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클린턴의 해밀턴 칼리지 영문학과 조교수인 다나 루치아노 박사는 지난 2년간 이사를 세 번 다녔지만, 그때마다 낡아 쓸모 없게 된 컴퓨터를 버리지 않았다.

하드웨어 일부는 마침내 지하실로 들어갔고, 연구자료가 담긴 애플 파워북(PowerBook)을 비롯한 나머지 기기는 여전히 그녀의 사무실 여기저기에 놓여 있다. 파워북의 저장장치가 고장나면서 지난 수년간 넣어뒀던 데이터를 백업받을 수 없는 상태가 되버렸기 때문에, 필요시 자료를 찾아보기 위한 참고용으로만 놔두고 있다.

종종 디지털로 표현되는 전자시대는 업그레이드를 하고난 다음에 고물이 된 컴퓨터 하드웨어를 남겨놓는다. 나이가 40세 이하인 경우, 학기말 리포트나 대학 신입생 시절 바르셀로나에서 온 옛 애인의 편지 등으로 가득 찬 박스를 보관하는 사람은 이제 없다. 구식 하드 드라이브나 3.5인치 디스켓에 담긴 워드 문서와 이메일 메시지가 이를 대신한다. 좀 심한 경우, 먼지투성이의 5.25인치 플로피에 담아 서랍에 보관하는 사람도 있다.

전에 쓰던 하드웨어에 담긴 정보가 마우스 클릭 한번으로 쉽게 새 장치로 옮겨진다면 이상적이겠지만, 현실은 좀 다르다. 새로운 소프트웨어는 기존의 제품과 호환이 되지 않는다. 구식 케이블은 최신 장치에 연결할 수 없다. 어제의 혁명적인 저장장치(디스켓)는 오늘날 문을 열어놓기 위해 문틈에 밀어 넣는 받침대 정도로 전락했다.

이전 데이터를 전부 새 컴퓨터로 옮기는 것이 불가능하진 않다 해도 상당히 어려워 보이기 때문에 고민만 하다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또다른 사람들은 정이 들었다는 이유로 그냥 컴퓨터를 보관해놓고 거의 잊고 지낸다.

루치아노 박사의 파트너인 제니퍼 스텀(32)도 오래된 PC와 박스들을 모은다. 그녀는 오래된 기계에 대해 감정적인 애착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나중에 뭐가 필요하게 될지 모르는 일이니까요"

스텀은 11년전에 대학을 졸업했으며 수많은 LP 레코드판처럼 3.25인치 디스켓에 논문들을 담아 쌓아두고 있다. "이사를 다닐 때마다 디스켓들을 들고 다닙니다" 이제 더이상 드라이브가 딸린 PC를 쓰지 않는데도 말이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죠"

홈 PC에 저장된 데이터는 오래된 학기말 리포트와 편지 뿐만은 아니다. 사람들이 주로 많이 저장해 두는 것은 MP3 파일과 디지털 사진들이다. 그러나 저장매체와 파일포맷이 빨리 바뀌기 때문에, 현재 저장한 파일들이 언젠가는 재생되지 못하거나 화면으로 볼 수 없는 날이 올 수 있다.

데이터를 보존할 수 있는 한 가지 해결방법으로 '마이그레이션(migration)'이 있는데, 구식 기술이 적용된 디지털정보를 새 기술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바꿔주는 다양한 방법을 지칭하는 전문용어다.

마이그레이션은 구형 하드 드라이브의 데이터를 신형 드라이브로 옮기는 것처럼 간단할 수도 있고, 5.25인치 플로피에 담긴 오래된 워드파일을 살려내는 것처럼 어려울 수도 있다. 같은 종류의 저장장치간에 파일은 쉽게 옮길 수 있지만, 그것으로 다 끝난 것은 아니다. 이전 버전으로 만들어진 워드문서는 일반적으로 파일포맷을 변경하지 않고는 새 프로그램에서 읽을 수 없다.

'애스크 닥터 테크(Ask Dr. Tech)'은 전화상담을 통해 데이터 마이그레이션을 도와주는 회사다. 샌프란시스코에 자리잡고 전국적으로 컴퓨터 기술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 회사의 부사장인 짐 포즈다씨는 구형 하드웨어의 데이터를 새 PC로 옮기려는 전화가 5~10 퍼센트 가량을 차지한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고객들은 데이터를 하드에서 하드로 옮기려고 하며 일년에 89달러면 무제한 전화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포즈다씨가 말한다. 현재 어떤 OS를 사용하는가에 따라 일의 난이도가 결정된다. 윈도XP에는 데이터 마이그레이션 툴이 있으나, 그 이전의 윈도는 그렇지 않다. 일부 파일들은 디스켓, 집(Zip) 디스크, 또는 CD롬으로 안전하게 옮겨질 수 있다.

포즈다씨에 의하면 오래된 저장장치, 예를 들면 플로피 디스켓의 데이터를 새 저장장치로 옮겨달라는 요청은 드물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과정이 실효성이 없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신 그들은 오래된 기계장치를 보관하고 데이터를 읽을 필요가 있을 때마다 부팅을 시킨다. 박물관식으로 오래된 문서를 읽을 수 있는 고물장비를 쌓아놓는 것이다.

루치아노박사와 스텀은 몇 시간에 걸쳐 하드웨어로부터 파일들을 옮겨담으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그래도 보람있는 시도였죠"

어떤 사람들은 고물 컴퓨터를 보관하면서 일종의 향수를 느낀다. 올 57세의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짐 바움바흐는 7대의 컴퓨터를 사용하면서도, 오래된 컴퓨터 몇 개를 장식용으로 사무실에 두고 있다.

"관계를 맺는 셈입니다. 당신의 얘기를 하는 거나 마찬가지죠. 여러 가지를 써넣고,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또 인생의 온갖 이야기들을 투영시키는 겁니다. 사람들은 새로운 장치를 산다고 이전 것을 버리려 하진 않지요. 여전히 잘 동작하고 디스크에 뭐가 들어있는지도 알 수 없으니까요" 바움바흐의 말이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데이터를 하나의 하드웨어에 저장하길 선호하지만 데이터를 옮기는 과정에 겁을 먹는다. 작가이며 편집장인 탐 푸트냄씨는 몇 개월 전 새로운 매킨토시를 구입했으나, 이메일은 여전히 남편의 이전 컴퓨터로 받는다.

신형 하드웨어에서 구식 하드웨어가 동작하는 것과 같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에뮬레이션(emulation)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이들도 있다. 예를 들어 에뮬레이터를 사용하면 도스(DOS) 상에서 동작하는 워드 퍼펙트(Word Perfect) 2.0 문서를 만들 수 있고, 이 문서는 도스 이후에 나온 OS를 탑재한 하드웨어에서도 읽혀진다.

루이스빌 매거진(Louisville Magazine)의 발행인인 단 크러처는 최근 버니(Bernie)라는 에뮬레이션 소프트웨어를 알고 나서, 2대의 오래된 애플 II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버니를 알고부터 구식 애플에 담긴 자료를 모두 복사할 수 있게 됐습니다. 구식이라고 묵혀둘 이유는 전혀 없죠. 낡았지만 정이 든 컴퓨터를 포기한다는 건 안 될 말이죠." 크러처의 말이다.

3년 전, 푸트냄(46)은 그녀의 델(Dell) 노트북에 물 한잔을 엎질렀다. 1년이 좀 지나서, 그만 노트북이 고장 났고, 내부 자료도 되살릴 방도가 없어졌다. "이전 파일을 액세스할 길이 없었죠." 집필 중이던 원고들이 노트북과 함께 사라졌다는 것을 뒤늦게 발견하고 매우 혼란스러웠지만, 이내 냉정을 되찾았다.

실리콘밸리에 있는 작은 의료장비 회사 기술자로 근무하는 줄리 하비씨는 여전히 1997년형 펜티엄 컴퓨터를 사용한다. 대학시절 자료, 개인 재정현황, 사진이 들어있다. 애착이 가는 것은 대학원 졸업논문을 위해 모아뒀던 자료들이다. 하비는 CD롬에 데이터를 복사하고 하드드라이브 공간을 늘릴 계획이라 말한다. 하지만 그녀가 파일을 CD로 옮기더라도 앞으로 한 10년이 지나면 다른 매체가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를 잡을 것이므로, 귀중한 CD안의 데이터는 읽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케이티 하프너 www.nytimes.com/2003/02/13/technology/circuits/13arch.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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