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람에서 무덤까지' 디지털이 지배한다


1952년 5월21일 IBM이 세계 최초로 출시한 캐비닛 크기의 테이프스토리지(모델명 726)의 저장용량은 오늘날의 플로피 디스크 1장에 해당하는 1.4메가바이트(MB)에 불과했다.

이로부터 꼭 50년이 지난 2002년 5월21일 IBM은 호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1테라바이트(TB) 테이프 스토리지 출시계획을 발표했다. 크기가 4×5×1인치에 불과한 1TB 카트리지 1개는 한 사람이 일생동안 자신의 뇌에 저장할 수 있는 데이터 량의 8000배를 담을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달 2일 `당신의 일생을 디지털로 보관하겠습니다. 구글(Google)로 검색해 꺼내 보세요'라는 `마이라이프비츠'(MyLifeBits)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인간이 한 평생 살아가면서 남기는 무수한 사진, 비디오테이프, 통화녹음, 거래기록 등을 디지털화해 보관했다가 언제든 꺼내 삶을 재생한다는 무서운 계획이다.

20세기 최고의 미디어 이론가인 마셜 맥루헌이 30여년 전 `미디어는 메시지다'라고 주장했을 때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지만 디지털 혁명의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우리가 창조한 미디어가 결국 우리를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인다.

학자들은 21세기 인간의 삶이 총체적으로 디지털 환경에 에워싸여 있다고 말한다. 사이버스페이스는 그 자체로 하나의 지구이며, 가상현실은 실제적인 것보다 더욱 실제적이다. 그래서 일부 진보적 지식인들은 "이젠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삶을 함께 고려해 인생을 영위해야 한다"고 말한다.

오늘날 삶의 모든 것은 기록된다. 출생�학력�사회활동�포상�범죄기록은 물론 금융거래 내역이 `0과1'의 디지털 신호로 남는다. 이들 기록은 신용조회와 수사 등 용도가 제한돼 있지만 필요할 경우 꺼내 볼 수 있다. 세상의 곳곳에는 폐쇄회로 TV가 장착돼 있고, 머리 위에는 무수한 위성이 돌면서 지상을 촬영하고 있다. GPS위성이 전하는 위치정보는 오차범위가 수미터에 불과하다.

과거 오프라인의 가정과 공교육기관이 담당했던 사회화 과정에서 컴퓨터와 네트워크는 필수적인 교육환경으로 자리잡았다. 컴퓨터로 쓰고 읽고 배우는 게 책과 흑판보다 편하고 자연스럽다.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만나고 대화한다. 이메일과 채팅으로 왁자지껄하게 떠들면서 어울리는 게 일상이다. 동창회�동호회�반상회를 인터넷 상에서 여는 것은 이제 새로울 게 없다.

휴대폰이 널리 보급되면서 사람과 사람의 커뮤니케이션에서 공간의 제약이 완전히 사라졌다.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사람과 의사소통할 수 있게 됐고, 머지 않은 장래에는 휴대폰 창으로 얼굴을 마주보며 대화할 수 있을 전망이다.

컴퓨터바이러스�자살사이트�명예훼손�포르노�스팸메일 등 인터넷의 각종 역작용은 오프라인의 눈에 보이는 사회적 병폐 이상으로 중요하고도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작년 미 장갑차의 여중생 압사사건에 따른 촛불시위, 16대 대통령 선거의 인터넷 선거운동 등은 사이버 공간이 오프라인 공간의 액세서리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사회와 정치변혁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가상공간의 전자 민주주의, 평등주의적 유토피아 등의 구호는 더 이상 `가상'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현실세계를 바꾸는 역동적인 힘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홈네트워킹, 유무선통합, 디지털방송에 이어 미래의 디지털 기술로 꼽히는 유비쿼터스 네트워킹, 나노테크놀로지, 첨단 바이오기술 등이 일상생활에 적용되면 세상은 또 한번 엄청나게 급변할 전망이다.

벽, 찻잔, 휴지통, 도로, 가로수 등이 네트워크로 연결돼 서로 상호작용하고, 분자크기의 로봇으로 불치의 병을 고치게 된다면 어쩌면 인간의 삶을 기록하는 수준이 아니라 인간 자체를 만들고 인간의 삶을 구성할 수도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26일 미국에서 체세포 복제방법으로 탄생한 `복제인간 1호'는 디지털 기술의 가공할 가능성을 잘 말해주고 있다.

디지털 세상이 가져온 삶의 환경, 그리고 앞으로 몰고 올 변화를 보면 디지털과 인간의 삶을 구분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한다. 세상을 피해 산 속이나 무인도로 숨지 않는 한 인간은 `디지털'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디지털 혁명의 한 복판에 서 있다고 많은 학자들은 말한다.

박창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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