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초고속으로 남하 중입니다. 어떤 곳에는 첫눈이 벌써 내렸답니다. 추운 계절에는 저절로 따사로운 뭔가를 찾게 됩니다. 시린 몸은 두꺼운 코트로 감싸고 고픈 배는 따끈한 호빵과 포장마차 오뎅 국물로 채웠습니다. 그래도 뭔가 부족하군요. 사람의 온기가 그립습니다.

디지털 세상을 헤매다 보면 많은 사람들과 그저 스쳐 지나가기 일쑤입니다. 당신과 내가 같은 시간 같은 홈페이지를 보고 있어도 우리는 서로를 알지 못합니다. 가끔 커뮤니티를 통해 새로운 이들을 만나기도 하고 이메일이나 메신저를 통해 서로를 탐색하기도 합니다.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답 글을 기다리기도 하지요.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아쉽습니다. 조금 더 특별한 만남이, 조금 더 깊은 접촉이 필요합니다. 사람 온기가 느껴지는 인터넷이 그립습니다.

위키위키(WikiWiki) 사이트를 만났습니다. 대부분의 웹사이트가 혼자 돌아다니고 혼자 기록을 남기는 거라면, `위키위키'(WikiWiki) 사이트는 다릅니다. 위키위키란 간단하게 말하면 `읽기 쓰기가 가능한 웹사이트'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키위키'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위키 사이트에서는 콘텐츠를 단순히 읽는 것뿐만 아니라 직접 고치는 것이 가능합니다. 웹 사이트 관리자가 아니라도 말입니다. 누구나 와서 사이트를 만들고 콘텐츠를 편집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얘깁니다.

예를 들어 한 네티즌이 `위키위키란 읽기 쓰기가 가능한 웹 사이트'라고 웹사이트에 올린다면 다음 네티즌은 이를 `위키위키란 읽기 쓰기가 가능한 웹사이트로 1994년 워드 커닝엄에 의해 처음 개발됐다'라고 수정 보완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개개인의 생각과 지식, 느낌이 서로 만나 하나로 엮일 수 있습니다. 위키위키 사이트인 그놈한국위키(www.gnome.or.kr)에서 활동하시는 cwryu(ID)씨는 그래서 위키위키를 `함께 쓰는 메모장'이라고 간단하게 요약하시더군요. 위키위키 개발자인 워드 커닝엄은 모든 웹 페이지를 어느 누구나 쉽고 빠르게 고치도록 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합니다.

중·고등학교 때 혹시 학급 일기장을 써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학급 친구들이 공동으로 일기를 쓰는 거지요. 하루에도 몇 명씩 번갈아가며 그날의 소감·느낌·일들을 써놓는 겁니다. 대학교 때 동아리방 일기 같은 거지요. 때로는 앞에 글을 읽고 소감을 달아놓기도 하지요. 그러다 보면 한가지 얘기에서 다양한 얘기가 파생돼 나오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최초이자 최대의 위키위키 웹사이트인 노스모크(no-smok.net)도 그렇습니다. 지난 2000년 11월 처음 시작된 노스모크는 현재 약 4950개의 웹페이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각 페이지는 각각의 주제를 가지고 있지요. 한 개의 토론 주제에서 파생돼 나오는 곁가지 주제들이 하나씩 늘어난 결과입니다. 주제들도 제각각입니다. 기술·철학·과학·컴퓨터·문화비평 등 다양합니다. 주제가 뻗어나가는 방향도 제각각입니다.

예를 들어 고양이라는 토픽이 있습니다. 그 밑에는 고양이와 살기, 개와 고양이, 영화와 고양이, 만화와 고양이, 잊을 수 없는 고양이 노래 등 곁가지 항목들이 연결돼 있습니다. 곁가지 밑에 곁가지가 쳐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고양이와 살기 밑에는 인디고양이, 남의 고양이 길들이기, 고양이와 생태계, 고양이 신드롬 등 그야말로 고양이와 관련된 온갖 다양한 얘깃거리가 올라있습니다.

노스모크 관리자인 김창준씨는 이를 `잡종적 지식'이라고 명명합니다. 또 노스모크 홈페이지는 스스로를 집합적 지성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는 노스모크 사이트에 참여하는 모든 이의 지식과 사고가 타자간의 경계를 희미하게 지우면서 얽혀 들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김창준씨는 "게시판으로 토론하는 방식으로 얻어진 지식과 과정을 공유하려면 게시판을 하나하나 읽어야 합니다. 선배 토론자들의 노하우와 과정을 나중에 접속한 이들은 똑같은 초기 진입 비용을 치르지 않고는 단번에 나눠받을 수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노스모크는 서로가 토론하다가 어느 정도 합의에 이르면 그 결과를 새롭게 정리, 보완해 올려 놓습니다. 첫 진입자도 그 결과물을 쉽게 공유할 수 있지요. 그러다보니 어디까지가 내 글이고 내 생각이라는 경계가 없습니다.

너와 나의 경계를 허무는 일은 싶지 않습니다. 더구나 누구에게나 무방비로 열린 디지털 세상에서 깊은 속내를 드러내기란 차라리 모험에 가까운 일입니다. 서로의 글과 사고를 나누려면 공유와 상호 존중이 있어야 합니다. 때로는 컴퓨터 바이러스처럼 일부 악의어린 이들의 공격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실제로 노스모크를 비롯한 국내 위키위키 사이트들은 심심찮은 공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웹사이트 접속하는 누구에게나 편집권을 준다는 것은 대문을 열고 자는 것과 같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웹페이지를 무단 삭제하는 일들도 있었습니다. 물론 즉시 다른 위키즌들에 의해 복구되었지만.

내부의 적도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글, 느낌을 과감하게 다른 사람들 손에 맡길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 믿음이 필요하지요. 남의 글에 손대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현재 노스모크에는 100여명의 열성적인 작성자와 함께 그보다 20~30배가 넘는 참관자들이 접속하고 있습니다. 직접 참여하기에는 아직 부담을 느끼는 이들이 많은 탓일까요. 한 위키즌은 "위키 프로그램을 알아야한다는 기술적인 진입장벽보다 문화적인 진입장벽이 더 크다"라고 말했습니다.

주제도 그렇습니다. 노스모크에서 주로 얘기되는 주제는 기술이나 철학·과학·컴퓨터와 같은 객관적인 주제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토론하고 공감하기에는 개개인의 성향이나 선호도에 영향받지 않는 주제들이 적합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종교나 개인사들을 위키위키로 나누기에는 적합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국내에는 약 100여 개의 위키위키 사이트가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약 1만명 정도가 위키위키 사이트를 사용하지 않을까 짐작하고 있습니다. 주로 컴퓨터, 정보 관련 사이트나 학교나 실험실에서 운영되고 있습니다. 장난(www.jangnan.org)이라는 유머와 우스개 소리를 나누는 공간도 있습니다. 개인홈페이지도 있구요.

그러나 특히 그놈한국위키나 파이썬, KLE처럼 오픈 소스 프로그램 개발 동호회에서 위키위키를 많이 쓰고 있습니다. 그놈한국위키에서는 위키위키 사이트 개설후 조금 더 깊이 있는 토론이 가능해졌다고 합니다. 그놈한국위키에 참여하고 있는 kz님은 "위키위키를 통해 메일링이나 게시판, 인스턴트 메신저를 쓸 때보다 프로그램 개발에 대한 깊이있는 얘기를 나누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놈한국위키는 점차 많은 사용자를 확보해가고 있습니다. 다른 개발 사이트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술도 잘 알고 있고, 하나의 공동 관심사를 갖고 있는 오픈 소스코드 개발자들과 위키위키의 특성은 `딱' 맞아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컴퓨터 프로그램 전문지인 마이크로소프트웨어의 송우일 기자는 "위키위키가 소규모의 마니아들이 모여 하나의 주제를 얘기하기에 좋은 도구"라고 말하더군요. 실제로 위키위키는 `Extreme Programing'이라는 한 프로그램 개발방법론의 산실 역할을 했다는군요. 이는 최근 개발방법론 중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애자일 소프트웨어 개발론(Agile Software Development)의 하나로, 고객 요구사항 변화가 자주 많이 있거나 개발자가 소규모(10명 내외)이고 같은 공간을 사용하는 경우에 주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노스모크 운영자인 김창준씨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위키적인 삶'에 대해서까지 말합니다. 위키위키를 사용하면서 삶의 방식 자체도 변했다는 것이 그의 얘기입니다. "위키위키를 통해 보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게 됐다"고 합니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선하다는 덕치국가의 이상이 위키위키에 고스란히 표현돼 있다는 겁니다.

상대방을 신뢰하지 않고서는 자신을 열 수 없겠죠. 정말 올 겨울에는 `접속' 뿐인 인터넷의 공간에서 누군가와 `접촉'하고 싶습니다. 어느 정도의 위험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말이죠.

<진이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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