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타고 떠나는 달콤한 '선상휴가'


여행의 가장 큰 적은 기대를 갖는 것이다. 크루즈 여행은 우아한 드레스 차림으로 바람에 머리카락을 날리며 갑판에서 한없이 행복한 표정을 짓는 모 카드사 CF나, 선탠 크림을 잔뜩 바르고 작열하는 태양 아래 선상에 누워 황홀한 시간을 보내는 영화 속 한 장면을 상상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런 상상의 날개를 펼치며 지난 11일 '스타크루즈 카프리콘'에 올랐던 승객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꿈에서 깨야 했다.

2만8000t급의 카프리콘호가 한ㆍ중 처녀출항을 기다리며 당당하게 서 있던 평택 항. '처녀'라는 이미지가 '청순함'과 '다소 익숙하지 않음'이라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위풍당당한 카프리콘 구석구석에는 아직 '공사 중' 팻말이 붙어있었다.

영화에서처럼 우아하게 수영을 즐겨볼까 하고 나간 승객들은 작업복 차림의 직원들과 공사 현장을 둘러봐야 했다. 스트레칭 강습을 한다는 체육관에 가보니,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게다가 서른살이 넘은 아가씨, 카프리콘호는 상당 부분 낡아 있었다.

카프리콘을 탔던 탤런트 손지창씨는 "온풍은 안 나오고 에어콘 바람만 나와서 감기 걸리겠어요. 여기서 감기 걸려 가면 사스 걸린 줄 안단 말이에요"라며 직원들에게 볼멘 소리를 했다. 설상가상으로 날씨도 도와주지 않았다. 추운데다 비도 내려, 갑판에서 우아하게 폼잡는 일은 일찌감치 포기해야했다.

◆마음가짐 따라 100% 달라지는 크루즈 여행

'이번 여행은 운이 따르지 않는 모양이야'라고 깨끗이 포기하고 나니, 곳곳에 숨어있는 즐거움들이 퐁퐁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객실은 낡기는 했지만 아늑하고 편안했다. 창으로 바다를 바라보면서 음악을 듣고 있자니, 온갖 상념들이 하나둘 사라졌다. '스타 내비게이터'라는 프로그램 안내문에 따라, 라인댄스를 배워보고 빙고게임에도 도전하다보니 시간이 화살처럼 날아갔다. 저녁에 펼쳐지는 마술쇼나 각종 버라이어티쇼도 볼 만했다. 방에서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로스트 메모리스' 등 각종 한국영화도 계속 방영됐다. 5층과 9층에 마련된 카지노에는 잭팟과 바카라 등 다양한 도박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별도 요금을 내야하는 발 마사지(10~28달러)나 헤어 마사지(10~20달러)도 비용대비 효과에서 뛰어났다. 태국인 크루들의 정성스러운 손놀림과 시종일관 잃지 않는 따듯한 미소는 마사지로 얻은 효과보다 더한 편안함을 안겨줬다.

다소 불만스러웠던 승객들의 마음을 눈 녹듯이 사라지게 한 것은 역시 음식이었다. 최고급 음식은 아니었지만, 한국과 중국, 태국음식들이 다양하고 맛깔스럽게 차려져 있었다. 투어가이드인 김현영(45) 씨는 "배고플 틈을 주지 않는다"며 "음식이 맛있어 습관성 과식으로 고생할 것 같다"고 말하곤 한바탕 웃었다.

음식을 더욱 맛있게 해줬던 것은 3인조 그룹의 아름다운 노래. 테이블을 돌아가며 손님들이 요청한 팝송을 즉석에서 연주해 분위기를 더욱 우아하게 만들었다. 밤 11시 30분부터는 야참시간도 마련돼 있어, 술 한 잔을 나누면서도 안주 걱정은 따로 할 필요가 없었다.

10층 갑판에서 일행들과 즐기는 축구도 잊지 못할 추억거리. 삼삼오오 모여서 바람을 가르며 뛰다보니, 즐거움이 갑절로 늘어났다.

◆기항지 관광과 각종 쇼 '놓치면 손해'

이른 아침 커튼을 젖히는 기분도 쏠쏠했다. 투명한 창 밖에 바다가 출렁이는 모습을 보며 시작하는 아침은 살아있다는 행복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중국 대련항에 내려 4시간 동안 시내를 돌아보는 기항지 관광도 인기가 좋았다. 너무 짧아 대련의 아름다움을 살짝 훔쳐보고 오는 정도였지만, 크루즈 여행의 재미를 더할 수 있는 좋은 재료였다.

여행이 끝나는 13일 오후까지 처음에 기대했던 햇살은 결국 보지 못했지만, 2박 3일이 사소한 재미들로 오밀조밀 채워져 무척이나 짧게 느껴졌다. 역시 즐거움은 스스로 찾는 것인가 보다. 인생이 그러하듯이. 평택항을 빠져나오며, 마음 맞는 좋은 친구들과 함께 햇살 좋은 때를 골라 다시 한번 카프리콘을 찾으리라 생각했다.

평택ㆍ대련(중국)=채지형기자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