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미국 뉴올리안즈 NCTA(미국케이블TV협회)전시회에서 겪은 일이다. 미국 인기 채널부스에서 이 회사 중역이 "한국은 브로드밴드가 세계 최고수준인데, 거기에 무엇을 서비스하고 있냐"고 물었다. 머뭇거리는 사이 그는 이내 "우리 채널은 인기가 있다"며 한국시장 진출 의사를 내비쳤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채널은 아직 국내에 들어오지 않았다.

한국은 네트워크 인프라에 있어서 세계 선진국 수준이지만 거기에 담을 콘텐츠 공급량은 턱없이 부족하다.

미래 핵심성장산업인 디지털콘텐츠산업은 디지털방송 환경이 전개됨에 따라 방송영상콘텐츠산업을 중심으로 발전할 것임은 이론이 없다. 현재 방송영상산업이 전체 영상산업에서 60%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이 비중은 갈수록 커질 것이다. 즉 디지털콘텐츠산업 정책은 방송영상콘텐츠산업을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말이다. 오프라인 상의 콘텐츠 유통구조(윈도우)에서는 영화가 원천소스 역할을 많이 했지만 이제 네트워크 시대에서는 디지털 방송콘텐츠가 원천소스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네트워크에 채울 국산 콘텐츠의 공급이 태부족한 상황에서 해외 콘텐츠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그나마 국산 방송콘텐츠는 지상파와 극소수 방송콘텐츠사업자(MPP)들이 과점하고 있다. 나머지 90%의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와 대다수 독립프로덕션(PD)들은 개점 휴업 상태다.

네트워크 확충에도 불구하고 지상파 방송3사 중심의 방송시장 구조와 극소수 MPP의 독과점 현상이 완화되지 않는 것은, 그래서 콘텐츠사업자간 치열한 경쟁이 이뤄지지 않고 질높은 콘텐츠공급이 저해되고 있는 것은 제도미비와 당국의 정책의지 결여, 여기에 지상파네트워크와 위성 및 케이블TV네트워크 사업자들간 '카르텔'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지상파의 경우 외주제작비율 등으로 지상파네트워크의 자가망 독점을 견제하고 있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눈감고 아웅하는 식'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정책당국도 이것을 알고 있지만 손을 놓고 있다.

위성 및 케이블TV네트워크사업자(SO)들도 지상파네트워크의 뉴미디어 진출을 방관하며 은연 중 카르텔을 형성했다. 위성과 케이블의 황금대역 채널은 지상파와 극소수 MPP들이 독차지하는 대신 위성 및 케이블TV 네트워크사업자들은 그들을 대주주로 받아들였거나 그들의 콘텐츠(드라마)로 재탕 삼탕하며 인포머셜 광고 등을 통해 배를 불려왔다.

이제 네트워크사업자들간의 담합을 자를 때가 됐다. 방송영상산업 정책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지금 한껏 분위기를 띄우고 있는 위성DMB도 콘텐츠산업의 전기가 마련되지 않으면 지상파, 위성, 케이블TV와 차별되지 않는 콘텐츠의 중복, 즉 망의 낭비만 가져 올 것이다.

문화부가 2007년까지 방송영상산업진흥에 5000억원을 투입, 방송프로덕션사의 자생기반 마련, 공동활용 인프라 구축, 방송영상 전문인력 양성, 유통 선진화 등을 꾀한다고 하지만 제도정비를 하지 않고 정책의지를 가다듬지 않는 한 공염불에 그칠 수 있다. 오히려 네트워크사업자간의 '카르텔'을 깨는 데는 백가지 지원사업보다 문화부가 제기했던 외주제작 전용 지상파방송 설립이 더 타당성 있어 보일 지경이다.

이규화 문화레저부장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규화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