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과 정부의 생각이 서로 엇나가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오히려 서로 생각이 통하는 사례를 찾기 어렵다. 기업과 정부 상호간에 생각이 다를 경우, 기업들은 공무원들을 향해 '현실을 무시한 탁상공론'이니 '소신없는 정책 논리'라며 비난하기 일쑤다.

물론 정책을 집행하는 공무원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눈앞에 이익만을 생각하는 근시안적 사고' 라고 몰아붙이는 일이 다반사다. 이들간에 벌어지는 일만 보면 '산업계와 정부의 협력 가능성'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만큼 어려울 것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최근 정보통신부와 통신업체들간에 벌어지는 논란도 비슷한 경우다.

정통부가 밀어붙이려는 사안을 업체들은 애써 무시하고 업체들이 요구하는 사안에 대해 정통부는 정책의 일관성을 내세워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3세대 이동통신(WCDMA) 설비 투자를 둘러싼 정통부와 사업자간의 신경전은 고도의 심리전을 보는 듯하다. 정통부는 투자를 전제로 사업권을 허가한 것이라면서 사업자들의 적극적인 투자를 내심 바라고 있다. 하지만 SK텔레콤이나 KT 모두 '투자의 효율성' '기존 이동전화 서비스와의 중복 투자'를 이유로 들며 적극적인 투자에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사업자들이 내세우는 주주들의 반대라는 명분 앞에서 예전에 서슬 퍼렇던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추진력도 먹히질 않는다.

하지만 이른바 휴대 인터넷으로 분류된 2.3GHz 주파수 할당 문제에서는 완전히 입장이 뒤바뀌었다. 유선과 무선사업자를 막론하고 너도나도 이 사업을 하겠다고 나서고 있지만 칼자루를 쥐고 있는 정통부는 느긋하다. 올해 중에 주파수 할당 방법을 연구한 뒤 주파수 할당은 내년 중에나 가능하다면서 사업자들의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

겉으로 나타난 현상만을 지켜보면 그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유치한 다툼으로 비쳐진다.

그러나 양측의 논리를 자세히 뜯어보면 결론만이 정반대일 뿐 같은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한마디로 조기투자를 통한 산업경쟁력 확보라는 같은 명분에서 출발하지만 각자의 입장에 따라 전혀 다른 결론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사업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강력한 의지로 밀어붙인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방식 디지털이동전화나 비대칭가입자회선(ADSL) 프로젝트가 결국 IT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결정적인 동력을 제공했다는 공적을 깎아 내릴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것은 황무지 상태에서 신천지를 개척했던 과거 개발시대의 논리라는 사실을 깨달아야한다.

이제 우리의 통신업체들은 세계에서 손꼽을 만한 경쟁력과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또 이긴 자만이 살아남는 정글의 법칙을 몸으로 깨닫고 이겨낸 전투력을 가지고 있다.

개발시대의 정책논리를 성장시대에 그대로 적용하면 아무래도 부작용이 따르게 마련이다. 이제 정부는 기업들을 이끌고 '돌격 앞으로'를 외치는 개발독재 시절의 리더가 아니라 기업의 판단과 결정을 존중하고 이를 측면에서 지원하는 보조자의 역할로 돌아서야 한다.

정보통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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