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사의 사장인 B씨는 회사의 통합정보시스템 구축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시스템 구축을 맡은 SI업체 CEO를 만나보고 계약을 하겠다는 조건을 달았다. 처음 협상한 금액대로 예산을 집행하기만 하면, 확실하게 시스템을 구축해 주겠다는 확답을 구축업체 CEO의 입을 통해 직접 듣고 싶어서였다. A사의 사장이 굳이 시스템 구축업체 대표를 만나면서까지 완벽한 시스템 구축에 대한 약속을 받고자 한 것은 그동안 추진해 온 IT프로젝트에 대해 불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에도 회사에 수십 억원을 투입해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한 경험이 있습니다. 시스템을 구축하기 전만 해도 사업이 완료되기만 하면 업무의 효율성이 획기적으로 높아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는데 막상 구축작업을 마치고 보니 문제가 생겼어요. 그래서 시스템 구축업체에게 해결을 요구했는데 뭔가 어려운 기술용어를 들먹이며 장황하게 설명하더니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10억원을 들여 새로운 프로젝트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예 그런 일이 없도록 하려고 굳이 구축업체의 CEO를 만나자고 한 거지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기업의 CEO들 중에는 A사의 사장처럼 IT투자나 정보화 사업에 대해 불신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IT사업 추진을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지만 그만큼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기업의 CEO들이 이처럼 IT투자 효과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는 것은 정보화 투자에 대한 몰이해나 정보가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데서 비롯된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정보화 사업을 실질적으로 추진해 온 IT회사에도 많은 책임이 있다는 생각이다.

고객의 상황을 면밀하게 분석해 가장 적합한 시스템을 제안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사업의 규모를 키우는 데만 힘을 기울인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많은 돈을 들여 구축한 시스템이 애물단지로 전락하기도 하고 꼭 필요한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아 운영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판매실적을 올리기 위해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새내기한테 어울리지도 않고 관리할 능력도 없는 명품을 권하는 꼴이다.

최근에는 기업의 CIO는 물론이고 CEO들도 IT분야에 대해 전문가 못지 않은 지식과 안목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아 시스템 구축 수준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일선에서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고객의 요구'라는 점을 들어 문제를 개선하지 않고 시스템 구축을 강행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같은 방식의 사업추진은 당장은 매출확보라는 성과가 될지 모르겠지만 정보화 사업 효과에 대한 고객사의 불신을 키운다는 점에서 해당기업은 물론 결국 모든 IT기업에게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

최근 기업들을 중심으로 윤리경영선언이 확산되고 있다. 기업의 책임성과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정부의 정책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IT업체들도 이같은 추세에 발맞춰 윤리경영 선언을 하고 구체적인 행동준칙을 만들거나 관련 부서를 설치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윤리경영은 떠들썩한 선언이나 행사보다 고객사의 이익을 가장 잘 실현하려는 작은 노력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모든 IT기업들이 인식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장윤옥 컴퓨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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