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년 통신 발자취…IT선진국 새역사 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처럼 ` e-코리아를 모르고서는 IT를 논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이제 막 싹을 틔우고 있다.

아직 갈 길은 멀고 험난하지만 일단 정보화사회로 가는 길목에 제대로 접어들었고, 기본 인프라 구축에 나름대로 공을 들인 덕분에 IT강국으로의 도약 가능성이 어느 때 보다 높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정부는 그간 `정보화사회'에 대한 국민적 열망과 공감대를 바탕으로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 등 IT환경 조성에 주력해 왔다.

그 결과 2000년대에 들어 한국은 국제사회가 부러워할 정도의 IT인프라를 구축했고, IT산업은 2002년 GDP 비중이 15%, 수출비중이 28%에 이르는 우리 경제의 핵심 성장엔진으로 자리잡게 됐다. 특히 지난 해 6월 한ㆍ일 월드컵 때는 뛰어난 우리 IT기술을 `IT 월드컵'으로 활용, 세계인의 뇌리에 `IT 강국-코리아'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각인시키기도 했다.

정보통신부는 이 같은 성과를 토대로 한국을 세계 IT산업의 허브국가로 발전시키기 위해 다각적인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앞으로 5∼10년간 우리나라를 먹여 살릴 `신 성장 동력'으로 3세대 이동통신 등 9개 분야를 선정, 집중 육성함으로써 오는 2007년 IT생산 400조원, 수출 1000억 달러를 달성한다는 `IT 신 성장 전략' 프로젝트를 마련한 것도 `IT선진국'을 목표로 한 것이다. 올해 정보통신의 날은 과연 정보화의 대장정에 나선 우리가 현재를 어떻게 평가하고, 미래의 청사진을 어떤 모습으로 그려 낼 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가사회 정보화ㆍIT산업 육성ㆍ통신서비스ㆍ우정사업 등의 분야로 나눠 점검해본다.

<통신서비스>

◆통신 발자취=우리나라 통신은 1885년 9월28일 한성전보총국을 개설, 서울-인천간 처음으로 전신업무를 개시하고 서울에서 평양을 거쳐 의주에 이르는 서로전신(西路電信)을 건설함으로써 시작됐다. 이어 1887년에는 서울-부산간에 남로전신을, 1891년에는 서울-원산간에 북로전신을 개통하여 전국적인 전신망을 구성했다.

전화는 전신보다 10년 뒤인 1895년에 도입해 1896년 궁내부에 최초로 자석식전화를 개통했다. 이 때 전화는 `텔리폰'을 음역해 `덕률풍(德律風)' `득률풍(得律風)'이라고 했으며,'말 전하는 기계'라는 뜻의 `전어기(傳語機)'라고도 했다. 당시 순종은 부왕인 고종의 능(陵)에 전화를 설치하고, 아침 저녁으로 전화를 통해 곡(哭)을 올리는 `전화곡(電話哭)'을 해, 훗날 전화가 인간생활 양식을 변화시킬 것임을 예고했다.

1902년 3월20일에는 서울-인천간에 전화통화를 시작한데 이어 그 해 6월에는 한성전화소에서 13명의 가입자로 전화업무를 시작했고 1903년에는 인천에도 12명의 가입자가 생기게 됐다. 그 뒤 일제 암흑기와 6.25전쟁을 겪으면서 통신시설은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에 머물렀으나, 한국은 1952년에 국제전기통신연합(ITU) 회원국에 정식 가입했다. 1962년부터 추진한 경제사회발전 5개년 계획 중 통신부문계획이 성공을 이루면서 발전의 기틀을 마련, 1980년대부터 전기통신시설의 대량확충과 현대화를 추구해 왔다.

1982년이래 해마다 연평균 100만회선 이상의 전화시설을 공급했으며, 1987년에는 1000만회선을 돌파함으로써 `1가구 1전화시대'를 열었다. 1990년대부터 통신사업에 경쟁이 본격 도입되면서 이동전화와 무선호출 등 이동통신서비스가 국민생활을 크게 향상시켰다. 1997년부터는 PCS 휴대전화서비스가 본격 시작돼 이동통신시대의 새로운 장을 열면서 서비스 첫 해 680만 명이던 이동전화 가입자는 지난 해 3200만 명을 넘어섰다.

◆통신강국의 꿈=1984년 서울ㆍ안양ㆍ수원 등 수도권에 3천 회선의 시설로 처음 시작한 이동전화서비스는 1996년 세계 처음으로 CDMA방식의 상용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1997년 10월부터 개인휴대통신(PCS)서비스가 시작돼 본격적인 이동전화 시대가 개막됐다. 2000년 10월에는 세계 최초로 동기식 IMT-2000서비스인 cdma2000-1x를 선보인 데 이어, 지난해 1월에는 동영상을 초고속으로 전송하는 cdma2000-1x EV-DO 서비스를 세계 처음으로 개시, 고속 무선인터넷 시대를 예고했다. 올 하반기부터는 새 주파수대역을 이용한 2GHz IMT-2000 영상전화 서비스가 예정돼 있다. 유선전화 가입자는 지난해 기준으로 2349만명에 이른다.

◆ 통신서비스 경쟁력 강화= 1999년 이후 시내전화를 포함한 통신사업 전 분야에 경쟁체제를 구축했고, 각종 통신규제를 꾸준히 줄여 왔다.

통신요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이동전화요금은 1998년 이후 3차례에 걸쳐 기본료 22.2%(월 1만8,000원→1만4,000원), 통화료는 23.1%(10초당26원→20원) 내렸으며, 시내전화 통화료는 13.3%(3분당 45원→39원), 가입비는 40%(10만원→6만원) 각각 내렸다. 유선전화에서 이동전화로 거는 요금(LM통화)도 3차례에 걸쳐 39.9% 내렸다.(10초당 26원→15.63원)

통신서비스 품질을 높이는 노력도 꾸준히 펼쳐, 최소품질보장제, 지역번호 통합(2000.7.) 등을 실시했다.

◆`디지털방송 시대' 개막 = 1997년 2월 지상파TV 방송의 디지털방식 전환기본계획을 수립, 그해 10월 방송 방식을 미국의 ATSC(Advanced Television Systems Committee)방식으로 확정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수도권을 대상으로 본방송을 개시, 본격적인 디지털 방송 시대를 열었다. 올해 광역시에 이어 2004년 도청소재지, 2005년 시ㆍ군으로 확대해 2010년까지 디지털방식으로 완전히 전환할 계획이다. 언제 어디서나 접속할 수 있는 차세대 방송서비스인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을 내년부터 제공하고, 우주산업 발전을 위해 오는 2006년 3월 무궁화 5호위성을 발사할 예정이다.

<우정사업>

◆우정 발자취 = 1884년 4월22일 고종 칙명에 따라 설치한 우정총국은 같은 해 11월18일 처음 5종의 문위우표를 발행해 근대식 우편업무를 시행했으나 우정총국 개설연을 계기로 일어난 갑신정변이 실패함에 따라 불과 18일만에 업무를 중단하게 된다.

그 뒤 1895년 7월22일 한성우체사와 인천우체사를 설치, 우편업무를 재개하고 1900년 1월1일에는 국제기구 역사상 처음으로 UN산하 만국우편연합(UPU)에 가입하는 등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일제 암흑기를 거쳐 1948년 9월 통신주권을 회복했으며, 1994년 10월에는 우편물 종별체계를 개편, 빠른 우편과 보통 우편제도를 시행했다. 우정사업은 1998년부터 본격적인 경영혁신에 돌입했고,2000년 7월 우정사업본부로 독립 출범하면서 정보통신기술을 접목한 새로운 우편ㆍ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다양한 서비스=인터넷을 이용하기 어려운 소외지역 주민을 위해 전국 116개 우체국에 정보화교육장을 마련하고 2758곳에 인터넷 플라자를 운영하고 있다. 자신만의 독특한 멋과 개성을 표현하는 `나만의 우표서비스'는 고객 인기상품으로 떠올랐으며, `향기우표', `야광우표' 등 독특한 우표도 선보였다. 지역특산품을 중간유통 과정 없이 인터넷으로 소비자와 연결해 주는 `우체국 인터넷쇼핑몰(ePOST)'은 전국 농ㆍ수ㆍ축산품 6512종을 취급하고 있고, 1257종의 상품은 외국에서도 주문할 수 있다. PC로 안방에서 우체국택배, 경조우편카드 등 우체국서비스를 이용하는 `인터넷 우체국'을 운영하고 있다. 우편사업 매출은 지난해말 기준으로 1조6646억원, 우체국금융 수신액도 49조8472억원에 이른다.

<국가사회 정보화>

◆세계 최고의 인터넷 인프라 구축= 국가 사회 정보화를 추진하기 위해 1996년 6월에 정보화촉진기본계획을 마련, 2010년까지 3단계로 나눠 각 단계별로 추진할 정보화목표를 제시했으며, 그해 9월에는 구체적 실천계획인 정보화촉진시행계획을 확정했다. 초고속 정보통신망 구축 사업의 첫 삽을 뜬지 불과 5년만인 지난 2000년 12월 지식정보 시대의 대동맥인 초고속 정보통신망을 당초 계획보다 2년 앞당겨 전국 144개 주요 지역까지 깔았다. 그 결과 1998년 1만여 명에 지나지 않던 초고속인터넷 가입자는 지난해 1000만 명(보급률 70%)을 돌파했다.

◆전자정부ㆍ디지털경영 지원= 지난 2001년 민ㆍ관 합동으로 전자정부특별위원회를 설치, 민원혁신서비스(G4C) 등 전자정부 기반 11개 중점사업을 추진해 지난해 11월 전자정부 시대를 개막했다. 이로써 주민등록등본ㆍ호적등본ㆍ토지대장 등 393종의 민원을 인터넷으로 신청하고 우편으로 받아보는 `안방 민원'의 시대가 활짝 열리게 됐다. 전자상거래 규모도 지난 1999년 30조원에서 2002년 177조원으로 급증했다. 정부는 2007년까지 전자거래 비중을 전체 거래의 40% 수준까지 끌어올린다는 복안이다.

◆ 정보화 역기능 방지=1999년 2월 전자거래 활성화를 위해 전자서명법을 제정했으며, 공인인증제도를 도입해 현재 6개 공인인증기관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2000년 말 5만 명이던 공인인증서 이용자는 2001년 192만 명, 지난해에는 577만 명으로 늘면서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정보보호산업의 기반 기술 개발에 지난 5년간 847억 원을 지원하고, 벤처업체들의 해외진출을 지원하기 위해 97억 원을 투자했다.



◆핵심 성장엔진으로 급부상 = 정보기술(IT)산업은 그 동안 우리나라 경제 성장을 이끄는 지식기반 경제의 핵심 성장엔진으로 자리잡았다. IT산업이 전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98년 9.3%에서 지난해 14.9%로 늘었으며, 수출은 전체 수출에서 28.2%를 차지했다. 무역수지 흑자도 같은 기간 국내 총 흑자규모의 71.7%에 이르는 681억 달러를 기록, `IMF 위기'를 벗어나는데 기여했다.

◆IT 전문인력 양성 = 정규교육기관의 IT관련 학과 정원을 3만3000명 이상 늘려 IT인력 공급기반을 마련하고, 실업자ㆍ미취업자 등을 대상으로 IT 전문교육을 실시해 2만7000명이 IT전문인력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을 제공했다. 세계를 선도할 고급 연구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우수한 연구능력을 갖춘 대학IT연구센터(ITRC)를 선정, 센터 당 8년간 64억 원을 지원했다. 정통부는 앞으로 기업에서 필요한 현장감각을 갖춘 10만 명의 IT전문인력을 양성하고, 고급인력 양성을 위해 `박사 후 연수' 제도와 해외교수 초빙, 외국인 유학생 제도를 추진할 계획이다.

◆ 미래 핵심 IT기술 개발 = 1998년부터 5년간 기술개발ㆍ표준화ㆍ연구기반 조성 등에 1조9602억 원을 투입, 정보통신기술이 세계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그 결과 CDMA, TFT-LCD 등 세계 1등 상품을 개발했고 IMT-2000서비스를 세계 처음으로 상용화했다. 특히 이동전화는 해외 수출이 1997년 8억7400만 달러에서 2002년 114억 달러로 늘어나 연 1200% 성장이라는 경이적인 실적을 기록했다.

◆ 소프트웨어산업ㆍIT 벤처기업 육성 = 소프트웨어산업 성장기반을 만들기 위해 전국 18개 `지역SW지원센터'를 설치해 1646개 기업의 창업을 지원했으며, 부산ㆍ광주 등 7개 지역을 `소프트타운'으로 지정했다.

국내 SW시장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 15조6000억원에 달하며, 지난 5년간 연평균 매출 성장률은 34.9%로, IT산업 평균성장률 21.5%를 능가했다. IT 중소ㆍ벤처기업을 키우기 위해 지난 5년 간 2조5583억 원의 자금을 지원했다.

김동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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