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순 한국디지털대학 총장


학생들은 수강신청 할 때가 되면 어떤 과목을 택해야 할지, 또 어떻게 하면 빨리 졸업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사이버대인 우리 대학은 사회복지학과를 제외하고는 전공필수과목이 명시되어 있지 않아 과목선택 시 고민이 더 클지 모른다. 그러나 필수과목이 명시되어 있지 않은 제도가 나쁜 것은 아니다. 인문과학으로는 세계에서 제일 우수한 대학으로 알려진 엠허스(Amherst)대학 같은 곳도, 필수과목이라고는 총장이 가르치는 고전(classic) 한 과목뿐이다. 이 대학은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자유롭고 폭넓게 선택하도록 권장한다.

미국 교육부장관을 역임한 후 테네시대학교 총장으로 재직 중이던 알렉산더(Lamar Alexander)총장은 졸업식 치사에서, "최소한의 필수과목만 택하고 졸업을 하려하지 말고 되도록 여러 분야의 과목을 택해서 폭넓은 지식을 습득하라"면서 직업도 "당장 얻기 쉬운 직업을 얻으려 하지말고,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해보고 난 후 자신이 원하는 직장을 얻도록 하라"고 조언했다. 평생동안 일을 할 것인데 조급하게 시작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학생들의 반응은, "총장님처럼 생활에 여유가 있는 분이나 하는 말이지 학자금 융자까지 받아가면서 어렵게 공부하고 빌린 돈을 갚기 위해 당장 취직해야하는 학생들의 처지를 모른다"며 불평일색이다.

나는 알렉산더 같이 여유가 있는 사람이 아니지만 우연히 법학으로 학사와 석사ㆍ박사과정을 끝낸 후 사회학 석사학위를 받고, 인류학으로 박사학위과정을 하면서 덤으로 사회학 박사과정에서 이수하는 사회학 과목까지 모두 공부했다. 경제성이나 논리적인 면에서 보면 바보 같은 짓을 한 셈이다. 그러나 그렇게 폭넓은 공부를 한 덕에 내 인접분야의 학문에 대해서 '무식'한 소리를 하지 않을 수 있고, 후에 사회학ㆍ인류학ㆍ경찰행정ㆍ사회복지 등 여러 학과의 학부장 일을 맡을 때도 도움이 됐다. 저술활동을 하는데도 큰 보탬이 됐다.

미국에서 교수로 있을 때, 학생들에게 자기의 이력서는 자신이 풍요하게 만들어 자신의 '상품가치'를 올려야 한다고 했다. 하나의 전공 과목만을 택하지 말고, 외국어와 전산ㆍ국제기업에 관한 공부를 해두면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수잔 리 루이스라는 학생이 내 조언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서부 테네시의 작은 도시 은행장의 딸인 그 학생은 인류학공부 외에 일본어를 택했다. 일어에 재미를 붙여 아예 일본으로 건너가 일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게 됐다. 주위에서는 일어공부의 경제성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기도 했지만, 그가 고향인 테네시로 돌아왔을 즈음인 80년 대 초부터 별안간 일본기업이 미국에 현지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닛산자동차를 비롯한 140여 개의 일본기업이 테네시주에 현지공장을 세웠다. 주의 경제개발부서는 일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는 고급인력이 필요했고 루이스는 즉시 주 정부관리로 발탁됐다.

그녀의 명성은 인근 주에도 알려져 내가 일본기업에 대한 연구를 끝냈을 무렵 그녀는 일본기업 유치를 꾀하는 오하이오 주 정부에 '스카우트' 되었다. 월급 인상 액수는 내가 들어도 놀라울 정도였다.

요즈음 신문지상에 대졸 고급인력이 일할 터전이 없다는 보도가 연일 오르내리고 있다. 경기가 호전되면 고용이 증대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근래 미국의 동향을 보면, 경기가 호전국면에 접어들어도 고용이 증대되기는커녕 오히려 감원을 하는 추세라고 한다. '고용 없는 경기회복'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감원을 주도하고 있는 기업도 유능한 인재를 찾는데는 게을리 하지 않는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대학생들은 매력이 있는 이력서를 준비해야겠다. 지명도가 높은 엘리트 대학 졸업장이 전부가 아니라는 인식은 이제 보편화되고 있다. 자기 전공분야가 아니라 하더라도 21세기에 제 기능을 할 수 있는 어떤 준비를 했는가가 더욱 중요한 시대가 이미 찾아왔다

최근에는 패션ㆍ제품디자인ㆍ인테리어ㆍ건축분야를 배운 사람들이 세운 벤처기업이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내용이 '21세기는 혼계영(混繼泳)시대'라는 소개와 함께 기사화된 적이 있다. 우리 대학생들도 '혼계영'전공을 통해 매력적인 이력서를 준비해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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