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길 문화레저부장

만나는 사람마다 힘들다고 말한다. 어떤 이는 IMF 때보다 더 힘들어졌다고 말한다. 경기전망에 빨간 불이 켜진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고, 미국과 이라크 사이의 전쟁이 초를 다투니 불안 심리는 극도에 달해 있다. 더구나 불확실한 미래는 우리를 더욱 힘들게 한다.

요즘 같으면 누군들 힘들어 죽겠다고 힘주어 말해도 쉽게 동정을 사지 못한다. 대표적으로 벤처기업 CEO들이 그렇다.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에게 월급은 줘야겠고, 개발에 대한 투자도 계속 입을 벌리고 있다. 어렵게 만든 제품들은 기업들의 설비 투자 축소와 일반인들의 소비 심리 위축으로 팔리지 않고, 게다가 돈을 빌릴 구멍조차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벤처기업 CEO들을 정말 슬프게 하는 일은 그동안 피와 땀을 함께 쏟았던 직원들이 하나둘 곁을 떠난다는 사실이다. 끝없는 주가 하락, 코스닥 등록요건의 강화는 스톡옵션이 실현될 날을 기다리며 낮은 연봉과 밤샘 개발을 견뎌왔던 벤처기업 직원들을 실망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벤처기업 CEO들은 직원들이 회사를 떠나는 이유는 회사 비전, 연봉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 것 같다. 사실 벤처기업 중에는 평균 이직률을 훨씬 하회하는 곳들이 있다. 그런 회사가 갖고 있는 장점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벤처 CEO들은 '기업문화'라고 말하고 있다.

낡은 청바지, 염색 머리, 슬리퍼를 아무렇게나 꿰어 신고 사무실을 활보하는 사람들, 투자회사를 찾아가거나 고객을 만날 때조차 넥타이가 중요치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리고 필요하다 싶으면 침낭을 사무실에 깔고 밤샘하는 사람들. 우리가 알고 있는 벤처기업 직원들의 모습이고, 이것이 벤처기업 문화였다. 하지만 CEO들이 필요하다고 깨닫기 시작한 기업문화는 이런 것이 아니었다.

"정말 나 잘 났다고 목소리를 높이는데 신물이 난다. 팀내에선 개인적인 목소리가 높고, 팀간에는 전혀 토론이 안되고 있다. 그러면서도 열심히 하면 되는 줄 아는데, 마치 개미들을 보는 것 같았다." 한 CEO의 독백은 벤처기업은 그동안 잘못된 기업문화를 가꿔왔고, 결국 상처를 입거나 동료애를 찾지 못한 이들은 하나둘 떠났다는 얘기로 이어졌다.

그래서인지 벤처기업마다 새로운 기업문화를 가꾸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한 기업은 매달 책을 한권씩 선정, 직원 모두에게 나눠주고 토론회를 가진다. 다른 사람의 생각과 의견을 존중하는 토론문화를 가꾸고, 땀보다는 머리 회전력을 높이겠다는 것이 이 회사 CEO의 생각이다.

1990년대 초반 세계적으로 학습조직(Learning Organization) 열풍이 분 적이 있다. MIT의 피터 센지(Peter M. Senge) 교수가 주창한 이 이론은 직장은 공통의 비전을 향해 끊임없이 함께 배워나가는 학습조직이 되어야 한다는 게 요지이다. 조직원간의 대화, 개인적인 수련, 선입관념 배제 등 어쩌면 벤처기업이 현재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론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10년 전 풍미했던 이 이론을 서가에서 뽑아드는 CEO들이 늘고 있다.

또 다른 회사는 매달 한번씩 볼링 대회나 가벼운 운동회를 갖고 뒤풀이로 맥주파티를 연다. 때로는 모든 직원이 함께 영화나 음악회를 보러 간다. 일 못지 않게 동료애를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다. 아울러 옥상 정원을 만들거나 휴게실 작은 공간이지만 나무를 심어 직원들에 대한 '어메니티(Amenity)'를 높이는 곳도 있다.

기업문화가 어려울 때 힘을 발휘하는 사실은 오랜 기업 역사 속에서 익히 보아왔다. 한 기업을 움직이려면 자본과 인력, 그리고 문화도 필요한 것이다. 이를 뒤늦게 깨닫는 벤처기업들이 새로운 문화로 이 힘든 겨울을 넘기고 봄날을 맞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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