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의 폭발기'가 도래하면서 우리 전자산업도 반도체ㆍ통신ㆍ컴퓨터ㆍ가전 등 각 분야의 기술을 결합한 디지털 컨버전스 현상이 가속화될 것이다."(LG전자 구자홍 회장)

"홈ㆍ모바일ㆍ오피스 네트워크 제품간의 컨버전스를 통해 무한자유의 디지털 세계를 창조할 수 있게 됐다."(진대제 삼성전자 사장)

IT전문가들은 21세기에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로 `디지털 컨버전스'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다양한 제품이나 기술, 콘텐츠의 융합 또는 통합을 의미하는 컨버전스는 이제 개념도입의 단계를 넘어서 새로운 단말기와 서비스, 시장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방송과 게임, 통신, 인터넷 등 정보의 컨버전스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고 정보기기와 네트워크, 컴퓨팅 기기, 부품 등 거의 모든 IT분야에서 기능의 통합이 이뤄지는 추세다.

영국의 코콤사는 휴대전화와 화상회의, PDA, MP3 기능을 전자수첩 크기의 단말기에 내장한 컨버전스형 제품을 선보였으며 HP와 IBM은 사무실에서는 PC로, 이동 중에는 노트북이나 PDA로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한 카멜레온PC를 내놓았다. 국내에서도 휴대폰에 디지털 카메라를 부착한 카메라폰이 지난해 최고의 히트상품으로 떠올랐고 PDA에 전화와 MP3플레이어 기능까지 장착한 제품이 잇달아 등장하고 있다.

오랫동안 지속돼 왔던 산업간의 구분도 컨버전스의 영향으로 급속히 무너지고 있다. 광대역 네트워크의 발전으로 방송을 통해서 전달됐던 고화질 동영상 정보가 통신망을 통해 전파되고 있으며 방송을 비롯해 게임과 정보서비스 등 다양한 데이터가 하나의 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추세다. 지난해 서비스를 개시한 디지털위성방송이나 서비스를 준비중인 IMT-2000 등이 대표적인 예. 이외에 인터넷을 통해 영상과 오디오 정보를 제공하는 인터넷 TV나 라디오 등이 대중화된 지도 오래다.

모바일 결제 시장이 급속히 팽창해감에 따라 금융과 통신의 영역구분도 모호해지고 있다. 이제 휴대폰만으로도 결제나 자금이체 등 다양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고 일일이 할인쿠폰을 오려 갖고 다니지 않아도 손쉽게 할인혜택을 받을 수 있다. 창구 없는 인터넷 전용은행이나 인터넷 전용 증권회사는 이미 오래 전에 시장에서 자리를 잡았다.

단말기 역시 이제 하나의 기능만 가지고는 설 땅이 없다. 휴대폰은 게임기나 노래방기기 역할은 기본이고 디지털카메라와 MP3플레이어 기능 정도는 갖고 있어야 최신 기종이라고 할 수 있다. 게임기 역시 단순히 게임만 즐기는 도구가 아니다. 현장감 있는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물론 정보관리와 지능형 단말기 역할을 톡톡히 한다. 이외에 디지털TV, PC, 셋톱박스, DVD플레이어 등 다양한 디지털 장비가 원래의 고유한 기능 외에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 다기능 단말기로 진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같은 컨버전스 환경을 반영, `미디어 용광로'(Midia Furnace)란 말까지 등장했다. TV와 라디오, PC 등 가정에서 사용하는 수많은 디지털 기기는 물론이고 시계, 거울, 소파, 침대, 책상 등 모든 기기를 용광로처럼 하나의 네트워크에 녹여 콘텐츠를 저장하거나 전달할 수 있는 지능형 미디어로 개조하는 것이다. 일본 소니와 미국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기업들은 이같은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오래 전부터 관련 제품과 서비스를 준비해왔다.

단말기 통합추세에 발맞춰 단말기 칩 부품들을 하나의 칩에 집적하고 칩셋과 소프트웨어 등을 하나로 통합하는 `시스템온칩'(SoC) 기술 개발도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

네트워크 분야 역시 광대역화와 함께 컨버전스가 급속도로 진전되고 있다. 음성과 데이터망의 구분이 없어지고 있으며 유선과 무선망, 통신과 방송망의 통합이 급진전되고 있다. 이에 따라 휴대폰이나 PDA 하나로 언제 어디서나 전화나 동영상, 데이터 등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시스템과 분야의 올해 최대 이슈도 컨버전스다. 그동안 별도로 구축해 관리해왔던 시스템을 하나로 통합하고 한번의 로그인으로 모든 서비스를 한 화면에서 이용할 수 있는 기술과 솔루션이 각광을 받고 있으며 관련 프로젝트로 잇달아 추진되고 있다.

이처럼 IT 각 분야에서 컨버전스와 통합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지만 아직 완성된 모습을 그리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각 분야별로 어떤 제품이 킬러애플리케이션이 될지 어떤 제품이 안방과 회사, 유선과 무선을 하나로 연결하는 허브가 될지 아직 확정된 것이 없다는 것이다. 또 어떤 제품과 기술방식이 표준이 될지도 미지수다. 안방의 정보기기를 한 데 묶는 홈네트워크 허브는 게임기나 셋톱박스를 기반으로 한 홈 멀티미디어서버와 PC를 기반으로 한 홈 인포메이션서버, 정보가전 제품에서 진화한 홈 오토메이션 서버 등이 각각 주도권을 놓고 각축을 벌이고 있다.

본격적인 컨버전스 시대의 막을 열 킬러애플리케이션이 무엇이 될지에 대한 논의도 뜨겁다. 모바일 결제 서비스나 카 내비게이션이 멀지 않은 미래의 킬러 애플리케이션으로 점쳐지기도 하고 광대역 네트워크를 활용한 3D 게임이 새로운 IT환경을 열어갈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도 있다.

이처럼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는 점 때문에 대부분의 기업들이 미래의 IT환경이 컨버전스 환경이 될 것이라는 데에는 모두 동의하지만 미래의 환경을 준비하고 대비하는 방법은 조금씩 차이가 있다. 미래에 어떤 사업과 제품, 비즈니스 모델이 떠오르고 이용자들의 생활이나 문화가 어떤 변화를 겪게 될지도 아직 불확실하기만 하다.

세계 최고의 IT인프라를 보유하고 있고 전 국민의 대부분이 유무선 인터넷망에 연결돼 있는 `인터넷 선진국`의 강점을 살려 앞으로 `IT컨버전스 선진국'으로 자리 매김 하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컨버전스 시대에는 전혀 다른 분야의 다양한 기능들이 서로 결합되기 때문에 경쟁의 범위가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확대된다. 가전업체가 게임업체와 경쟁하고 통신업체가 방송국과 같은 시장을 놓고 대결을 벌이게 된다. 또 온라인 게임이나 금융서비스가 오프라인 테마파크나 통신의 경쟁자로 떠오를 수도 있다. 이처럼 전 영역에서 펼쳐지는 경쟁에 대비해 국내업체들은 글로벌 표준과 기술발전 추세에 신속히 대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특히 글로벌 기업들간의 합종연횡으로 표준이 정해지는 만큼 표준 추진동향 등을 면밀히 검토하고 발전단계에 맞게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와 함께 기술의 발전단계와 소비자의 요구를 정확히 파악한 상품이나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 기업들끼리 공동으로 사업을 추진하거나 연합해 새로운 시장이나 수익모델을 창출하는 시도가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막연한 예측만으로 제휴를 체결하는 것을 지양하고 실질적인 성과를 끌어낼 수 있도록 다양한 업종에서 폭넓은 제휴가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우선 CEO나 CIO 등 기업의 책임자들이 먼저 통합마인드로 무장하지 않으면 안된다. 현재 영위하는 사업의 영역이나 분야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분야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폭넓은 정보를 수집하고 의사 결정을 할 때도 컨버전스 시장을 염두에 둬야 하는 것이다. 지금 디지털카메라 시장은 그동안 경쟁상품으로 꼽아왔던 필름형 카메라나 디지털캠코더가 아니라 카메라가 부착된 휴대폰과 싸우게 됐다. 또 방송의 위협이 될 것이라고 예측됐던 케이블방송은 오히려 공중파 방송의 새로운 수입원으로 부상하고 있다.

컨버전스 시대의 미래를 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예측하기 위해서는 전문성과 다양성을 함께 가진 인재를 키워나가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삼성SDS 김홍기 사장은 "예전에는 약간의 지식에 뛰어난 전문성을 보유한 (ㅗ)자형 인재가 대우받았지만 앞으로는 지식과 전문성을 함께 가진 십자형(+) 인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전문성의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다양한 분야의 컨버전스가 진전됨에 따라 폭넓은 지식의 기반 위에 전문성을 갖춘 사람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

여기에다 우리의 강점인 초고속 IT인프라를 접목시킨다면 세계 최고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만들 수도 있다는 게 IT인들의 말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에서도 기업들이 다양한 시도와 실험을 할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열어주고 장려해야 할 것이다.

장윤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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