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등진 여성테러리스트의 죽음


대부분 살인에는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법은 이들에게 아량을 베풀기도 한다. 그러나 이념과 사상에 따라 움직이는 테러리스트라면, 이들에게도 우리는 동정의 시선을 보낼 수 있을까.

다음달 2일 개봉하는 '레전드 오브 리타'는 테러리스트도 한 인간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2000년 베를린 영화제 최우수 유럽영화상을 탄 이 영화는 누구보다 조국을 뜨겁게 사랑했고, 그 이유로 세상 어느 곳에서도 외면당한 채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 한 테러리스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유럽 최악의 테러리스트로 불리는 서독의 적군파 테러리스트 잉게 비트의 실화를 바탕으로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직후까지의 독일 사회를 다루고 있다. 영화는 긴 시간을 통해 전개되지만 스토리는 짜임새가 있어 눈을 떼지 못할 정도다. 언제나 논란을 몰고 다니는 '양철북'의 감독 슐뢴도르프의 영화에 대한 강력한 흡입력을 다시 한번 확인 할 수 있다.

1970년대 동과 서로 갈린 독일. 새로운 세상의 주인공이 되겠다는 리타(비비아나 베글라우)는 친구들과 테러운동에 참여한다. 은행강도, 폭탄테러를 감행하던 리타 일행은 애인인 앤디의 탈옥을 돕던 중 변호사를 살해하면서 쫓기는 처지가 된다. 그들은 동독의 비밀요원의 도움을 받아 프랑스 파리로 피신한다. 그 가운데 리타는 세상을 바꾸기엔 테러가 무력하다는 것과 앤디의 사랑이 멀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리타는 자신의 신분을 알아차린 현지 경찰을 총으로 죽이고, 더 이상 잃을 것도 숨을 곳도 없어 동독측의 도움으로 다른 이름과 신분으로 살아간다. 그곳에서 평범한 아가씨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지만, 감춰둔 과거는 그녀의 삶을 위협한다. 이에 리타는 또 한번 다른 곳으로 옮겨 다른 사람으로 위장하고 살아간다. 그녀는 물리학도 요헨과 사랑에도 빠지지만, 과거는 새로운 인생을 살기에는 너무나도 버겁다.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까지 무너져 이젠 동�서독 어디에도 머물 곳이 없게 된다. 리타는 한 때 가장 치열하게 세상을 사랑했다는 이유로, 영원히 마음대로 누군가를 사랑할 수도, 사랑 받을 수도 없게 된 것이다.

이 영화의 압권은 격정적인 인물의 삶을 다루면서도 객관적이고 담담한 시선을 유지한 것이다. 뉴스를 통해 앤디의 죽음 접한 리타가 슬픔을 날려버리려는 듯 더욱 쾌활하게 춤을 추는 장면이나, 요헨에게 과거를 고백하는 대목에서 충격을 주체하지 못하는 요헨이 소리를 질러대는 동안 묵묵히 바라보기만 하는 그녀의 시선은 눈물조차 흘릴 수 없는 비극을 보여준다. 또한 마지막 장면인 검문소를 통과하는 리타가 총에 맞아 힘없이 쓰러지는 뒷모습은 감독 특유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장면으로, 관객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이 영화는 서울 광화문 시네큐브에서만 단관 개봉한다.

임채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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