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장인정신'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어디에 가면 누가 몇 대째 어떤 일을 하고 있고, 어떤 가게는 언제 적부터 이어져 내려왔다는 문구를 흔하게 볼 수 있다.

혹자는 이를 두고 과거 봉건 체제에서 일본 서민들이 주거이전 및 직업선택의 자유가 없었던 데다, 우리나라처럼 외국에 지배당하는 등의 사회적 신분체계가 송두리째 헝크러질 큰 사건도 없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일본의 전통극 공연장이 늘 가득 차고, 전통극 배우의 인기가 높은 것을 보면 꼭 그런 이유만은 아닌 것 같다.

지난주 넓은 의미의 내부자에 의한 PDP(Plasma Display Panel) 제조회사와 휴대폰 제조회사의 첨단 기술유출 사건으로 나라가 시끄럽다. 지난 1990년대 말부터 우리가 강점을 갖고 있는 분야에서 이런 시도가 끊이지 않고 있는 데 대해,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물리적 보안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핵심기술 개발자에 대한 처우개선 등을 통해 '유혹'에 쉽게 흔들리지 않도록 해야한다고 조언한다. 정부차원의 강력한 방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강성 처방도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한 발 물러서서 냉정하게 본다면, 사실 이런 것들이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며,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다. 고래로부터 문화나 기술 전파의 상당부분도 이런 과정을 통했을 것이다.

불과 10여년 전의 가까운 과거로 눈을 돌려보자. 첨단 산업에 발을 내디딘 우리 기업들은 초기 기술적인 문제의 상당부분을 일본 등 선진기업 기술자들의 도움을 통해 해결했다. 대기업들에는 '고문'이란 타이틀을 가진 일본의 퇴역 기술자들이 몇 명씩 있었고, 일본 현직 핵심 엔지니어를 주말에 '편법 고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떤 경우든 궁극적인 목적은 '주지 않으려는 선진기업의 기술 노하우를 비정규 루트를 통해 값싸게 획득'하기 위함이었다.

과거 우리가 그랬듯이, 지금은 대만이나 중국이 우리의 강점을 베끼려 하고 있고, 우리가 경쟁력이 있는 한 또 다른 후발국들의 유사한 시도는 계속될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 우리에게 기술을 흘려준 일본 엔지니어들과 지금의 우리 기술 유출자들은 어떻게 다를까?

대기업 S사 출신의 한 외국반도체 업체 관계자는 "비공식적으로 협력한 일본 엔지니어들은 대부분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아주는 조언자 역할에 주력했을 뿐, 서류나 정보 파일을 송두리째 전해주는 경우는 없었다"고 전한다. 자신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기술을 간접적으로 전해주는 선에서 조직에 대한 최소한의 의리를 지키려했다는 것이다. 프로그램의 '소스'를 건네주는 것에 비견되는 최근의 무책임한 국내 기술유출 사건들과는 한참 달랐다는 얘기다.

도둑질을 두고 오십보 백보를 따지는 것 같아 우습기도 하지만, 조직에 대한 로열티의 차이를 느끼게 하는 얘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드는 생각 하나. '당시의 일본이 지금의 우리나라처럼 사오정이니 오륙도니 하는 말이 횡행할 정도로 젊음을 바쳐 일한 사람들을 가차없이 내보내는 분위기였더라도 일본 엔지니어들이 그런 자세를 견지했을까?'

명백한 범죄행위를 편들거나 동정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구성원들이 조직에 애정과 긍지를 가질 수 있게 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 조직에 대한 로열티를 갖게 하는 인과 고리의 시작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조휘섭 산업과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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