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산업은 흔히 장치 산업으로 불린다. 대규모의 설비투자를 단행해야 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 그만큼 사업의 위험성이 매우 높다.

1개의 첨단 반도체 일관가공생산라인(FAB)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2조원 이상의 자금이 소요된다. 2조원이 넘는 투자를 통해 2∼3년 내에 손익분기점에 도달하지 못하면 큰 위기에 처하게 된다. 특히 D램은 시장의 부침현상이 심해 불황기에 버틸 수 있는 자금의 여력도 필요하게 된다. 다른 어떤 산업보다 위험의 요소가 많이 도사리고 있다.

D램의 경우 수시로 가격이 상승과 하락을 거듭하면서 신제품이 출시된 지 1∼2년 사이에 가격은 큰 폭으로 떨어진다. 64Mb SD램의 경우 1997년 초 60달러에 출시됐지만 이듬해에는 20달러로, 99년에는 10달러대로 떨어졌고 최근에는 1.2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이같은 특성 때문에 반도체를 흔히 투자집약적이고 적기의 투자가 필요한 타이밍 산업이라고 부른다.

한국 반도체 산업은 초기 부존자원과 기술이 절대적으로 열악한 상태에서 모든 위험요소를 안고 D램으로부터 출발, 세계 시장제패에 성공했다.

◇황무지에서 황금을 캐다

한국반도체산업은 1965년 미국 코미(Commy)사가 코미반도체를 합작형태로 설립, 트랜지스터를 조립생산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1966년에는 외자도입법 제정을 계기로 페어차일드ㆍ시스네틱스ㆍ모토롤러 등이 직접 진출해 웨이퍼를 단순 가공해 이를 다시 자사에 수출하는 사업을 펼쳤다.

1968년에는 아남산업이 국내 자본으로 반도체 조립사업에 진출했고 이어 1970년 금성반도체, 1974년에는 한국반도체(현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의 전신) 등이 가세, 미국산 반도체를 조립해 전량 수출했다. 한국전자가 1979년에 트랜지스터ㆍ다이오드 등 디스크리트(개별소자) 등을 생산했고 1980년에는 금성반도체가 뒤를 이었다.

한국의 반도체 산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80년대이다. 1981년 당시 상공부가 `반도체공업육성계획'을 수립, 반도체 산업육성에 본격 나섰다.

그동안 조립과 디스크리트 생산을 통해 축적한 노하우와 고학력의 인적자원을 활용해 산업을 적극 육성하겠다는 대기업들의 전략이 수립된 것이 이 때부터이다. 1983년 2월 당시 삼성그룹의 이병철 회장은 소위 `도쿄구상'으로 불리는 반도체 산업진출을 선포했고 같은 해 12월 164Kb D램을 국산화해 수출에 착수했다.

1986년에는 현대전자(하이닉스반도체의 전신)가 D램 사업에 진출했다. 그러나 국내 업체들은 미국과 일본보다 늦게 시장에 진출한 만큼 난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국내에서 64Kb D램이 상용화될 때 미국과 일본에서는 256Kb 제품을 내세워 국내업체들의 시장참여를 더욱 어렵게 했다.

삼성전자는 1984년 256Kb D램을, 1986년에는 1Mb D램을 각각 개발했지만 그때까지 이익을 전혀 내지 못했다. 삼성전자는 4Mb D램을 개발한 1988년 3200억원의 흑자를 달성했다. 1974년 사업진출한 후 1987년까지의 13년 간의 누적적자가 1400억원이었지만 이를 단 한번에 만회한 것이다. 모든 위험을 돌파하고 세계 시장에서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64Mb D램부터 4Gb 제품까지 세계 최초로 개발하면서 11년 연속 세계 D램 시장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세계1위 어떻게 가능했나

우리나라가 D램분야에서 세계 1위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은 과감한 투자ㆍ인력의 집중ㆍ외부의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으로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1990년대 D램 경쟁업체인 일본이 시장전망의 불투명과 미국과의 반도체 분쟁으로 투자를 미루고 있을 때 우리나라는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했다. D램 업체 중에서는 200㎜웨이퍼 FAB을 세계 최초로 구축했다. 또 당시 미국과 일본 등에서 유명 반도체 업체에 근무하고 있던 핵심 엔지니어들이 속속 귀국, 한국의 D램 신화를 창출했다.

삼성전자의 메모리사업부 황창규 사장, 시스템LSI사업부 임형규 사장, 디지털미디어사업부 진대제 사장, 하이닉스반도체의 허염 부사장, 페어차일드코리아반도체의 김덕중 사장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또 반도체는 우리나라 사회 및 경제여건과 잘 맞는다는 분석도 있다.

원로학자인 고려대 민석기 교수는 "인적자원의 고급화를 핵심적인 대외경쟁요소로 삼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경제여건과 국민성에 최적인 산업이 반도체"라고 말한다.

대외여건도 일부 유리하게 작용했다. 1980년대 말부터 미국은 일본과 D램 분쟁을 벌이면서 일본에 대한 견제로 한국을 적극 활용했다.

이와 함께 반도체 산업 초기부터 정부의 제도적인 지원이 발전의 촉매역할을 했다. 1981년 상공부가 반도체 공업육성법을 제정, 정책적인 뒷받침을 했다.

김홍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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