 마음만은 언제나 부모와 함께 있다는 표현이었다.

그는 홈런을 때릴 때마다 "어머니에게 홈런을 바친다. 어머니가 빨리 나으시는 게 최대 소원"이라며 자식의 애틋한 감정을 나타내곤 했으나 인명재천(人命在天)의 평범한 진리 탓에 이제는 어쩔 수 없는 공염불이 되고 말았다.

흰 눈꽃이 한반도를 소복이 뒤덮은 날 이승엽은 가장 든든한 지원군을 잃은 뒤 땅을 치고 목 놓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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