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보유액 과다 논란이 '한국투자공사(KIC)' 설립 추진 방안과 맞물리면서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이 11월말 현재 사상 처음으로 1500억달러를 돌파하면서 '과다 보유' 논란이 다시 수면위로 떠오른 것이다.

미국 등 선진국들은 외환보유액 운용 주체인 한국은행을 겨냥, '수익성' 등에 문제가 있다며 논란에 부채질을 하고 있다. 이 와중에 '동북아 금융허브'를 추진해온 청와대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는 200억 달러를 조달해 KIC를 설립하겠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200억 달러의 '출처'다.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는 과다 보유 논란에 휩싸인 외환보유액 가운데 10%인 150억 달러와 정부 외국환평형기금 50억달러를 합쳐 KIC설립 자본을 마련하겠다는 복안이다. 한은측은 이에 대해 "외환보유액은 한은의 고유자산인 동시에 국가 비상시에 대비한 마지막 지불 수단"이라며 "언제 어떤 경제위기가 닥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외환보유액 일부를 헐어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한은은 '수익성' 논란에 대해서도 "한은의 외환 운용 수익률은 국제 투자은행들의 기준 투자수익률인 6.14%를 상회하므로 전혀 문제가 없다"고 '대외비' 내용까지 일부 공개했다.

6년전 뼈아픈 외환위기를 겪은 경험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한은측의 주장은 대체적으로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다만, 한은측의 미숙하고 섣부른 대응은 한은과 정부가 외환보유액을 놓고 밥그릇 싸움을 하는 것처럼 잘못 비춰지게 하는 빌미가 됐다. 외환보유액을 국민의 것이 아닌 '한은의 고유자산'이라고 강변한 대목이나, 기밀에 속하는 '투자수익률'을 은연중 공개한 것 등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KIC설립건은 접근 방식이 잘못됐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가 크다. '동북아 금융허브'라는 KIC의 그럴듯한 설립 취지도 '외환보유액을 종잣돈으로 삼는다'는 그릇된 전제를 깔고 있어 빛이 바랜 인상이다. KIC가 설립된다고 해도 결국 한은과 마찬가지로 JP모건 등 국제투자은행에 외환 투자를 위탁할 가능성이 높은 데다, KIC설립을 둘러싸고 예산낭비ㆍ조직 비대화 등을 우려하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128조원에 이르는 연기금의 일부를 KIC자본금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논의되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정부는 우선 권위주의적이고 규제에 치우친 금융환경을 바로 잡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특히 경직된 노동시장ㆍ과도한 정부규제ㆍ고율의 법인세ㆍ회계부정 및 신용불량자 양산 등 산적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아시아 금융허브의 선발주자인 싱가포르는 '싱가포르21계획', 홍콩은 '홍콩2030계획' 등을 앞세워 지금도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미국 헤리티지재단의 올해 경제자유도 지수 조사에서 홍콩과 싱가포르는 161개국 가운데 나란히 1,2위를 차지하면서 한국(52위)을 멀찌감치 따돌렸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지난해 고용ㆍ해고 등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1,2위에 오른 싱가포르와 홍콩이 35위의 한국을 압도했다.

우리가 동북아 금융허브로 발돋움하려면 이들 두 나라를 반드시 딛고 일어서야 한다. 정부는 열악한 금융환경 개선을 위해 업무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둬야할 지 냉철하게 따져봐야 한다.

김동원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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