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길호 경제부장

이른바 `개혁의 계절'이다. 정치분야에서 재벌 언론 조세 노동 문화등 사회 각분야에 걸쳐 개혁바람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과거와 다른 점이 있다면 개혁이란 기치아래 항상 따라 붙던 `사정'이란 단어가 `인적 청산'으로 바뀐 정도다.

그동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제도적 개혁만이 아니라 주도세력의 교체 내지는 청산작업이 거론돼 왔다. 순수 민간정부가 들어선후 세 번째가 될 노무현정권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전철을 밟을 것 같다.

지난 93년 정치적 `결단'을 통해 탄생한 김영삼 문민정부는 군사정부시절의 적폐를 한풀이하듯 ,임기내내 `중단 없는 개혁'을 외치다 막을 내렸다. 당시 개혁은 군사작전을 방불하듯 밀실에서 은밀한 작업을 통해 현실화되곤 했다.

금융실명제와 정부조직 개편 등이 그렇고 부동산 실명제와 세계화전략도 어느날 느닷없이 대통령의 말한마디에 실행에 옮겨졌다.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를 바닥에 깔고 등장한 국민의 정부는 공공 노사 금융 기업 등 4대 부문에 대한 철저한 개혁을 단행했다. 국민의 정부가 부르짖은 개혁은 초기엔 개국이래 초유의 `환란'이라는 국가적 위기속에서 힘을 받았으나 임기 중반을 넘기면서 `피로 증후군'에 걸려 발목이 잡혔다.

더욱이 임기 막바지인 지난해 초반부터는 부패스캔들이 연이어 꼬리를 물고 터져 나와 레임덕을 더욱 앞당기고, 국가대사에 대한 추진력을 잃는 원인이 됐다.

이제 노무현 정부가 정권인수에 나서고 있다. 선거과정에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끝에 극적으로 탄생하게 된 노무현정부는 탄생과정에서 보여준 `연출 없는' 드라마처럼 과거 어느 정권에 비해서도 강한 개혁적 색채를 내보이고 있다. 현실과 이상사이의 스펙트럼도 그만큼 넓은 편이다.

그러다 보니 개혁을 시작도 하기 전에 사회곳곳에 내재된 반발력 또한 매우 강한게 분명하고,이런 구조는 결국 불필요한 유언비어나 온갖 억측을 생산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재벌개혁을 함에 있어 `어느 재벌이 타깃'이라느니 `언론개혁이 어느 순간 터질 것'이라느니 하는 것에서부터 국가 CIO가 물건너 갔느니, 행정수도가 어디로 정해졌느니 하는 추측성 소문들이 흉흉히 나돌아 자칫하다간 개혁의도를 손상시킬 위험을 안고 있다.

그러나 개혁은 조용히 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개혁의 대상으로부터 예상되는 반발과 방어도 사전에 방지할 수있고 소기의 의도를 보다 손쉽게 달성할 수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두 번의 경험에서 보듯 한편의 대하드라마처럼 소리만 요란하거나 관객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개혁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군사정부 시절부터 정풍이니 유신이니 떠들어댔지만 그 결과는 위정자들이 쳐놓은 그물에 다름 아니었다. 결과를 미리 상정한 가운데 시작하는 개혁은 그 자체로 이미 개혁이 될 수없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직인수위 출범 초기 인수위 내부 또는 주변부에서 터져 나온 `일갈'성 목소리는 자성해야 하는 대목이 아닐 수없다.

다음으로 개혁은 반드시 주체세력을 갖춰야 하며 이를 지지해줄 국민적 호응이 절대적이다. 국민의 정부말기 개혁 피로현상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안다면 그 중요성을 달리 언급할 필요가 없다.

최근 노 당선자측이 개혁에 대해 `장기적'이며 `단계적',그리고 `자율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지침을 밝힌 일은 무척 다행스런 일이다.

그동안의 경험에서 볼 때 개혁의 대상이 되어야 할 세력들이 서로 뭉치거나 개혁의 칼날을 엉뚱한 곳으로 돌리려는 시도가 벌어지고 있는 점을 염려해서 하는 말이다.

요즘 정권을 인수하기도 전에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온갖 난제들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매우 불안하다는 점도 눈여겨 둬야 할 대목이다.

이제는 `泰山鳴動(태산명동)에 鼠一匹(서일필)'이 되지 않으려면 문제를 찾아내 펼쳐놓는 일보다는 맥을 잡아 한 줄에 꿰는 일이 더욱 더 중요하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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