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능력 충분 채무상환 문제없어 "나랏돈 안 빌린다"


유럽의 대표적인 국영 통신사업자인 도이체 텔레콤은 외견상 프랑스 텔레콤과 공통점이 너무 많다.

국가가 대주주인데다 부채 규모도 각각 640억 유로와 700억 유로의 수준으로 엇비슷하다. 특히 두 회사의 부채 증가는 자산 가치가 고평가 됐던 1999년~2001년 시기에 기존의 독점적 지위를 이용, 무리하게 추진한 외국기업 인수 등의 사업확장에서 기인하고 있다는 점에서 너무 흡사하다.

그러나 최근 도이체 텔레콤이 보여준 위기관리 방식은 프랑스 텔레콤과 많은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17일 프랑스 경제신문 레제코에 따르면 프랑스 텔레콤의 경우, 티에르 브레통 신임회장이 정부의 강력한 재정 지원 속에 해외사업체 매각, 투자비삭감, 인력 감축 등의 방법으로 부채청산을 계획하고 있는 반면, 도이체 텔레콤은 투자가들의 비난에도 아랑곳 않고 기존의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국가로부터 아무런 구제금융도 받지 않았고, 소유부동산을 처분한 것 외에는 아무런 외국 자회사도 처분하지 않았다.

다만, 도이체 텔레콤은 지금부터 오는 2005년까지 단계적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해 국내외의 전체 직원 25만6000명의 17%인 4만3000명을 줄이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구조조정대상은 주로 유선 전화사업 부문인 T컴(Com)의 직원들로, 현재 독일 내에서 4만2500명, 외국 자회사에서 1만2200명 등 5만4000명이 구조 조정 대상이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1만1000명이 새로 고용돼 당초의 구조조정 목표치인 4만3000명을 맞추겠다는 계획이다.

도이체 텔레콤이 카이우웨 리케 신임 회장의 취임이후에도 인적 구조조정 외에 획기적인 자구책을 내놓지 않는 이유는 충분한 재정 능력이 있다는 판단에서다. 우선 증권시장에서 도이체 텔레콤의 자산가치는 프랑스 텔레콤 보다 거의 2배나 높은데다 현금유동성이 충분한 편이다. 경상 흑자 대비 부채 비율이 `4' 로서, 기업의 투자신용도가 거의 정크본드 수준으로 떨어진 프랑스 텔레콤의 `5'에 비해 훨씬 양호한 편이다.

따라서 도이체 텔레콤은 국가나 금융기관으로부터 추가 자금 지원 없이도 버틸 수 있었으며, 외국의 자회사에 대한 매각도 고려치 않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투자 자문 전문회사인 리먼 브라더스에 따르면, 도이체 텔레콤은 비록 느리지만 확실하게 채무상환을 예정대로 이행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난해부터 줄기 시작한 도이체 텔레콤의 부채규모는 지난해말 625억으로 감소된 것으로 추산되며, 올 연말에는 550억유로로, 내년말 이후에는 500억 유로 이하로 계속 떨어져 경상 흑자 대비 부채 비율이 투자적격 수치인 `3'미만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는 설명이다. 또 한가지, 도이체 텔레콤이 오는 2005년말까지 290억 유로의 채무를 상환해야 한다고는 하지만, 채무지불기일이 프랑스 텔레콤 처럼 심각한 수준으로 촉박하지 않은 것도 도이체 텔레콤의 입지를 자유롭게 해주고 있다.

도이체 텔레콤의 채무상환 자신감은 무엇보다도 돈찍는 기계나 다름없는 이동통신 사업의 고수익에서 비롯된다. 도이체 텔레콤은 이통사업에서 지난해 170억 유로의 경상흑자를 올려 투자지출비 70억과 각종 세금, 채무 이자 등을 제하고도 54억 유로의 이익을 거뒀다. 또한 최근 제3자에게 매각키로 결정한 케이블통신망과 보유부동산가격을 포함하면 도이체 텔레콤의 채무상환 목표는 쉽게 달성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도이체 텔레콤이 연간 목표로 세운 10억~15억 경영비용 절감을 합하면 채무상환은 문제없다는 것이 회사측의 복안이다.

그러나 도이체 텔레콤의 채무상환계획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대부분의 통신사업자들이 소득의 약 5%를 연구개발비로 투입하고 있고, 경쟁사인 영국의 보다폰 등이 3세대통신(UMTS)사업분야에 대한 투자를 본격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와중에 도이체 텔레콤의 채무 상환압박이 자신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파리=성일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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