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인 월드캐피탈코리아 감사·객원논설위원

한 직장인이 3년 전 농협의 지점에서 대출을 받았다. 물론 아파트를 담보로 한 대출이었다. 서민이 아무런 담보도 없이 금융기관의 돈을 사용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단 한번의 연체도 없이 이자를 꼬박꼬박 물었다.

올해 초 이 직장인은 농협 점포를 찾아가 상담을 했다. 농협은 1천만 원을 사용할 수 있는 '자동대출 통장'을 추가로 발급했다. 이른바 '마이너스 통장'을 발급한 것이다. 약정 기간은 2005년 초까지로 되어 있었다. 필요한 자금을 인출했더니 통장에 '마이너스 수백만 원'이라고 찍혔다.

얼마 전 이 직장인은 대출 받았던 돈을 농협에 모두 상환했다. 농협에 담보로 제공했던 아파트의 담보 설정도 해지했다.

그후 이 직장인은 약간의 자금이 필요해 마이너스 통장에서 인출하려고 했다. 그러나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자동대출 자격이 상실되어 있었다. 농협측에 물었다. 대답은 간단했다. "아파트 담보와 연계해서 자동대출을 허용했던 것이었으나 대출금을 상환하는 바람에 신용 상태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간주, 자격을 박탈한 것"이라고 했다.

대출금을 상환했으면 상식적으로는 신용 상태가 좋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떼일 염려가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신용 상태의 변동'이라는 해명이었다. 오히려 대출금을 상환하면서 이자를 내지 않게 되었으므로 농협의 '수지'에 대한 기여도가 떨어졌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농협이 2005년 초까지로 되어 있는 '약정 기간'도 무시한 채 일방적인 조치를 취한 것이었다. 자격을 박탈하더라도 약정 기간이 지난 후에 해야 할 것 아니냐고 따졌다. 더구나 농협은 자격 박탈 사실을 통보조차 하지 않았다. 뒤늦게 알게 되었던 것이다. 농협은 "누군가가 통보를 했을 것"이라며 이 항의마저 무시하고 말았다.

이 직장인은 담보 대출을 받던 당시 농협에서 강제로 발급해 준 '신용카드'도 제법 많이 사용했다. 신용도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신용카드의 사용은 신용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결국 다시는 농협의 고객이 되지 않겠다는 '서민적인 보복'을 하는데 그쳐야 했다.

금융기관들이 '소액 예금'을 받지 않은 것은 이미 오래된 얘기다. 과거에는 꼬마들의 벙어리 저금통까지 긁어모아 예금을 늘리려고 혈안이었던 했던 은행들이 '푼돈'은 쳐다보지도 않고 있는 것이다. 소액 예금에는 아예 이자조차 지급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도 연체 금리는 요지부동이다. 최근의 금리 인하 추세를 감안하면 연체 금리도 따라서 내려야 하지만 연 25%나 되는 연체 금리를 적용하는 은행도 있다고 한다.

은행의 대출 재원은 당연히 '예금'이다. 예금을 늘리지 않고 기업과 가계에 대출을 늘릴 수는 없다. 은행들은 '푼돈'이 모이면 '목돈'이 된다는 간단한 원칙마저 외면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 술 더 뜨고 있다. 부동산을 담보로 잡고 대출을 하면서 '소득 증빙자료'까지 받겠다는 것이다. 이제는 소득이 신통치 않으면 담보를 제공하고도 은행돈을 쓰지 못하게 되었다. 이에 대한 은행들의 변명이 구차스럽다. '부실 채권이 우려되니 상환 능력을 따지겠다'는 것이다. 부동산을 담보로 잡고 대출을 하는데 어떻게 부실 채권이 발생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 변명이다. 충분한 담보를 잡고 덤으로 '상환 능력'까지 담보로 하겠다는 장삿속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손쉬운 장사만 찾아가며 하는데도 적자를 내는 은행이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신기할 정도다.

지금은 정부 기관의 서비스마저 놀랍게 좋아졌다. 민원 창구에 가면 누구나 느끼고 있다. 유독 은행들만 서민 위에 군림하고 있다. 횡포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다. 권위주의 시대로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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