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ㆍ오프라인 마케팅 경험 '멀티 CEO'


IT 업계에서는 '도그 이어'(Dog Year)란 말이 자주 거론된다. 개에게 있어 1년은 사람에게 있어 7년에 해당되기 때문에, IT세계에서 1년은 다른 산업의 7년에 해당한다는 의미다. 그만큼 이 세계에서는 '시간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비즈니스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사항인 것이다.

국내 인터넷업체 중 이승일 야후코리아(www.yahoo.co.kr) 사장만큼 인터뷰 약속 잡기 어려운 CEO도 드물다. 일부러 언론과의 접촉을 피하기 때문에 약속을 잡기 어려운 경우가 아니라, 너무 바쁘기 때문이다. 아침 6시면 출근해 오후 7시까지 쉼 없이 일하고, 퇴근해서도 9시부터 12시까지 또 일과 씨름한다.

기자는 오전 7시30분에 서울 삼성동 글라스타워에 있는 야후코리아 본사를 찾았다. 그러나 이승일 사장은 벌써부터 미국 야후 본사와 콘퍼런스 콜로 미팅을 갖고 있었다. 미국과 시차가 크다보니, 시간관리를 잘하지 못하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들다는 게 이 사장의 설명. 그가 밝힌 전세계 25개 야후 중 야후코리아의 실적은 매출 2위, 수익성 1위. 이같은 결과는 시간과의 전쟁에서 이겼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 사장의 특징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글로벌 맨'이다.

메이저리거 박찬호식 말투를 구사하는 이 사장. 초등학교 시절, 경북대 교수로 재직중이시던 아버지가 유엔식량기구에서 일하게 되면서 건너간 나라가 네팔이다. 그 이후로 태국�미국�싱가포르�말레이시아�홍콩을 돌면서 학업 및 비즈니스를 이어왔다. CEO치고는 꽤 젊은 나이인 그는 지금까지 모두 6번이나 직장을 옮겼지만 그 때마다 업종이나 분야가 모두 달랐다. 중학교 시절부터 '멀티 CEO'를 목표로 자신의 로드맵(경력지도)을 짜놓은 뒤 여기에 맞춰 직장을 옮겼기 때문이다.

이 사장이 최고의 CEO를 위해 선택한 제1의 수단은 무엇보다도 최고의 마케팅 능력. 미국 미시간대학에서 MBA를 마친 후 모두 14군데서 채용 제의를 받았지만 이 사장은 연봉이 가장 많은 회사를 제쳐놓고 마케팅 분야에서 세계 최고인 회사를 택했다.

처음 입사한 곳은 생활용품 전문업체인 프록터스앤갬블(P&G). P&G에서 마케팅 능력을 테스트한 후 한국으로 들어온 뒤에는 씨티은행에 들어가 역시 신용카드 마케팅을 담당했다. 남들이 모두 재무회계에 정통한 '뱅커(banker)'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할 때 그는 마케팅 전문가의 꿈을 접지 않은 것이다. 그 후 선택한 직장 역시 코카콜라에 맞서 공격적 마케팅을 펼치던 펩시콜라 인터내셔널. 여기서도 마케팅 위주의 경영수업을 계속한 끝에 드디어 중학교 시절부터 꿈꾸던 CEO가 될 기회를 잡았다.

36세 되던 해 그는 BMS의 말레이시아 사장이 됐다. 제약회사 CEO로서 전혀 새로운 분야를 경험한 이승일 사장은 3년 뒤 또다시 인터넷업체인 '아시아온라인'의 아시아 및 인도지역 사장으로 자리를 옮겨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여기서 그동안 B2C에만 기울여온 관심을 B2B 쪽으로 넓혀 온라인 분야 CEO로서의 준비를 모두 마쳤다.

'준비된 CEO'였던 덕분일까. 이승일 사장은 야후코리아 사장으로 부임한 지 불과 6개월만에 야후 본사의 남아시아 총괄사장에 임명되면서 글로벌 CEO 위치에 올랐다. 이 사장은 "금융이든 제약이든 식음료든 간에 소비자의 욕구를 파악하기 위한 접근 방법은 비슷하다"며 "모든 CEO들이 마케팅을 중심 축에 놓고 생각한다면 히딩크식 '멀티플레이어'가 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혹자는 이 사장의 국제 경험이 한국 내 비즈니스 상황과 문화을 고려할 때 장애가 되지 않을까 우려도 한다. 하지만 이 역시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주위 사람들의 평가. 이승일 사장은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 미국과 한국의 학기제도가 다른 점을 활용해서 방학 때마다 귀국해 '한국 고등학생'의 경험을 쌓았다. 역시 같은 이유로 한국에서 대학생활을 시작(연세대 경영학과)하기도 했다. 또한 펩시콜라 한국지사와 씨티은행 한국지사 등에서 직장생활을 했고, 아시아온라인 사장으로 재직할 때는 한국 IT기업과 다양한 비즈니스를 통해 한국시장 및 문화에 대해 누구 못지 않은 깊은 이해를 하고 있었다.

이 사장의 또 하나의 특징은 스포츠 마니아라는 점이다. 축구�골프�수영�배구�스키 등 못하는 운동이 없는 만능 스포츠맨이다. 골프는 싱글핸디 수준이며, 학교시절부터 축구를 비롯해 테니스�배구�태권도 선수 및 코치 생활을 해왔다. 이 사장은 특히 땀을 많이 흘리고 반드시 승부를 가려야 하는 격렬한 운동을 좋아한다. 이러한 근성이 비즈니스에서도 승부사 기질을 발휘하는 것이다.

이런 승부사적 기질은 학창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중학교 이후 부모님을 떠나 홀로 미국 고등학교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신청해 당당히 합격하면서 독립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부모님은 어린 자식을 먼 곳으로 떠나보내는 것이 못내 안쓰러워 미국 고등학교 진학을 만류했으나, 그는 더 큰 세상을 알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외로운 미국 생활을 시작했던 것이다. 그때 그는 이미 경제적인 자립도 시작했다. 부모님이 붙여주신 생활비며 학비를 모두 돌려드리고 농장 아르바이트, 전구 갈아끼우기 아르바이트, 도서관 청소, 신문배달 등 소위 안해 본 아르바이트가 없었다. 유복한 가정환경에서 자칫 결여되기 쉬운 '헝그리 정신'도 이때 익혔다고 한다.

'잘 나가는 CEO'이지만 이 사장에게도 고민은 있다. 야후코리아뿐 아니라 남아시아 지역까지 챙겨야 하는 바람에 시차를 뛰어 넘어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좋아하는 운동을 못하는 것도 아쉬운 점이지만,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지내는 달콤한 시간이 그리운 것도 사실이다. 홍콩에 있을 때는 가족과 함께 클래식 공연을 빼놓지 않고 다닐 정도였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때문에 아내와 아이들로부터 좋은 아빠가 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토로한다. 그래서 웬만하면 일요일에는 가족과 함께 하려고 노력한다.

야후코리아는 2003년을 야후코리아의 새로운 전기로 만드는 해로 정했다. 시장 1위의 자리를 확고히 하고 있는 검색서비스를 더욱 강화하고, 상반기 중 새로운 클럽�채팅�신개념 아바타를 접목시킨 커뮤니티 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이다. 또 모바일 비즈니스도 새롭게 접근해 나갈 계획이다.

이 사장은 "후발 업체들의 공격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올해에는 공격적인 투자와 마케팅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며 "지금까지와 다른 야후코리아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임채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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